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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개입 금지?

촬영은 촬영일뿐

by 깅이와 바당

난 자연을 탐구하며 내가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단순히 재미, 흥미, 감성을 자극하는 영상이 아니라 생물들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 속에 살아가는지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남극에서 황제펭귄을 촬영하던 BBC다큐멘터리 제작진이 혹한의 눈보라 속에 협곡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던 펭귄 무리를 구해주었다는 일종의 미담이 방송과 유튜브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자연에 개입하면 안 되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음에도 죽어가는 생명이 너무 안타까워 살려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https://youtu.be/2Co_hmLenD8?si=IvvCNUpAjysA4vIe

BBC 제작진 펭귄 구조 영상


규모는 다르지만 종종 비슷한 상황을 접했고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에피소드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옳았나?

만일 그 장소가 남극이 아니었다면 또 그 동물이 펭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섬으로 간 물고기>를 촬영하던 2021년도 어린이날, 휴일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하천 상황을 살피러 갔다가 작은 웅덩이 여기저기에 이미 죽어있거나 죽을 운명에 처한 은어떼를 발견했다. 건천 구간이 많고 바다로 빠르게 흘러내려가는 강정천과 악근내는 큰 비가 오면 무서울 정도로 많은 물이 빠르게 흐르다가도 비가 멈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수량이 줄어든다. 은어들이 불어난 급류를 피해 가장자리 풀숲으로 피신했다가 갑자기 줄어든 수위에 미처 본류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천 가장자리 웅덩이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이 은어들을 살려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죽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것인지 별로 고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주도 하천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며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인지 이 장면 하나로 설명이 가능해져서 속으로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은어 죽음.jpg 이미 말라죽은 은어들


햇볕은 뜨거워 물은 빠르게 증발되거나 땅으로 흡수되었고 이미 물이 거의 마른 곳의 은어들은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었고 그나마 조금 큰 웅덩이에 남은 수십 마리 은어는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높아지는 수온에 지쳐가고 있었다. 난 그 과정을 타임랩스로 촬영했다. 이 장면이 소개된 유튜브영상에 좀 살려주지 그랬냐는 댓글이 달렸다. 잔인하다고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내가 은어가 아니라 돌고래나 바다거북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냉정하게 촬영하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런 동물들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보게 된다면 살려주는 내 모습을 촬영할 것 같다. 이런 말을 들으면 평소 물고기의 지능이나 기억력을 강조하는 사람이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것은 그들의 생명가치가 아니고 생태적 지위라고 말하고 싶다.


웅덩이에 갇힌 은어떼


은어는 이런 위기를 수없이 겪으며 많은 수가 희생되기를 반복하며 생존했다. 정작 은어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기후변화나 환경오염 또는 하천이 자연 형태를 잃어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웅덩이에서 죽은 은어의 희생은 다른 생물들이 살아가고 은어의 서식지를 풍요롭게 하는 사이클의 일부이기도 하다.


난 자연을 탐구하며 내가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단순히 재미, 흥미, 감성을 자극하는 영상이 아니라 생물들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 속에 살아가는지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자연다큐계엔 자연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기보다 자신이 제작하는 다큐멘터리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어떤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주제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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