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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Jun 25. 2020

여름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법

뭐든 가벼운 여름이다. 여름에는 옷차림도 신발도 가볍고, 그래서인지 집을 나설 때 마음가짐조차 가벼워진다. 그 가벼운 마음에 취해 가볍게 쇼핑을 하다 지갑까지 가벼워진다. 어쩔 도리가 없다. 가벼운 것은 가뿐하고 설레는 성질임을.

여름을 맞이하여 쇼핑할 아이템은 많다. 외출하기 전 몸에 치덕치덕 칠하는 선크림이나 데오드란트부터 시작해 태양빛을 가려줄 선글라스나 모자까지. 와중에 내가 매번 구매하는 제품은 따로 있기로 소니, 바로 샌들이다. 샌들을 하나 사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여름 한 철 내내 신는다. 여름에 신기 좋은 소재로 만든 운동화도 많지만, 운동화를 신기 위해 양말 하나 신기에도 버거운 더위 아닌가. 그렇다고 쪼리는 너무 격식 없어 보이고, 굽도 낮아서 오래 신으면 오히려 발이 아프다. 샌들이 딱이다.

샌들은 저렴한 가격대로 사야 마음 편하게 신기 좋다. 자주 신어서 어차피 금방 헤질 텐데, 비싼 거라고 어디 멀쩡하랴. 색상은 그래도 여름이니까 청량한 맛을 살려 흰색이나 밝은 베이지 또는 시원한 소라 색상으로 산다. 내년에 다시 꺼내 신기에는 영 아니올시다, 싶게끔 부지런히 신고 돌아다닌다. 버릴 때쯤엔 여기저기 까지고 뒷굽엔 검댕이가 묻어있다. 그래야만 버려도 아깝지가 않다.

에코백도 필수다. 가죽 가방은 무겁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더워 보인다. 어깨에 가죽끈을 걸치고 있으면 살과 맞닿는 부분이 땀에 절기도 하니 실제로 더위를 한층 돋우기까지 한다. 작년 겨울부터는 비건 지향 삶을 꾸리면서 가죽 소재를 멀리하게 됐다. 덕분에 파인애플 잎이나 선인장으로 만들어진 비건 가죽을 생산하는 브랜드와 제품을 알아보는 수고도 기꺼이 감수하지만, 그마저도 번거로울 때는 역시 에코백이다. 요즘에는 디자인도 다양하고 예뻐서 에코백을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오늘도 그 가방에 그 샌들이냐며 지겹지도 않냐고 핀잔을 준다. 지겹기는. 샌들은 내 발에 익어 편하고, 에코백 안에는 나갈 때마다 꼭 챙기는 물품이 들어있어 외출 준비가 간편하다. 손비누와 티슈, 가글은 아예 넣어놓고 다닌다. 코로나19로 손세정제도 추가했다.

나는 추위엔 약하지만 더위는 잘 타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방안에만 처박혀 있기 좋아하는데, 여름에는 들로 강으로 바다로 잘도 돌아다닌다(라임을 살리기 위해 '산으로'도 넣고 싶지만 등산은 힘들까 봐(힘들어서도 아니고 힘들까 봐)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콜라 한 잔, 무더운 와중에 간혹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한여름 밤 한강에서 돗자리 펼치고 앉아 맥주를 마셔대던 젊음, 뱃살을 용케 가려주는 하이웨스트 비키니를 입고 뛰어든 바다. 여름에 차곡차곡 쌓인 지난 나날이다. 그 나날에는 나와 함께 한철 여름을 온몸으로 겪은 에코백과 샌들이 있었다. 여름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손쉽게 들게 되는 에코백과 막 신어도 괜찮은 샌들만 있으면 자신감이 붙었다. 발걸음마저 힘찼다. 가벼운 옷차림처럼 오늘 하루도 덩달아 가뿐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올여름 에코백 안에는 여분의 마스크가 놓여 있다. 깜빡하고 마스크를 잊고 나갔을 때를 대비해서다. 에코백과 샌들은 여전히 가벼운데, 마스크를 착용한 채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이 무덥다. 거리에는 더운 공기에도 모두 마스크를 성실히 쓰고 있는 모습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서로를 위한 배려와 그 배려에도 불구하고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사태가 무겁게만 느껴지는 여름이다.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샌들과 에코백만으로 충분할 여름을 위해, 이번 여름은 조금 무덥고 무겁게 보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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