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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3. 2020

# 승무원과 '볼펜(1)'

- 볼펜이 모일수록 추억이 쌓여간다 -


승무원이라면 누구나 (일반화의 오류다) 하나쯤 수집병(?)이 있다. 승무원들이 가장 많이 모으는 것 중 하나는 '마그네틱'이다. 하나에 1~2불 정도로, 가격도 저렴해서 비행이나 여행 갈 때마다 국가별로 하나씩 모으는 재미가 있다. 우리 집에도 그동안 모아둔 마그넥틱이 50개 정도 있다. 냉장고와 현관문에 붙여 놓다가 양이 많아져, 전용 칠판을 사서 붙여 놓고 있다.



지난번 비행기에서 만난 승무원은 스타벅스 컵을 모은다고 한다. 스타벅스 컵 중에서도 나라/도시 이름이 적힌 컵을 모으는데, 컵 디자인이 몇 년 주기로 바뀌다 보니 나라/도시 이름이 같아도 디자인이 다르면 또 사서 모은다고 한다. 한 개 가격이 한화로 대략 2만 원 안팎인데, 100개가 넘는다고 하니, 그동안 컵을 사는데 200만 원을 넘게 쓴 셈이다.



비행을 갈 때마다 "어떤 새로운 디자인의 컵이 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행이 설렌단다. 돈 아깝지 않냐고 물으니 "이런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비행을 하겠냐"며 컵은 단순히 컵이 아니라 비행을 무사히 마친 자기 자신에 대한 '작은 선물'같은 거란다. 전용 보관 가구도 샀단다. 친구나 지인이 집을 방문하면 "오늘은 어느 나라로 데려다줄까?"물으며 손님이 원하는 나라/도시의 컵에 음료를 대접한단다. 그때그때 가고 싶은 나라를 골라 커피나 음료를 마신다고 한다. 여행 기분 날 것 같다.


다양한 스타벅스 컵 / 사진 출처 https://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78467


나도 얼마 전부터 새로 시작한 취미가 있다. 바로 항공사 볼펜 모으기다. 승무원이라면 누구나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다. 진짜 이건 모두 해당하는 진실이다) 적게는 한두 개, 많게는 열개 이상의 볼펜을 가지고 다닌다. 항공기에는 승객과 승무원이 사용할 수 있도록 볼펜이 실리는데, 비행이 끝날 때쯤, 승무원의 유니폼 주머니나 재킷에는 수개/수십 개의 볼펜이 꽂혀있게 된다. 내가 수집하는 것이 바로 그 볼펜이다.



비행을 가다가 다른 항공사 승무원을 보면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동료 승무원들을 부른다. "잠깐, xxx 씨 볼펜 좀 줘봐요.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수개, 많게는 열개 이상 볼펜을 강탈(?) 한 후 타 항공사 승무원에게 다가간다.



<한국인 승무원에게>

실례합니다. 저는 대한항공 승무원입니다. 다른 항공사 볼펜을 모으는 게 제 취미입니다. 혹시 저랑 볼펜 교환하시겠어요?



<대부분의 외항사 승무원에게>

I am a Korean Air crew. My hobby is collecting pens from other airlines. Would you like to exchange pens (복수다. 한개 이상 달라는 거다) with me?



<일본인 승무원에게>

失礼します。私は大韓航空乗務員です。他の航空会社のボールペンを集めるのが私の趣味の一つです。もしかしたら私とボールペン交換しますか?



<중국인 승무원에게>

不好意思. 我是大韩航空的乘务员 。收集其他航空公司的圆珠笔是我的爱好之一。你想和我交换圆珠笔吗?



* 외항사 승무원의 경우 대부분 영어로 부탁을 하는데, 일본과 중국 승무원의 경우 일본어, 중국어로 볼펜 교환을 부탁한다.



위와 같이 부탁을 하면 백이면 (100퍼센트!) 자기네 항공사 볼펜을 나눠준다. 승무원 단체를 만나면 서로 주겠다며 난리다. 각자 주머니나 가방을 뒤져 볼펜을 수북이 모아 건네준다. 나도 동료 승무원들로부터 빼앗은(?) 볼펜을 그들에게 건네주고, 받은 볼펜 중 두세 개는 내가 갖고, 나머지는 동료 승무원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준다.



승무원과 승무원 사이에는 뭔가 끈끈한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비행기는 다르지만, 같은 곳에서 (하늘), 같은 일 (서비스)을 하다 보니, 그 일의 어려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아주겠냐! 싶은 마음이 드는지....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긴장된 순간, 혹은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지친 순간.... 뜬금없이 다른 항공사 승무원이 볼펜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잠깐 웃음을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짧은 이벤트 같은 느낌 (순전히 내 생각이다)



3개월 동안 모은 항공사 볼펜을 세어보니 14개 항공사쯤 된다. 진에어, 에어부산, 아시아나 항공 등 국내선 항공사뿐만 아니라, 동방 항공 (중국), 아나 항공 (일본), 델타 항공 (미국), 에어 인디아 (인도), 베트남 항공 (베트남), 루프트한자 (독일)등 국적만큼 다양한 항공사의 볼펜을 모았다.



모은 볼펜 중에서 제일 이쁜 것은 델타 항공 볼펜이다. 사이즈가 다른 볼펜의 1/2 크기라서 귀엽고, 색깔도 귀여운 핑크.... 델타 항공사 승무원들의 연식이 할아버지, 할머니 같아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주고, 받을 뻔했다. 일본 승무원들은 하이! 하이! 하며 내게 매우 공손히 볼펜을 건네주었는데, 그들에게는 내가 할아버지 승무원처럼 보였나?



그렇게 볼펜 하나하나마다 짧은 추억들이 깃들어 있다. 앞으로 100개 이상의 다른 항공사 볼펜을 모으는 것이 내 목표이다. 그 말은, 100개 이상의 다른 항공사 승무원들과 짧은 '볼펜 교환 이벤트'를 갖는다는 것이다. 국적이 다른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뒤돌아 서면 금방 잊혀질, 그렇지만, 또 생각해 보면 잠깐 웃을 수 있는, 한여름의 소나기 같은 추억을 교환한다는 의미이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볼펜 수집하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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