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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으로 밝혀낸 고둥의 비밀

큰뱀고둥

by 깅이와 바당

난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큰뱀고둥 입 부분을 클로즈업해서 장시간 촬영을 해보았다. 나중에 카메라를 회수하여 살펴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생물을 보면 그들의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그런 특성이 발현되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또 간혹 촬영이나 관찰을 통해 답을 찾기도 한다. 난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큰뱀고둥Thylacodes adamsii에 대한 것이다.


조수웅덩이 벽에 붙은 큰뱀고둥(무절석회조류가 큰뱀고둥 위에서 자라고 있다)


고둥은 복족강에 속하는 연체동물 중 나선형 껍질을 가진 것을 말하는데 그중에서도 달팽이에 속하는 것과 구분해서 부르는 통칭이다. 그런데 고둥이란 이름이 붙은 것들 중에도 일부 나선형이 아닌 형태의 껍데기를 가진 경우가 있으며 뱀고둥과의 고둥들은 패각이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그 가운데 큰뱀고둥은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보이며 다른 지역에도 서식한다. 입(각구)의 직경은 보통 1cm 전후이고 길이는 개체 간 차이가 많으나 보통 곧게 펼쳐놓으면 10~15cm가량 될 것 같다. 큰뱀고둥 껍데기를 둥지로 삼는 앞동갈베도라치가 7cm 정도 되는데 큰뱀고둥껍질 속에 쏙 들어가면 전혀 안 보일 정도가 된다.


물결에 따라 뿜어내는 점액질


큰뱀고둥은 생긴 것만 일반적인 고둥과 다른 것이 아니고 사는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다. 복족류란 분류명은 배로 기어 다닌다고 해서 붙은 것인데 큰뱀고둥은 기어 다니지 못하고 바위에 붙은 채로 껍질이 자란다. 그래서 제주 바닷가 사람들은 이것을 굴이라고 부르는데 맛도 굴만큼 좋다고 한다. 바위 표면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면 먹이나 먹는 방법도 다른 고둥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물쳐럼 펼쳐진 큰뱀고둥의 점액질


큰뱀고둥 주변에는 거미줄처럼 끈적끈적한 줄이 늘어져 있거나 그물처럼 펼쳐진 것을 볼 수 있다. 장소나 환경에 따라 안 보이기도 하고 아주 길기도 하며 넓은 범위에 많은 양이 있는 경우도 있다. 큰뱀고둥이 가장 많이 보였던 곳은 서귀포의 소천지다. 유난히 큰뱀고둥도 많고 거미줄도 많이 뿜어낸다.


소천지 전경


소천지는 농구장 보다 넓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3미터 가까운 꽤 크고 깊은 웅덩이이다. 그런데 만조에도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경우가 드물고 조금씩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구조라 웅덩이 바닥엔 퇴적물이 많고 녹조도 잘 발생해서 물이 탁한 편이다. 큰뱀고둥들은 깊지 않은 곳 바위 위에 붙어살며 파도나 조수에 의해 물이 흔들릴 때 떠오르는 퇴적물을 먹고 산다. 그래서 물이 잔잔하면 쉬고 있다가 퇴적물이 감지되면 그물을 만들기 시작한다. 내가 촬영을 하기 위해 들어가 움직여도 같은 효과가 있다. 일부러 부유물을 일으켜주면 더 많은 그물을 만든다.


해조류를 날카로운 부리로 잘라 먹는다


큰뱀고둥은 거미줄에 먹이가 많이 붙으면 다시 입으로 빨아들여 먹는데 큰 먹이는 날카로운 이로 잘라먹는다. 보통 고둥은 치설로 먹이를 먹이를 갉아먹는데 큰뱀고둥은 문어나 오징어처럼 치설 외에 자르는 이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그와 관련된 자료를 찾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

그물을 빨아들여 먹고 있는 큰뱀고둥


큰뱀고둥을 촬영하다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겼다. 이 거미줄 같은 끈끈한 점액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역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큰뱀고둥 입 부분을 클로즈업해서 장시간 촬영을 해보았다. 나중에 카메라를 회수하여 살펴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점액은 바로 큰뱀고둥의 더듬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듬이 끝에서 점액질 덩어리가 나온다


확대해서 본 더듬이는 튜브처럼 안에 비어 있었고 더듬이가 톡톡 튕겨지며 그때마다 안에서 희고 길쭉한 덩어리가 튀어나왔는데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가 아주 가느다란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물의 정체였다.


다큐 제작자로서 이런 발견은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술적으로 더 깊게 연구할 형편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누군가 여기에 힌트를 얻어 파고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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