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10배의 독성?
기후위기, 환경변화 등과 맞물려 우리나라 바다가 온통 열대어에게 점령당했고 심지어 맹독성 문어까지 등장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이 문어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독극물로 여겨지는 청산가리보다 10배 더 강한 독성을 가졌다고 호들갑을 떨며 보도한다. 뉴스에는 보통 파란고리문어라고 소개되는데 확정된 국명은 파란선문어Hapalochlaena fasciata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고되었을 당시는 파란고리문어(영명 : Blue-ringed Octopus)Hapalochlaena lunulata로 알려졌었지만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유전자 분석을 해보니 그와 유사한 종인 Blue-lined Octofus라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직역해서 파란선문어로 명명하였다.
파란선문어 독의 성분은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인데 많이 알려진 독어의 독이기도 하다. 복어의 이빨이 4개라서 테트로돈이란 이름이 붙었고 복어의 독이라서 테트로도톡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어와 마찬가지로 이 독은 자체적으로 생성하는 것이 아닌 공생 박테리아가 만드는 것이며 문어의 침샘에 박테리아가 밀생한다고 한다. 테트로도톡신은 매우 강력한 독성 물질이며 25g의 파란선(또는 파란고리)문어가 가진 양으로 10명 이상의 성인을 치명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고 알려졌다. 같은 양으로 단순 비교하면 청산가리의 10배 이상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양의 독이 주입되는가이다. 사실 독성 문어에 의해 죽는 사람보다는 복어를 먹어 일어나는 사고나 청산가리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2018년 우연히 입수한 파란선문어를 수조에서 사육해 볼 기회가 있었다. 정보가 많지 않던 터라 수조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우려되었다. 주변에 여러 사무실이 입주해 있어 혹여라도 복도에서 집 나간 문어를 마주친 누군가가 손으로 만졌다가 큰 일을 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문어의 이름을 제파고라고 지었다. 당시엔 파란고리문어로 알려졌기 때문에 제주 파란고리문어를 줄인 말이다.
틈새를 잘 막은 작은 수조에서 4개월을 키웠다. 물은 가까운 바다에서 떠왔고 물갈이할 때는 수족관용 해수염으로 염분을 일정하게 유지했다. 먹이는 까다롭지 않아서 바닷가에 흔한 풀게나 납작게, 무늬발게 등 아무 게나 가리지 않고 잘 사냥했다. 게를 넣어주면 총알처럼 덮쳐 감싸 안아 마비시킨 후 몸통의 살만 파먹고 버린다.
작은 항아리 형태의 집을 넣어주니 평소엔 그곳에 들어가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이 반응이 좋지 않아 병이 났나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항아리 안에 알이 보였다. 지금까지 제파고가 암컷인줄도 몰랐지만 이 녀석이 잡혀온 지 4개월쯤 되었는데 짝도 없이 어떻게 알을 낳았을까? 게처럼 몸속에 정자를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수정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무정란을 낳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부화까지 볼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허연 허물 같은 것이 너풀대고 있었고 제파고의 색도 점점 바래갔다. 결국 제파고는 죽었고 알도 사라졌다. 어미가 죽기 전에 먹어버린 것 같았다.
불쌍하기도 하고 많이 아쉬웠다. 그땐 바쁘기도 했고 사전 지식도 거의 없어서 잘 키우지도 못하고 기록도 부족했다. 다시 발견하면 잘 키우며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파란선문어는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고 피한다. 그리고 사람을 함부로 물지 않으며 물렸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는 독을 많이 주입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다가 손에 쥐거나 낙지로 오인한 사람들이 잡다가 물리는 일이 생기면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파란 무늬가 늘 선명한 것이 아니라서 자연에서 보면 충분히 어린 문어나 낙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다가 따뜻해져서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아열대성 생물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며 늘 있어왔고 일어나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그 생물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우린 잘 관찰하고 기록해서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환경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이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