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프(연애 프로그램) 중독자로서 최근 공개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도 재밌게 봤다. 이십대 중후반까지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다른 연프들과 달리 별다른 평가 없이 마냥 출연자들을 응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를 남 몰래 좋아할 때, 연애에 (지금보다 더) 서툴 때, 자신만의 연애방식이 없고 남의 연애각본에 휘둘릴 때, 그럴 때의 나와 겹쳐보여서 함부로 미워하거나 탓할 수 없었다.
현재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는 점도 좋았다. 출연자들에게는 연애를 지금까지 안 한/못 한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지으면서 출연자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출연자에 대해 실컷 떠들고 싶지만, 특히 한 여자 출연자를 언급하고 싶다. 여성들 중 가장 많은 이의 마음을 끈 출연자가 있다. 합숙 초반, 남자 출연자 세 명이 이 출연자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그는 세 명 모두에게 '나는 지금 세 명을 마음에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얼마 간 데이트 후 한 사람에게 흥미를 잃자 바로 그 사람을 불러서 말한다. '나는 이제 너 빼고 두 사람을 두고 최종 선택을 고민하겠다'고. 나머지 둘에게도 똑같이 전하면서, 지금은 내 마음이 50 대 50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얼마 간의 데이트 후에는 두 사람에게 지금은 A에게는 80, B에게는 20의 마음이 있다고 각각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점점 '마음이 기울었던' A를 선택한다.
이 출연자는 우리가 연프에서 기다려 온, '여지를 주지 않는' '칼 같은' 출연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강박적인 깔끔함이 마음에 걸렸다. 칼로 무 자르 듯 정리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닌가. 마음은 정말이지 이랬다저랬다 하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기도 하고, 없다가도 생기고, 생겼다가도 없어지고 아무튼 그런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지, 50대 50이었다 80대 20이었다 곧장 100대 0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실제 마음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상대방에게 실시간 차트 보고하듯이 자신의 마음을 수치로 표현해줄 필요는 없다.
나는 그의 행동을 과거와 연결지어서 이해했다. 이 출연자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 스토커라고 하기는 거창하지만 어쨌거나 스토커 비슷한 경험이 있기도 했었고, 제가 오해를 받은 적도 몇 번 있었고, 조금 더 조심하고 하는데"라고 말했다. 이 출연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던 남성들과의 경험에서 여러모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됐을 거라고 짐작됐다. 스토킹을 하고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멋대로 관심을 표하고도 '그러게 그때 왜 여지를 줬냐'고 되려 화를 내는 가해자는 너무도 흔하다. 그리고 오히려 피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양식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반성한다. 다음부터는 ‘여지를 주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출연자의 모습이 그 결과처럼 보였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무게를 달듯 재서 상대방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고,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출연자는 그러려고 노력했다.
다음 중 더 무서운 말은 뭘까.
1. 안 만나주면 죽여버리겠다.
2. 안 만나주면 죽어버리겠다.
우위를 따지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한 형사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담당한 사건에 관련한 기사를 내가 썼는데, 직접 설명할 게 있다며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 내용은 이랬다. 전 연인 집에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창문을 두드린 40대 현역 군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술에 취한 채 전 연인의 집에 찾아와 문을 열라며 계속 초인종을 눌렀지만, 상대가 열어주지 않자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것을 보고는 차를 타고 도주하다 붙잡혔다. 남성에게는 도로교통법 위반과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의 일이라, 음주운전 혐의가 스토킹 혐의보다 더 형량이 높았다.
"그 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여자가 아주 냉혈한이었다. 남자가 무릎 꿇고 우는데 눈 하나 깜박 안 하더라." 형사는 내게 말했다. 요컨대 가해자가 현역 군인이라 사건이 알려지면 직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으니 기사를 좀 내려달라는 거였다. 내가 지금 담당 형사랑 통화를 하는 건지, 군인의 가족이나 변호인이랑 통화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내가 기사를 내려줄 것 같지 않자 형사는 기사에 일부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 선회했다. 기사에 가해자가 "안 만나주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실제로는 "안 만나주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그날 만나서 술을 먹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안 만나주면 죽인다"는 말보다 "안 만나주면 죽는다"는 말이 압도적으로 덜 무서운 말, 협박이 아닌 말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 술을 먹었다면 가해자의 행동이 '할 수 있는 행동' '해도 되는 행동'이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형사의 설명을 듣고 여성에게 더 깊이 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전 연인에게 얼마나 많은 거절을 했을까. 수많은 거절 끝에도 집요하게 연락을 해오니 한번쯤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겠지. 만나서 단호히 거절을 하면 끝날 거라고. 그런데 만남 끝에도 집 앞까지 쫓아와 매달리는 그를 보고 몸서리치며 문을 닫았겠지. 이제 이 관계가 끝났기를 바랐을 때 창문을 두드리는 그 사람을 보며 얼마나 놀랐을까. 경찰이 출동하자 어쩔 수 없이 가해자와 대면해야 했지만 정말 꼴도 보기 싫었을 거야…. 상상은 피해자가 이 형사 앞에서 자신의 피해를 진술했을 때 느꼈을 감정에까지 닿았다. 자신의 피해를 사소하게 여기고, 가해를 순정이라 여기며 되려 가해자를 연민하는 형사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을까. 곱씹을수록 형사에게 화가 났다. 결국 기사는 일부 수정했고, 내리지는 않았다.
가해자의 마음도 나는 상상한다. 가해자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사랑이 위협이 될지.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낄지. 왜, 몇 년 전까지 “네 방에 불이 켜있어 혼자 무슨 일 있는 거니 걱정스런 마음에 그냥 한번 들러본 거야” “난 믿을 거야 언젠가 네가 다시 돌아올 것을” “언제든 누군가 필요하다 느끼면 그냥 창문을 열어 널 향해 두 팔벌린 한 사람이 여기 널 기다리고 있어”(박진영-너의 집 앞에서) 같은 가사를 로맨틱하게 여기던 세상 아닌가. 내가 기다리지 않는 누군가가 가장 안전해야 할 우리 집 창밖에 서있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가해자는 모른다.
이 무지는 죄다. 한국 사회 교육이 철저히 실패한 지점이다. 남성들은 여성이 얼마나 두려운지, 왜 두려운지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경찰도 모른다. 위에 언급한 사건은 '김태현 사건' 이후 일어났다. 2021년 3월,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된 여성의 집에 찾아가 여성의 동생, 어머니와 여성을 차례로 살해했다. 세상은 경악했다. 보도 직후 스토킹을 경범죄가 아닌 스토킹 죄목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됐고, 그해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서울경찰청은 관내 경찰서 간부들을 대상으로 '부적절 언행' 사례를 교육했다. "전화 수신차단은 왜 안했나요." "좋아서 연락하는데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나요." "한 번 만나서 그 사람 얘기를 들어주면 되지 않나요." "찾아오고 전화하는 것은 개인 자유인데 어쩔 수 있나요." 같은 표현들을 '절대금지 발언'으로 알려줬다고 한다. 이 교육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쓸모가 있었는지 평가할 수는 없지만, 교육 넉달 뒤 간부가 아닌 일선 형사는 전화통을 붙잡고 스토킹 사건을 보도한 기자에게 "가해자가 불쌍하다"고 호소했다.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게 최후의 보루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스토킹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어도, 이 단어가 있기에 '스토킹이 나쁜 것'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반기를 들기 어려워졌다. 피해자들의 검열도 '내가 당한 것이 스토킹이 맞나'하는 영역에서 이루어지지, '스토킹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데서 이뤄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의 출연자처럼 자신의 피해 사실을 "스토킹이라기엔 거창하지만"라는 식으로 수식하게 되는 거겠지.
스토킹이라는 말이 있어서 다행이다. 데이트폭력이라는 말도, 부부 강간이라는 말도. 피해가 아니었던 것들이 피해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성폭력' '성희롱'이라는 말이 없었을 때도 있다고 한다. 오직 '윤락'이라는 말만 존재해서, 폭력을 당한 여성에게 책임을 묻고 집안의 수치로 여겼을 때도 있다고.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 가해자와의 결혼을 종용하는 일은 내 엄마 세대에서도 빈번했다.
언어는 언제나 현실보다 늦게 당도한다고 정희진은 썼다. 언어가 당도한 이후에도 피해가 언어화되지 못하는 일은 흔하다. 게다가 법은 더 늦게 당도한다. 법이 당도한 이후에도 피해가 피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수사기관은 더 느리다. 어쩌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지난 6월, 윤정우는 자신에게 이별을 통보한 여성의 집에 가스관을 타고 침입해 여성을 살해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울산에서 20대 여성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남성에게 흉기로 피습당했다. 다음날에는 대전에서 30대 여성이 전 연인에게 살해당했다. 이틀 뒤에는 서울 구로구에서 50대 여성이 동거 중이던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피해자 다수는 살해 시도 전 수사기관에 피해를 호소했지만 수사기관은 피해자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고, 2023년에는 스토킹방지법도 만들어졌지만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더 많은 법이 필요할까. 사회에게 필요한 건 상상력 아닐까. 피해자 입장에 서보는 것 말이다.
두 번째 원고인데도 연재가 하루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다다음주엔 꼭 월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