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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독성 문어를 키웠던 이야기

청산가리 10배의 독성?

by 깅이와 바당

게를 넣어주면 총알처럼 덮쳐 감싸 안아 마비시킨 후 몸통의 살만 파먹고 버린다.




기후위기, 환경변화 등과 맞물려 우리나라 바다가 온통 열대어에게 점령당했고 심지어 맹독성 문어까지 등장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이 문어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독극물로 여겨지는 청산가리보다 10배 더 강한 독성을 가졌다고 호들갑을 떨며 보도한다. 뉴스에는 보통 파란고리문어라고 소개되는데 확정된 국명은 파란선문어Hapalochlaena fasciata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고되었을 당시는 파란고리문어(영명 : Blue-ringed Octopus)Hapalochlaena lunulata로 알려졌었지만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유전자 분석을 해보니 그와 유사한 종인 Blue-lined Octofus라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직역해서 파란선문어로 명명하였다.


2020년 성산에서 채집된 개체

파란선문어 독의 성분은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인데 많이 알려진 독어의 독이기도 하다. 복어의 이빨이 4개라서 테트로돈이란 이름이 붙었고 복어의 독이라서 테트로도톡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어와 마찬가지로 이 독은 자체적으로 생성하는 것이 아닌 공생 박테리아가 만드는 것이며 문어의 침샘에 박테리아가 밀생한다고 한다. 테트로도톡신은 매우 강력한 독성 물질이며 25g의 파란선(또는 파란고리)문어가 가진 양으로 10명 이상의 성인을 치명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고 알려졌다. 같은 양으로 단순 비교하면 청산가리의 10배 이상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양의 독이 주입되는가이다. 사실 독성 문어에 의해 죽는 사람보다는 복어를 먹어 일어나는 사고나 청산가리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2018년 우연히 입수한 파란선문어를 수조에서 사육해 볼 기회가 있었다. 정보가 많지 않던 터라 수조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우려되었다. 주변에 여러 사무실이 입주해 있어 혹여라도 복도에서 집 나간 문어를 마주친 누군가가 손으로 만졌다가 큰 일을 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문어의 이름을 제파고라고 지었다. 당시엔 파란고리문어로 알려졌기 때문에 제주 파란고리문어를 줄인 말이다.

무늬발게를 사냥해서 집으로 끌고 가는 제파고
제파고가 먹고 난 무늬발게 껍질

틈새를 잘 막은 작은 수조에서 4개월을 키웠다. 물은 가까운 바다에서 떠왔고 물갈이할 때는 수족관용 해수염으로 염분을 일정하게 유지했다. 먹이는 까다롭지 않아서 바닷가에 흔한 풀게나 납작게, 무늬발게 등 아무 게나 가리지 않고 잘 사냥했다. 게를 넣어주면 총알처럼 덮쳐 감싸 안아 마비시킨 후 몸통의 살만 파먹고 버린다.


작은 항아리 형태의 집을 넣어주니 평소엔 그곳에 들어가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이 반응이 좋지 않아 병이 났나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항아리 안에 알이 보였다. 지금까지 제파고가 암컷인줄도 몰랐지만 이 녀석이 잡혀온 지 4개월쯤 되었는데 짝도 없이 어떻게 알을 낳았을까? 게처럼 몸속에 정자를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수정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무정란을 낳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부화까지 볼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허연 허물 같은 것이 너풀대고 있었고 제파고의 색도 점점 바래갔다. 결국 제파고는 죽었고 알도 사라졌다. 어미가 죽기 전에 먹어버린 것 같았다.

점차 힘을 잃고 죽어가는 제파고

불쌍하기도 하고 많이 아쉬웠다. 그땐 바쁘기도 했고 사전 지식도 거의 없어서 잘 키우지도 못하고 기록도 부족했다. 다시 발견하면 잘 키우며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파란선문어는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고 피한다. 그리고 사람을 함부로 물지 않으며 물렸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는 독을 많이 주입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다가 손에 쥐거나 낙지로 오인한 사람들이 잡다가 물리는 일이 생기면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파란 무늬가 늘 선명한 것이 아니라서 자연에서 보면 충분히 어린 문어나 낙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다가 따뜻해져서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아열대성 생물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며 늘 있어왔고 일어나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그 생물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우린 잘 관찰하고 기록해서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환경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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