강릉에 다녀온 날도 집 안의 식물들에 물을 줬다. 화장실로 화분을 옮겨 샤워기로 잎사귀를 앞뒤로 헹궜다. 흙이 차올라 화분에서 넘치기 직전까지 물을 주기를 두세 번 반복해서 물이 아래 물구멍으로 흘러나올 때까지 물을 뿌렸다. 적지 않은 양의 물이 배수구로 흘러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강릉에 산다면 지금처럼 집 안 식물들에 샤워기로 흠뻑 물을 줄 수 있을지 상상했다.
보름 전쯤 가뭄을 취재하러 강릉에 다녀왔다. “강원 강릉시에 초유의 가뭄이 닥쳤다”는 문장으로 기사를 시작했다. 강릉 식수 대부분을 책임지는 오봉저수지가 바닥을 보였다. 강릉에 방문한 날은 강릉시가 사상 최초로 생활용수, 즉 공업용수나 농업용수가 아니라 시민들이 집에서 쓰는 물을 제한하기로 결정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이장과 통장이 가정용 수도 계량기를 50%로 잠그러 다녔다. 저수지 수위가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강릉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며칠 전 결국 대통령이 강릉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곧 수돗물 공급이 아예 중단될 수도 있다.
도시 사람으로서, 생활용수 제한급수 소식을 듣고 나서야 강릉의 가뭄이 실감이 났다. ‘물이 안 나온다고? 어떡해’ 하면서 말이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농부들은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었단 사실을, 강릉에 가고 나서야 알게 됐다. 농업용수는 생활용수보다 앞서서 제한됐다. “마실 물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갔던 날은 3일 급수·7일 단수를 시행 중이었고, 현재는 완전히 공급이 중단됐다.
비 안 오면 스프링클러 돌리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농업용수가 공급된다고 문제가 싹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여름 내내 강릉에는 건조하고 더운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왔다. 땡볕이 매섭게 내리쬐는 동안 밭은 바짝 말랐다. 호스나 스프링클러로 물을 조금 댄다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 농부는 내게 “농사는 하늘하고 같이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 모르게 펼쳐진 너른 배추밭을 보니 그의 말뜻이 이해됐다. 우리 집 화분처럼 샤워기로 물을 뿌려줄 수 없는 규모로 배추가 심겨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지만, 그가 한 해 동안 공들여 기른 배추들이 속부터 타들어 갔다. 저도 살고자 발버둥 치는 거라고 그가 설명했다. 식물로서는 살아남았지만, 상품으로서는 팔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알배추가 돼야 했을 가운데 부분이 여물지 않고 잎이 다 말라버렸다. 농사 관련 보험은 근본적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의 말처럼 “보험금은 안 타는 게 제일 좋은 거”다.
한 해 동안 애써 기른 배추들이 시드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편할 리 없는데, 비교적 상태가 괜찮아 트럭에 실린 배추를 언론은 ‘금배추’라 불렀다. 누군가 폭리를 취한다는 듯이. 농부는 “그런 뉴스를 보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에게 가뭄이란 그런 것이었다. 감잣값이 올랐다는 뉴스를 읽는 것, 알배추 대신 양배추를 장바구니에 담는 것, 김치가 비싸졌다고 투정하는 것. 그런 와중 가뭄은 농부에게 전혀 다른 크기와 무게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지난해 사과와 배 가격이 전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역대 최고 상승률이었다. 시장에는 한 알에 만 원짜리 사과도 등장했다. 사과가 '금사과'가 됐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사과 가격이 오른 이유는 작황이 좋지 않아서다. 봄철 기온이 오락가락하면서 따뜻한 줄 알고 꽃을 피운 사과나무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꽃을 떨어뜨렸다.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았고, 열린 것들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여름의 긴 장마, 폭염, 늦여름과 초가을의 과일 탄저병까지 겹쳤다. 사과 생산량이 급락했다. 과일들 사정은 다 비슷했다.
정부는 망고 등 대체재인 열대과일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사과 수입도 거론했다. 이미 대파, 양파, 마늘, 감자 같은 채소들은 수입으로 가격을 낮춘지 오래다. 사과와 배는 농민들의 농산물 수입을 막는 마지막 저지선이다. 작년, 그 저지선이 흔들렸다.
다른 영역에서는 노력이 많이 드는 상품, 희귀한 상품이 비싼 가격을 받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농산물에는 좀 다른 원리가 적용되는 듯하다. 흉년이라 상품을 생산하는데 노력이 많이 들고, 시장에 나온 상품이 적어서 상품 가격이 오르면 이를 낮추기 위한 정부 노력이 시작된다. 지난해 발표된 수입안도 이 중 하나다. 비싸니까 수입해 물량을 늘려 가격을 내리자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치킨값이나 라면값이 내리는 건 살면서 본 적이 없는데, 농산물 가격은 오르기도 오르지만 떨어질 땐 많이 떨어진다. 저번주에도 가지 네 개를 천 원에 샀다. 사들면서도 이게 적정한 가격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주변엔 농민이 없다. 서울 빌라의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 친구 정도는 있지만. 폭우와 폭염이 반복된 이 최악의 여름을 나는 농민들의 사정을 어림할 길이 없다. 짧은 취재에서 만난 이들의 말만 맴돈다. "야속하다"는 농부의 말. "도시 사람들은 농사를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긴다. 농민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농민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과일 장수의 말.
지난 주말에도 논산에 폭우가 쏟아져서 하우스들이 물에 잠겼다.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너무 많은 비가 내렸고, 동쪽은 너무 가물었다. 올해도 농산물 가격이 오를 것이고, 이런 현상은 매해 반복될 것이다.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과일과 채소 가격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농산물을 덥썩 집어들지 못해 오늘의 메뉴를 바꿀 때, 혹은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뒤 집에 와서 영수증을 볼 때, 그 작물이 심겼을 밭의 풍경과 농민의 얼굴을 한 번쯤 떠올렸으면 좋겠다.
어떤 상품이 어디에서 싼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어떤 상품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너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