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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Oct 09. 2021

만월의 밤

2018. 05. 10


 요 며칠 부모님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내 기척을 의식하며 유심히 살피기도 하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언제 들어올 건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셨다. 늦게 집에 들어가더라도 좀체 전화 한번 안 하시는 분들이 밤 10시가 되기도 전부터 전화해 내 행방을 확인하셨다.

 그리고 바로 어젯밤, 부모님과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부모님은 저녁 식사 내내 내게 많은 질문을 던지셨다. 요즘 나의 비행 생활이 힘들지는 않은지, 친구 관계는 무난한지, 남자친구와의 애정전선에는 문제가 없는지, 혹시 남에게 말 못 할 고민거리가 따로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나는 부모님께 비행은 아직도 여전히 즐겁다고 답했고, 친구들과도 모두 잘 지내며, 남자친구는 애초에 없으니 애정전선에 문제가 있을 리 없고, 남다른 고민거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나의 무난한 대답이 마뜩잖은 듯 어딘가 미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부모님이 의아했지만,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그러려니 여기고는 먼저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얼마간인가 회사에 보내야 할 이메일을 작성하고 책을 한참 보고 있는데, 부모님께서 나를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여니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셨다. 나는 식탁 건너편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둘은 입을 떼기 전, 서로 눈을 한번 맞추고는 힘을 주어 말씀하셨다. 힘을 잔뜩 준 아부지의 목소리가 울뚝불뚝했다.

“다 알고 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뭘요? 뭘 알고 계시다는 거예요?”

 아부지는 설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주에 네가 잠시 마트에 다녀오겠다고 집에서 나갔을 때였다. 내가 서류 정리를 하다가 호치키스 필요해 잠시 네 방에 들어갔다. 책상 위 선반에서 호치키스만 딱 들고 나가려는데,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이 켜져 있더구나. 나도 모르게 잠시 눈이 화면으로 갔는데…….”


 아부지는 숨을 몰아쉬며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투신자살을 검색해서 보고 있었더구나. 다른 검색창도 살펴보니 투신, 마포대교, 자살 이런 것들이 검색되어 있더구나. 왜 그런 것들을 검색해 보았니? 혹시 나쁜 생각이라도 들었던 거니? 우리가 모르는,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던 거 아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미 나는 속에서부터 웃음이 차올랐지만, 영문도 모르는 부모님 앞에서 무턱대고 깔깔대며 웃어 젖힐 수가 없었다. 아부지는 당신 딸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한 투신(投身)을, 자살하기 위해 검색해 본 줄 알고 계셨다.


 이전에 내가 쓴 글, ‘마포대교 달리기’에서 나는 투신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짚어놓았다. 그 글에서는 투신자살 장소 1위로 꼽히는 마포대교에 대한 내용이 두세 단락 차지하고 있는데, 나는 보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었고, 바로 그것을 아부지가 보아버린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재빠르게 해명해야 했다. 마포대교를 가로질러 한강에서 달리기한 내용의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 본 것이라고 말이다. 다리 난간에 쓰인 자살 방지 글귀들이 유독 기억에 남아 그 계기 및 관리 방안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 찾아나 본 것이라고.


 빠르게 말을 쏟아낸 나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서! 내가 진짜 투신자살이라도 하려고 하는 줄 알았단 말이야?!?”

 이번에는 부모님 눈 속에도 웃음이 차올랐다.

 “아니……, 오히려 밝을수록 그늘이 더 짙은 법이잖아. 우리는 혹시나 했지.”

 이내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내 얼굴을 뒤덮었고, 나는 오른쪽 손바닥으로 나의 양쪽 뺨을 덮으며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님도 이제 조금 안심이라는 듯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방으로 다시 들어와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자꾸 실없는 웃음이 나와 문장을 따라갈 수 없었다.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어이가 없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만 책을 덮고 책장이나 살펴보았다. 비행 일지를 쓰기 시작한 지 2년 동안 꾸준히 읽어온 책들이 한가득 꽂혀있었다. 건조하게 자리 잡은 책들을 손가락 끝으로 쓸어

내리다가,


 강하다는 건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거라는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게 죽고 싶을 만큼의 불행이 닥치더라도 오늘 밤, 전에 없이 진지했던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린다면 나는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장 위 창문을 열어보았다. 만월이었다. 만월이구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은은한 달빛의 결이 너울너울 내려와 머리 위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내 방 작은 창문 앞에 서 있었다.



부모님과 살던 시절이 벌써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요즘, 3년 전에 쓴 글을 뒤적이다 올려봅니다...:) 엄마랑 아부지랑 함께 살 적에 직접 요리도 좀 해주고 그랬을 걸... 그게 제일 아쉽네요^_ㅠ...... 혹시 독자님들 중에! 지금!! 부모님이랑 함께 사는 분이 계시다면!!! 부모님께 정말 잘해주세요...♡ 지나고 나면 그 긴 시절이 정말 찰나처럼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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