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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때부터 간직한 꿈을 이루다-2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다

by 깅이와 바당

수많은 우연 중 유효했던 결과만 골라내면 그것이 운명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는 늘 동경했지만 멀게 느껴졌다. 물고기를 좋아하고 평생 낚시를 했음에도 바다는 여름철 해수욕장에 가서나 접하는 것이 거의 다였다.

촬영한 장소는 성산일출봉의 서쪽 아래 수마포라는 곳이었는데 제주대학교 최광식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생물들을 보여주며 암반조간대의 특성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벌써 16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고 그때 들은 교수님의 설명이 여전히 내 지식의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마포 조간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지금 다시 생각하면 그때 본 생물들은 아주 흔한 대표적인 제주 조간대 생물들이었는데 보라성게, 군부, 참집게, 눈알고둥, 개울타리고둥 그리고 부채게와 무늬발게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난 그 다양성에 크게 감탄했고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바로 그 직후 운명처럼 제주도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게 되었다. 그땐 다른 프로덕션에서 직원으로 일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제주도 곳곳의 조간대를 다니며 생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제주 올레를 소개하는 MBC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촬영감독을 담당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쉽게 가기 힘든 제주도 구석구석을 살펴볼 기회가 되었다.

10여 년 만에 수마포에서 최광식 교수님과 함께

내가 제주도 조간대 생물에 대한 글을 다음 블로그에 연재했는데 그 글을 본 최교수님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 교수님은 내가 그때 그 촬영감독이었다는 걸 미처 모르고 누가 이렇게 제주 조간대 생물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연락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촬영할 때 제대로 된 카메라 하우징이 없어 비닐 하우징과 어항을 이용해 물속을 촬영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도 했다.


깅이와 바당이란 회사를 만들며 바다나 생태와 관련된 일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 같으면 관리자가 되거나 은퇴까지 생각할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하는데 또다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진 않았다.


https://youtu.be/G6S-xtmIWP0?si=7fRVny-zAR1c_Xub

회사 설립 후 첫 작품인 대양을 담은 바다 조수웅덩이

그리고 몇 년간 계속 마음속에서 이건 무조건 다큐 각이라고 생각했던 '조수웅덩이'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고 첫 번째 기회를 잡았다. 그린다큐멘터리 제작지원 공모사업은 이름과 달리 환경이나 자연 다큐를 지원하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기획하고 피칭에 임했고 다행히도 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제작비를 받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던 MBC의 김환균 PD가 이런 주제의 다큐도 한 편은 지원해 주자고 강력히 주장한 결과였다고 한다.


그 이후 회사는 해양생태 전문 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잡았고 나는 해양 자연다큐감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선 어릴 적 꿈으로부터 시작해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굴곡진 삶의 궤적을 지나오며 쌓인 경험, 지식 그리고 인연이 큰 역할을 했다. 수많은 우연 중 유효했던 결과만 골라내면 그것이 운명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생물 촬영엔 더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젠 전통적인 방식의 다큐멘터리는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고 나 역시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되었지만 다큐멘터리가 무엇이며 어떤 사람이 만드는 것인 줄도 몰랐던 시절, 막연하게 동물의 왕국을 꿈꾸었듯 내 꿈은 지금도 변치 않았으며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동물의 왕국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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