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 Flight May 26. 2020

# 스튜어드 베트남 비행 일기

- 코로나 속에서도 우리의 날개는 멈추지 않는다 -

1.

거의 삼 개월 만에 첫 비행을 간다. 목적지는 베트남 사이공…. 갈 때는 승객이 없어 빈 비행기로 간다. 우리는 사이공에서 인천으로 오는 승객을 데리러 간다. 승객의 대부분은 베트남 사람들, 인천 공항 도착 후 미국으로 환승하는 사람들이다. 


사이공 갈 때 승객이 없으니 승무원들도 일할 필요가 없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사복으로 갈아 입고 승객 좌석에 앉아 4시간 40분 동안 각자의 컨디션에 맞춰 잘 사람은 자고, 먹을 사람은 먹고, 영화 볼 사람은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북으로 빌려온 책을 읽다가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인 후 셀프로 밥을 찾아 먹고, 도착까지 다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승객 좌석에 앉아, 승객 처럼 바깥 풍경을 찍어봤다


이번 비행은 지난 2월 초에 스페인 마드리드를 다녀온 후 처음 가는 비행이다. 비행을 앞두고 3개월 동안 업데이트된 업무 지시를 확인해 보니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각 국가 별로 입국, 검역 규정도 바뀌고, 기내 서비스 순서와 내용도 예전과 달라졌다. 내용들을 확인 후 3개월 만에 꺼내 든 유니폼을 다린다. 평소보다 더 정성스럽게 와이셔츠를 다리고, 바지 주름도 잡고, 구도 광택도 내고 집을 나선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평소 출입국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항이 썰렁하다. 삥 둘러봐도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공항 보안 요원이나 경찰들, 그리고 나 같은 승무원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당이나 커피숍은 말 그대로 파리 날리는 분위기… 아니 파리도 안 보인다. 


텅빈 인천 국제 공항


 출국장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 보안 검색 요원도 오랜만에 할 일을 찾은 듯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사람이 정말 없네요” 검색봉으로 내 몸을 흩고 있는 검색 요원에게 한마디 던지다. “그렇죠” 검색 요원은 별 의미 없이 건조한 대답을 돌려준다.


입국장에 들어서니 간간이, 정말 간간이 승객이 보인다. 얼마나 될까 세어보니 5명이다. 그 넓은 출국장에 승객이 달랑 5명이라니…. 면세점 직원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오지 않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이공 행 출발 비행기 게이트에 도착하니 동료 승무원이 사무실에서 가지고 온 가운과 마스크, 고글을 건네준다. 코로나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해줄 최소한의 방어 무기들. 한국은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다른 나라는 여전히 시끄럽다. 이런 상황에서 비행기를 타는 게 조금은 두렵지만 우리가 아니면 누가 '연결'해줄까? 그래도 오랜만의 비행이라 마음이 설렌다. 동료 승무원에게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2. 

사이공 도착 후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승객 맞을 준비를 하지만 여전히 승객 탑승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기내 서비스도 간소화되어 준비할게 별로 없다. 돌아갈 땐 밤을 새우며 날아가야 하기에, 비행 전에 너무 힘 빼지 말라고, 졸린 사람은 눈 좀 감고 있으라고 기내 불을 꺼줬다. 


곧, 승객 탑승 시간이다. 가운을 입고,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비장한 마음(?)으로 비행기 문 앞에 섰다. 문득 내 모습이 궁금하다.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데, 동료 승무원들이 "저도요, 저도요" 함께 찍자며 카메라 속으로 뛰어 들어온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나도 누군지 모르겠다. 


승객들이 탑승하기 시작한다. 백 퍼센트 마스크를 끼고 있다. 어떤 승객은 승무원처럼 고글과 방호복을 입고 탄다.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탑승 인사를 건넨다. 비말로 전염되는 코로나의 특성 때문인지 승무원도 승객도 다들 말을 아낀다. 승객 탑승이 끝나고 비행기 문을 닫고 베트남을 떠난다.


인천공항까지 비행시간은 4시간 20분….. 올 때 쉬고 왔다지만 그래도 밤 비행은 여전히 피곤하다. 기내 서비스는 착륙 전 있기 때문에 이륙 후 기내 정리를 하고 승무원들도 교대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승무원 휴식 공간인 벙커에 가서 한 시간 정도 누워 있어 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수시로 핸드폰의 시계를 보며 한 시간을 보냈다.


도착 1시간 30분 전 식사 서비스가 시작됐다. 예전에는 식사 종류가 3개였는데, 지금은 스크램블 에그 하나다. 승객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한 회사의 선택이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40분에 하는 서비스다 보니 승객들도 졸린 듯, 밝아진 기내 조명에 눈은 떴지만 그의 육체와 정신은 잠의 신과 대면하고 있는 듯, 밥보다는 잠이 먼저인 승객이 많다. 승무원들도 그 마음 잘 알기에 자는 승객 굳이 깨워 서비스를 하진 않는다. 


인천공항 도착 후 승객들이 내리고 승무원들도 그제야 갑갑했던 고글과 장갑, 가운을 벗었다. 고글은 다음 비행을 위해 가방에 넣고, 장갑과 가운은 휴지통에 버렸다. 기내 소독을 위해 분무기를 등에 진 직원이 왔다. 내 가방과 유니폼, 구두에 소독약을 뿌려 달라고 부탁했다. '칙칙'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묻어 있다면 저 분무기 소독약에 깨끗하게 사라져 주길...


입국장으로 가는 길, 우리 비행기를 타고 온 베트남 승객들이 미국으로 환승하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다. 지금까지 온 비행시간보다 최소 두배, 많게는 세배 이상 날아가야지만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온 길 보다 갈 길이 더 멀다.


입국장에 들어서니 승객들이 코로나 관련 안내를 받고 있다. 한국에 입국하면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하며 매일 자가 격리 앱을 통해 질병관리 본부에 본인의 몸 상태와 자기 격리 실행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 승무원은 자가 격리 대상에서는 제외지만, 다음 비행이 있기 전까지 자가 격리 앱을 통해 매일매일 본인 건강 상태를 보고해야 한다. 


함께 온 선배가 국수나 한 그릇 먹고 가자고 한다. 집에 가봤자 아내와 아들은 자고 있을 시간이다. 오랜만에 비행 갔다 왔다고 아내가 맛있는 밥을 해주겠지만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공항에서 국수 한그룻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멸치 육수의 잔치 국수였는데 국물이 담백한 것이 밤샘 비행의 피곤함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 입구에 놓아둔 소독약을 비행 가방과 유니폼, 구두에 뿌렸다. 10여 미터 앞에 아내와 아들이 서 있다. 두 사람에게 인사만 건네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비누로 온 몸을 씻고, 유니폼도 빤다. 혹시나 비행기에서 묻어 왔을지 모를 바이러스들을 씻어낸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 옆으로 가 하루 동안 잘 지냈는지, 별 일은 없었는지 묻고 아내가 가져온 따뜻한 차를 마시고... 차를 마시다 보니 밤샘 비행의 노곤함이 몰려오고..... 아내가 요가를 간 사이, 아들은 노트북으로 온라인 학습을 하고, 나는 침대에 눕는다. 이제 잘 시간이다. 


                           <지난 5월 초 베트남 비행 다녀와서 적어 놓은 비행 일기를 이곳으로 옮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 승무원과 '볼펜(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