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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Jul 08. 2020

휠체어 타고 결혼식장에 나타난 남자(feat. 위라클)

                                                                                                                                        

"탈락, 탈락. 걔는 목소리가 좀 앵앵거리지 않아? 탈락" 결혼식 사회자로 누가 좋을지 남편이 친구 이름을 대면 내가 합불 여부를 결정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차분하니 좋으면서도 유머가 있고 감동까지 줄 수 있는 사회자여야 하는데 다들 영 미덥지 못했다. 남편은 사회자한테서 무슨 감동을 찾고 있냐며 핀잔을 줬다. 그러다가 "아, 형이 있었네"라고 말하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야" 그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잘생겼고, 목소리도 좋고, 축구까지 잘했어! 근데 또 별명이 뭔지 알아? 위느님이었어. 성격이 너무 좋아서 유느님에서 따온 거지. 다들 좋아했어." 나는 물었다. "그럼 매사에 자신이 넘치겠네?" 남편은 그와의 첫 만남을 들려주었다.


"자대 배치받고 생활관 화장실에서 처음 만났거든. 내가 너무 쫄아있으니까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하는 거야. 여기 편한 곳이라고, 그렇게 쫄 거 없다고. 그리고 밤에 점호를 하는데 그 남자가 나와 같은 이등병 모자를 쓰고 있는 거야. 뭐지, 저놈은? 싶었지."


이등병일 때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병장처럼 보인 그는 제대할 때까지 변함없었다. 남편은 제대한 후에도 그와 가끔씩 만나며 친하게 지내다가 사고 소식을 들었다. 그의 동생한테서 형이 목을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고, 남편은 직감적으로 그렇다면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닌지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병문안을 가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다가 끝내 모르겠는 상태로 병실로 들어섰다.


그는 온몸에 깁스를 하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중증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둘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이 여자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친구들과 게임하는 게 아직도 더 좋다고 말하자 그는 어차피 넌 여자친구를 못 사귈 거라고 말했다. 만날 때마다 하는 지겨운 군대 시절 얘기를 하다 새로 나온 핸드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호흡이 가빠지면서도 웃으며 이런 농담까지 했다. "내가 맨날 위에서 널 내려다만 봤는데, 오늘 이렇게 밑에서 보니까 너 되게 별로다." 그 말에 남편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서 병실을 나오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내가 에너지를 받은 기분이었어. 형을 만나고 헤어지면 항상 느꼈던 기분이긴 했지." 나는 남편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풍부한 웃음으로 반겼고, 나는 남편이 말한 그 에너지가 무엇인지 단박에 느껴버렸다. 그 사람은 위라클(Weracle) 채널의 유튜버 박위다. 그는 2014년 의류 회사 ZARA의 정직원으로 취직에 성공했다. 직장을 구한 청년이 으레 그렇듯 기쁜 마음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잘못해서 2층에서 떨어져 목을 다쳤고, 의사는 그에게 평생 누워서 살 것이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마어마한 재활 운동으로 혼자서도 많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다리는 쓸 수 없고,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일 순 없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상반신을 되찾았다.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지 않고 오로지 팔힘으로 휠체어 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거리를 활보한다.


유튜버 박위는 위라클이란 채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한다. "휠체어 타고 헬스장에서 운동하기", "휠체어로 혼자 대중교통 이용하기", "휠체어 위에서 샤워하는 법", "휠체어로 계단 오르내리는 법", "혼자 휠체어 차에 싣고 운전하는 법", "바닥에서 휠체어로 올라가는 법" 같이 휠체어를 타고 하는 일상이 콘텐츠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게 콘텐츠가 될 수 있으니 장애로 얻은 삶이 오히려 기회이지 않냐고 되묻는다. 바닥에서 휠체어로 혼자 올라가기 위해 수백 번 엉덩방아를 찧으며 연습했다고 말하는 영상 속 얼굴 표정이 환했다.


실제로 그가 혼자서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리는 일은 옆에서 봤을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팔의 힘만으로 자신의 몸무게를 감당하며 몸을 옮기느라 팔뚝의 핏줄이 굵게 솟아올랐다. 운전석에 앉은 다음에는 휠체어를 하나씩 분리해야 했다. 방석과 덮개는 조수석에 싣고 바퀴도 분리해서 뒷좌석 바닥에 실었다. 휠체어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인 몸통을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릴 때에는 저절로 입을 굳게 다물게 되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 일련의 과정을 묵묵히 혼자서 해내며 차에 올랐다. 


그런 그도 다치기 전에는 장애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다. 다치고 나서야 장애인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아프고 다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오면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모두 집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용기를 내서 집 밖으로 나왔다. 운전해서 한강을 가고, 서슴없이 해외여행까지 간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람들과 영상으로나마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유튜브를 통해 다치고 아픈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손을 내민다. 위라클은 박위라는 이름에 미라클을 붙여 We+Miracle로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뜻이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이미 기적이기에 많은 이가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이런 행보가 없었더래도 틀림없이 나는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는 결혼 날짜를 잡은 예비 신부가 듣고 싶을 말을 콕 집어 할 줄 알았다. "이놈이 계속 자기한테 과분한 여자를 만났다고 했는데, 정말 과분하십니다."같은 말로 먼저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둘이 장난 같은 싸움을 주고받는 모습에는 "참 보기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유쾌함이 베여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몇 번씩 만나며 위형네 집에 놀러 가거나 위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강에도 갔다. 비가 온 날 저녁이었고 천지에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했다. 그와 남편이 내 앞에 있었는데, 빗물이 묻은 바퀴 탓인지 바닥으로는 휠체어가 지나간 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그 자국 위에 발을 겹치며 따라 걸었다. 


결혼식에서 그는 사회를 멋지게 봐주었다. 식장에서는 휠체어에 맞는 낮은 단상을 준비해 주었고, 사회자 쪽을 향해 비추는 조명을 살짝 아래쪽으로 조정해 주었다. 그는 환한 조명 아래서 이등병 시절부터 남달랐던 여유 있고 자신 있는 모습에 더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결혼식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었다. 위라클 채널을 구독하고 있던 친구 몇이 그를 알아보고 사진 찍기를 원했고, 그는 흔쾌히 응하며 손으로 브이자를 그려주었다. 


고마웠고, 그에게 한 번 더 반한 나는 신혼여행에 가서도 남편과 함께 위라클 영상을 시청했다. 한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이미 일어나있다고 말했다.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서는 육체적인 일어남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일어남으로 말이다. 위라클의 애청자로서 나 역시 그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더 크게 일어나있는,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사진 출처 : 위라클 인스타그램(허락 받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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