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 대한 편견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이 말의 영향력은 의외로 커서 평소 물고기에 관심이 없고 키워보거나 낚시조차 안 해본 사람들도 마치 상식처럼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물고기를 키워보거나 낚시를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난 다큐멘터리 <아이 엠 피시>를 기획하며 이 편견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낚시라고 생각했다. '물고기 기억력은 3초'라는 말은 낚시에 걸렸던 물고기를 놓아주면 금세 다시 낚시 미끼를 먹는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낚시를 통해 물고기 기억력을 실험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 아이디어는 실내 낚시터였다. 잡은 물고기에 표시를 하고 다시 놓아주기를 반복해 보면 대략 얼마 만에 다시 잡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제주도에는 실내낚시터가 없어 부산에 있는 낚시터에 문의를 했더니 실내 낚시터의 잉어들은 놓아주어도 바로바로 다시 잡힌다고 했다. 사실 낚시터에 방류하는 물고기들은 대개 양식산이라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에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으며 오랫동안 굶주린 상태라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다음 생각해 낸 방법은 내가 직접 물고기를 잡아서 키우며 낚시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일이 너무 많고 복잡한 데다가 변수가 많았다. 다른 촬영을 진행하면서 최소 수십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다 큰 수조에서 사육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균일한 조건을 갖춘 비교군을 만든다는 것도 아주 힘들고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사례를 찾다 보니 실제로 나와 같은 아이디어로 실시한 실험이 있었다.
https://www.biorxiv.org/content/10.1101/2020.01.30.925875v1.full
이 실험 역시 간단해 보이지만 물고기가 먹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지 낚시만 피하는 것인지를 확실하게 구별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양식산 어린 참돔Pagrus major으로 실험하였는데 사료로 먹이 반응을 확인한 후 한쪽에는 제대로 된 낚싯바늘에 끼운 크릴로 물고기를 잡아내고 다른 쪽에는 바늘 끝을 잘라 걸리지 않게 한 후 크릴을 달아 먹도록 했다. 반복 실험의 결과 낚시에 한 번 도는 두 번 걸렸던 물고기들은 다른 먹이는 먹지만 낚시에 달린 먹이는 거부했고 다시 미끼를 먹는데 며칠이 소요되거나 길게는 두 달 후에도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실험을 설계하고 시행하는 것보다 더 경험이 많고 전문적이고 이미 검증된 결과가 있는 만큼 방송에는 이 실험을 인용하기로 하고 좀 더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자연에서 실제로 물고기를 낚아 풀어주고 그 물고기가 다시 미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것이었다. 물론 객관성 있는 학술적인 검증 방법은 아니지만 시청자에게 시각적으로 설명하기에는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처음 떠오른 실험 물고기는 배스(큰입우럭Micropterus salmoides). 루어에 반응이 좋은 배스는 같은 루어에 두 번 잡힐까? 내 경험에 의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같은 루어가 아니라도 낚시에 걸렸던 배스는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무리 중 하나가 잡혀가는 모습을 본 주변 배스들조차 같은 루어엔 쉽게 유혹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다만 이런 모습을 물 밖과 안에서 촬영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배스 서식지도 대체로 수중촬영을 하기에는 탁하거나 부유물이 많은 조건이라 결국 다른 대상어가 필요했다.
최종적으로 나의 선택을 받은 물고기는 바로 쏨뱅이Sebastiscus marmoratus였다. 쏨뱅이는 바닥에 붙어살지만 먹이를 사냥할 땐 굉장히 날렵하고 몸집에 비해 큰 먹이도 한입에 삼키는 먹성 좋은 물고기이다. 낚시꾼이 잡아 올린 쏨뱅이 입에서 바늘을 빼다가 지느러미 가시에 찔려 쏨뱅이를 물에 떨어트린 후 그 물고기에게 같은 미끼를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는 장면으로 일부 연출을 했다.
실제로는 수중에서 낚시를 해서 실험했는데 루어에 잡혔던 쏨뱅이에게 다시 루어를 보여주면 피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미끼를 소라살로 바꿔 보여주면 다시 낚시에 걸려들었다. 소라살 미끼에 잡힌 쏨뱅이는 당연히 또 다시 소라살에는 반응하지 않고 도망갔다. 정리하면 낚시에 걸렸던 쏨뱅이는 같은 미끼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한동안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므로 '물고기 기억력 3초'는 잘못된 말이라는 것이다.
https://youtu.be/lpyyFbUYxGk?si=MkdyfWO9cicotmB5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로 물고기 역시 종이나 성장 환경 그리고 개체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지만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은 물고기가 자신에게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수일 또는 수개월 심지어 11개월까지 기억했다는 것이다.
물고기 기억력은 절대 3초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