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2005)

들킨 마음 달랠 길 없어

by 비호

마음을 들키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들킨다는 것.

그것이 사랑의 순간이든, 사욕의 순간이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든

누군가에게 나의 속마음을 들키는 것을

피하고 싶은 건 당연.

그것은 나의 비밀이기도 하고,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며,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서로 신뢰가 깊은 선우(이병헌)와 강사장(김영철).

(브로맨스 코드 같아 보이지만, 여러모로 과한 2차 창작이다.

서로 좋아하는 그들의 관계에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껴들고,
결국 그로 인해 둘의 관계가 파국을 맞기는 하지만,

마지막 라 돌체 비타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애증의 연인이 다시 만난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그때 선우와 강사장은 원망과 반가움이 섞인 눈빛 교환을 하지만,

굳이 그 코드로 보는 건 과하다.)


이들의 관계가 깨진 건,

다름 아닌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이다.

그 속마음이 맞느냐 서로에게 묻지만,

그들은 정확하게 그 속마음을 맞다 그르다를 말하지 않는다.



마트료시카

인형 안에 인형 안에 인형 안에 인형....

이 러시아 목제 인형들이 희수의 집에는 여러 개 있다.

희수가 오로지 강사장만을 위한 인형이 되진 않을 거라는 상징적 소품의 의미는 번외로 두고,

끝난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인형들처럼,

겹겹이 쌓인 가장 안쪽 자그마한 인형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속마음을 뜻한다.

그 속마음까지 가는 과정이

하나씩 드러나는 인형들처럼

이 영화가 직진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마음을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너 정말 이럴 거니?

너무 가혹해...

라는 탄식과 함께 여정을 마친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넌 나에게 왜 그런 거냐?

라고 묻지만 상대방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아니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질문했던 선우는 방아쇠를 당긴다.

왜 이렇게까지 된 거지?

라며 화장실 거울 속 자신에게 자문하지만 역시 답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왔고, 그래서 얼굴 한번 찬물로 닦고 가던 대로 가야 할 길이다.

총소리 아니냐고 묻는 택시 기사에게 인생 빵꾸나는 소리라고 말한 선우, 그 말에 택시 기사는 요즘 다들 힘들다며 얘기를 늘어놓으려 하지만,

선우는 "시내로 가자"며 말을 끊는다.


그렇다.


인생은 직진이다.

뒤돌아 보며 이유를 묻고 원인을 찾고 생각해 볼 필요 없이,

인생은

항상

앞으로만 간다.


그리고 항상 이유는 나와 관계된 무엇 혹은 누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만 가는 인생에서

그러므로 무엇의 혹은 누구의 이유를 들을 필요가 있을까...

이유가 뭐가 중요한가 말이다.

나의 인생은 그와는 별개로 제 갈 길 굴러가는 것을.


"이제 이유가 중요하지 않아... 그래도 끝은 봐야겠지..."

"돌이킬 수 없잖아요. 딱히 갈 데도 없어요."

라고 말하는 선우는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 끝을 본다.



판단과 계획

계획이라는 게 그래서 부질없다.

그것이 순간의 어긋난 판단이든, 오랜 경험상의 노하우든,

그런 것 필요 없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직진은 우리가 계획하고 도모한다 해서 탄탄하게 깔리는 대로가 아닌 것이다.

선우가 강 사장의 애인 희수(신민아)에게 연정을 느끼고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그냥 지금 이 순간과 기억을 지워라라는 계획을 말했지만,

그 계획은

희수가

"지우라고 하면 지워지는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는 말에 의미 없어지고,


"잘못했음"이라는 말 대신 "그냥 가라"라는 선우의 받아침에

그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내가 잘못했다 하면 잘못한 것이 무조건 나와야 한다"는 강사장의 말에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비단 선우에게만 그럴까?

라 돌체 비타 레스토랑 총격전에서 오무성(이기영)과 그의 부하는 바 뒤에 숨어 있는 선우를 어떻게 죽일까 잠시 계획하지만,

찰나 선우는 이미 밖으로 나와 그들을 가차 없이 처리한다.


총기상 태웅(김해곤)은 선우에게 총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법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주지만, 이내 그것에 의해 허망하게 죽는다.


백사장(황정민)은 빨리 끝내지 않고 삶이란 고통이라는 설교를 하려다 총에 맞아 차가운 아이스링크 바닥에서 죽는다.


강사장은 본인이 말하는 것이 선우에게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죽는다.


사람의 작은 머리에서 나오는 판단과 계획이

거대한 삶이라는 바퀴를 감당하기에
얼마나 부질없는지

영화는 끊임없이 되풀이해 보여 준다.



먹다.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 한 입 베어 물기도 전에 선우는 지하 나이트클럽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돌아와 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강사장과 일식집에서 상대적으로 밋밋했을 죽을 먹는다.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부탁을 하려 한다는 강사장의 말에

선우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더 이상 먹지 않은 채 가만히 듣는다.

그 부탁의 내용에 목이 타지만, 물 한잔 마실 새도 없다.


달콤했다가

썼다가

아무 맛은 없겠지만 건강에 좋을 것 같은 것을 먹다가

입을 닦은 선우는

그 이후 강사장과

그 부탁 때문에

대립하게 됐다.

영화가 거창하게 어릴 때는 단 맛을 좋아하다, 커가면서 쓴맛을 알게 되고, 노년에는 건강을 찾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 거다. 오히려 강사장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중단했던 선우. 가족 혹은 식구, 즉 함께 무언가를 먹는 행위의 중단으로 관계의 끝을 보여준 오프닝이 개인적으로 와 닿았다. 상대적으로 더 먹고, 담배까지 계속 피우던 강사장과 달리 선우에게 그 부탁은 복종해야 하는 것, 가족-식구의 의미로부터의 단절의 시발점인 것이다.


희수는 밥 함께 먹을 사람 없다며 부른 선우 앞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모두가 죽고 난 이후 희수는 어디에선가 씁쓸한 에스프레소 한잔하고 있을까?



흔들리는 나무.

흔들리는 건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고 네 마음이다.

그래서 선우가 첼로 녹음을 하고 있는 희수를 보는 뒷모습,

정확히는 그의 뒷머리가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중첩되는 것은 선우의 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그 흔들리는 나무에서 힘없이 떨어진 나뭇잎은

그래서 선우가 죽는 순간 당연하게도

그에게 떨어져 내린다.

뿌리를 내려 꼿꼿하게 서 있었다면 흔들리는 마음이 멈췄을까?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라 돌체 비타 레스토랑을 관리하는 선우는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흔들렸을까?


어쩌면 그래서 선우는 희수에게 스탠드를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스탠드...

말 그대로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것...

게다가 너의 옆에 서있으며 불을 밝혀 주겠다는 것...

그래서 선우의 마지막 눈물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지는 A bittersweet life이다.




반복

그리고 삶은 반복된다.

개인의 판단, 계획, 이유와 상관없이 굴러가는 인생 같아 보이지만,

그 인생은 의외로

그리고 알고 보면

계획적으로 직진한다.


웃어요라고 말했던 백사장에게 선우는 똑같이 웃어요를 돌려준다.

자신을 줄에 매달았던 오무성을 선우는 똑같이 줄에 매단다.

자신의 손가락을 내리쳤던 문석(김뢰하)의 손가락은 선우의 총에 의해 날아간다.

선우의 마음에 상처를 낸 강사장은 그래서 가슴에 총을 맞는다.


영화는 사람의 힘보다는 어떤 거대한 계획, 아마도 운명이라고 퉁칠 수 있는 그런 것들에 의해

인생이 달콤하고 쓰디쓰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거대한 계획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있을 것 같다가도 결국 없기 때문이다. 달콤한 듯해도 결국 쓸 수밖에 없다.


번외로 도망가는 러시아 총기 밀매 조직원을 복도까지 쫓아가 총으로 쏠 때 복도 끝 방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 "또 술 먹은 겨?"를 내뱉는 건,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골목 추격신 도중

문을 열고 나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또 드라마 찍는 거야? 여기서 찍으라고 누가 허락했어?"를 시전 하는 할머니의 반복, 이른바 오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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