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다. 마지막 비행이 지난 3월 초에 다녀온 스페인 마드리드 비행이었다. 마드리드 비행도 원래는 3박 4일 스케줄로, 현지에서 이틀 체류하다 돌아오는 비행이었는데, 아침에 출근했더니 '퀵턴 ㅡ 당일치기'로 다녀오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마드리드까지 12시간 넘게 걸리고, 돌아오는 데 11시간 정도 걸리니 순수 비행시간만 23시간... 거의 하루를 비행기에 있어야 했다. 물론, 돌아오는 비행은 엑스트라 비행 (일 안 하고 승객 좌석에 앉아 오는 비행) 으로 모든 승무원들이 그나마 PR 좌석에 배정되어 편하게 누워 왔지만, 24 시간 비행기에 있으려니 온 몸이 저리고, 쑤시고, 냄새나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리고, 남은 비행 스케줄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각국에서 입국을 막은 탓이다. 푸켓 스케줄이 대기로 바뀌더니, 오클랜드 스케줄도 없어졌다. 그리고 모두 블랭크 (BLANK ㅡ비행 대기)....
동료 승무원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뉴스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비행 가는 것도 왠지 불안하다. 그동안 쓰고 싶어도 쓰지 못 했던 휴가가 100여 개 남아 있어 이참에 휴가를 신청했다. 3월은 스페인 마드리드 비행 딸랑 한 개 한 셈이다.
4월은 좀 나아지려나 싶었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엊그제 기사를 보니 한국 입국을 막은 나라가 179개를 넘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우리 회사 항공기가 갈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의미다. 4월 비행 스케줄도 딸랑 하나 나왔다. 일본 나리타를 거쳐 하와이를 다녀오는 비행 스케줄.... 비행시간은 고작 21시간...
하와이는 방문자들에게 14일 강제 자가 격리를 실시한다고 하니, 하와이 스케줄도 곧 없어질 것 같고, 매일매일 입국하는 비행기에 확진자가 한 두 명씩 생기고, 주변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동료 승무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평소 세계 곳곳에 있어 연락이 잘 되지 않던 동료 승무원들도 '개점휴업'으로 다들 집에 있어 전화를 하는 족족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들 비행을 하지 못해 경제적인 타격은 물론, 좀이 쑤신단다. 만나서 근황을 듣고 싶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자제하고 있다.
"한 달 휴가를 갈 수 있다면 나 중국어 한 달짜리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라고 언젠가 아내에게 허락? 을 구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대신, 나도 한 달짜리 휴가를 간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혼자 인강 보면서 HSK 6급까지는 땄지만, 말하기 실력은 그 성적만큼 안 나오기 때문에 한 달이라도 중국에 가서 눈뜨고, 눈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중국어를 듣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 기회가 왔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 중국으로 갈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쉬운 김에 인강을 보면서 중국어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있지만, 항상 목마르다.
얼마나 바래고 바랬던 한 달 휴가였던가! 그런데 3월, 4월 거의 두 달을 쉬게 됐지만 이렇게 쉬고 싶지는 않았다. 설마 5월, 6월도 쉬어야 하는 거 아냐?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코로나가 사라져 맘껏 하늘을 날 수 있을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 3월 25일에 썼던 비행일기다. 결국 3월, 4월 두 달을 쉬고, 5월 현재 비행 중이다. 그리고 6월부터 또 쉰다. 세 달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