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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8. 2020

# 스튜어드 런던 비행 일기

-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즐기련다 - 

런던 히드로 공항 앞 르네상스 호텔 방 구석에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이곳 시간은 아침 6시 13분을 지나고 있다. 배가 고파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를 했다. "아침 픽업 서비스 신청하고 싶다"고 하니 7시부터란다. 쏴리~


호텔 창 밖 풍경, 아침이 밝았다 / 호텔 방은 이렇다. 깔끔하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서 먹는 아침 부페가 픽업으로 바뀌었다. 프론트에 전화해 놓고 5분뒤 내려가서 음식을 픽업하는 방식이다. 빵과 요거트, 스크램블 에그 등이 들어 있어 "먹을만 했다"고, 3주 전에 5박 6일 비행을 왔던 동료 승무원이 말해줬다. 그녀는 원래 공항 대기 스케줄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갑자기 승무원이 필요한 경우 불려가는 스케줄.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이었는데, 우리가 가는 런던 비행에 승무원 한명이 당일 병가를 내는 바람에 런던까지 오게되었다. "3주 전에 5박 6일 왔었는데, 다시 4박 5일 런던이라니..너무 한거 아닙니까". "xx씨가 와서 큰 힘이 됐어. 고마워" 빈말 같지만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활약이 대단했던 런던 비행이었다.


평소 같았음 만석이었을텐데, 277명 탈 수 있는 비행기에 1/3도 안되는 75명만 태우고 왔다. 텅빈 기내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 한구석도 구멍이 뚫린 듯 허전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승객이 꽉 찼던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승객이 적어 수월할 줄 알았던 비행이었는데, 착각이었다. 일은 터졌고, 오늘 아침 공항에서 불려나온 그녀가 큰 활약을 했다. 벌어진 사건은 비행 수첩에 메모해 놓았다. 숙성과 양념의 시간을 거친 후 이곳에 풀어놓을 예정이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영국 코로나 사망자가 3만 7천 469명이란다 (5월 26일 기준).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상상이 되지 않는 숫자다. 사망자 숫자에 비행 사람들은 태평해 보인다. 어제 호텔 방에 도착 후 커튼을 열고 수분간 밖을 쳐다봤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 하나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다. 2주 전에 뉴욕 비행을 갔을 때는 그래도 반 이상의 뉴욕커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던데...


런던 비행은 원래 3박 4일이었는데, 역시 코로나 때문에 현재는 4박 5일, 혹은 5박 6일 스케줄로 운영하고 있다. 4박 5일로 온 나는 앞으로 이틀 하고 반나절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 '생존'을 위해 많이도 싸왔다. 


밥이 될만한 거로는 컵라면 2개, 햇반 3개 (인스턴트지만 몸에 좋으라고 '잡곡밥'), 죽 2개, 우동 1개, 반찬으로는 볶음 김치 2개, 멸치 볶음 1개, 그리고 반찬이 없더라도 밥에 부어 먹을 수 있는 낙지 볶음과 짜장 볶음. 참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떡볶이도 1개 가져왔다. 코로라 라지만 떡복이도 먹고 싶어~


책도 5권이나 챙겨왔다. 시간 보내기 좋은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1/2권>, 글자마다 우울함이 배어나오는 김애란의 <비행운>, 문화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광고 카피를 쓰는 이유미의 <문장 수집 생활>, 마지막으로 나태주 시인의 <죽기전에 시 한편 쓰고 싶다>. 5권 모두 책으로 가져오려다가 도서관을 검색해 보니 이북이 있어 나태주 작가 책만 빼고 모두 이북에 담아왔다. 먹을거랑 입을 거, 거기에 5권의 책을 더했다면 가방 무게와 부피가 상당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 5권을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의욕과 욕심만 앞선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왼쪽은 배를 채우고, 오른쪽은 마음을 채운다.


이틀하고 반나절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맘껏 즐기련다. 가져온 음식 다 먹고, 책 다 읽고, 브런치에 글도 5개쯤 쓰고, 햇빛 좋을 때 사람 없는 곳에 가 산책도 하고 싶다. 참, 그전에 밥부터 먹어야 겠다. 7시까지 8분 남았다. 프론트에 전화해야겠다. 음식 가지러 갈땐 햇반도 하나 데워와야지. 아니 우동 먹을까? 


* 참고로 승무원은 자가 격리 예외 직군이다. 비행기에서 방호복입고,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착용하기 때문에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해외에 가도 승무원들은 호텔 밖을 나가지 않는다 (나는 나가기도 하지만 사람 없는 곳 - 숲속이나 공원 - 만 골라간다. 햇빛은 쬐야하지 않겠어~). 식당이나 투어는 꿈도 꿀 수 없다. 비행 종료 후에는 2주간 건강 관리 앱을 통해 본인 건강 상태를 보고하고 있다. 


* 방금 '밥'을 픽업해 왔다. 동료 승무원 말처럼 생각보다 훌륭하다. 커피가 없어 좀 아쉽지만....(그래서 방에 있는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끓이고 있다. 밥도 먹고 싶어 햇반도 하나 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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