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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등대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호테우해변 말등대의 비밀

by 깅이와 바당

흙더미와 콘크리트 아래 사라진 생물들과 아름답고 비옥했던 서식지를 생각하면, 말등대는 관광의 아이콘이 아니라 생태계 파괴를 경고하는 상징이어야 한다.



이호-8.jpg 추악한 욕심을 감추기 위해 세운 말등대


언제부터인가 이호테우해변의 말등대는 제주 관광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말 모양 등대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낸다.


이호 조간대가 매립된 시기는 내가 제주로 이주하기 직전이었다. 2009년 1월, 제주에 도착했을 때 매립 공사는 마무리되고 있었고 말등대는 이미 서 있었다. 나의 집과 가까운 탓에 종종 방문했지만 그 장소와 말등대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다. 다만 바다를 매립해 만들어진 2만 6천 평의 넓은 땅이 공터로 남아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호매립지.jpg 2013년 완공 직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이호 매립지 옆의 조간대에서도 촬영을 진행했다.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조간대에서는 다양한 환경과 서식 생물들이 발견되었다. 사라진 2만 6천 평은 이호해수욕장과 연결된 암반 조간대라 흥미로운 장소였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매립지는 여전히 사람들의 주차장으로 밖에 활용되지 않았고, 그 맘 때, 이호 매립지 개발 재개에 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호9-2.jpg 조잡한 조형물들


나는 중국을 혐오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자본이 들어간 제주도의 많은 개발사업은 그다지 좋게 끝나지 않았다. 이호 매립지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의 분마 그룹이 마리나항과 유원지 개발을 시작했으나, 투자도 원활하지 않았고 방식이 무리하여 결국 쓸모없는 땅과 두 개의 말등대만 남긴 채 사업이 무산되었다. 물론, 손쉬운 수익을 쫓아 자본을 유치하려 했던 제주도정과 바다를 넘겨준 지역 주민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관광객들이 바닷가에서 작은 보말 몇 마리를 잡으려 해도 큰 소리로 위협하며 쫓아내는 사람들이 결국 그렇게 귀중한 바다를 돈 몇 푼에 포기한 것에 화가 난다.

이호9-3.jpg 왜 돈 들이고 자연 파괴하며 이런 풍경을 만들어야 하나?


주차장으로 이용되던 공터는 불법 캠핑카들로 인해 결국 폐쇄되었고,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로 남아있다. 바다 매립은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이호 매립은 투자 유치라는 성과만 바라본 제주도정, 무책임한 투기 자본, 그리고 지역 주민의 욕심이 얽히면서 이루어진 사업이다. 말등대는 그들의 욕망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

이호9-5.jpg 매립지 바로 옆에 남은 자연 조간대에서 노는 아이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아무리 아름다운 노을이 배경이 되어도 말등대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까짓 사진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흙더미와 콘크리트 아래 사라진 생물들과 아름답고 비옥했던 서식지를 생각하면, 말등대는 관광의 아이콘이 아니라 생태계 파괴를 경고하는 상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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