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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때부터 간직한 꿈을 이루다-1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다

by 깅이와 바당

그것이 바로 운명이란 것인가? 드디어 내 눈이 떠진 순간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지만 난 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현재의 내 직업은 4살 때부터 가진 꿈이었다.

달랑게 촬영 중

1991년부터 시작하여 방송, 영상 관련 분야에서 일한 지 34년 차에 들어섰다. 그런데 어릴 적 꿈이 감독이나 PD는 아니었다. 난 동물의 왕국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경제적 여건이 썩 좋았던 기억은 없지만 아주 어렸을 적부터 집에 TV가 없었던 때는 아주 잠깐 뿐이었다. 도봉구 수유리에 살던 4살 무렵, 가늘고 긴 4개의 다리가 달린 작은 흑백 TV가 있었는데 당시 내가 가장 즐겨 본 프로그램이 바로 동물의 왕국이었다. 동물의 왕국은 지금도 방영하고 있으니 아마 뉴스를 제외하면 최장수 프로그램그램이 아닐까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물의 왕국의 주 무대는 아프리카 초원이다. 사자가 영양을 사냥해서 먹으면 하이에나가 기웃거리다 남은 사체를 처리하는 그런 내용이 주류다. 물론 난 동물은 다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톰슨가젤이며, 누우 그리고 스프링벅, 임팔라 등등 등장하는 영양의 이름도 알았다. 물론 요즘에는 나조차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곤충 이름을 줄줄 꿰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당시는 코끼리가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로 나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때였다.


아프리카 동물들도 좋았지만 동물의 왕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내용은 바닷속 생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흑백으로 본 바다 풍경이 왜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고기는 워낙 다양하고 적절한 번역도 되지 않았을 터이라 특별한 생물 이름이나 에피소드를 명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물고기라곤 물밖에 꺼내 놓은 것과 어항 속 금붕어 정도만 보았으니 사람이 들어가 물속 세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던 것 같다.


잠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공기통을 매고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따라다니며 촬영하는 모습과 물속에 집을 만들어 그곳에서 생활하는 장면이 어린 나에게 깊게 각인되었다. 당시에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며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막연하게 난 동물의 왕국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좀 더 자라선 그 사람들이 동물학자였다고 여기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어릴적 본 동물의 왕국에서 생각나는 장면과 비슷한 이미지(맨 오른쪽이 쿠스토)
1964년 작 Word Without Sun 물속 집에서 생활하는 이야기

이 계통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난 후, 어릴 적 나의 롤모델이 된 사람이 누구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프랑스의 국민 영웅 자끄 이브 쿠스토였다. 60년대에 수중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도 극히 일부였겠지만 무엇보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실험을 한 사람이 쿠스토였기 때문이다. 쿠스토는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최초로 개발했고 해양 탐험가이자 영화제작자로 평생을 살았으며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난 성장하는 동안 그 꿈을 이루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는 못했다. 그 분야에 대해선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그것은 부모님을 비롯해 내 주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아 동물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는 것도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대입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누나의 권유로 연극영화과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영화 촬영을 전공하면 동물의 왕국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나름의 논리가 만들어졌다. 워낙 높은 경쟁률에 전기에선 고배를 마시고 서울예대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1차 지망한 학교를 나왔으면 학교 분위기상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진출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BS하나뿐인 지구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 편에서 촬영한 물거미의 생태

제주에 오기 전엔 다양한 장르 제작에 참여했다. 먹고사니즘도 문제였지만 우리나라는 자연 다큐 불모지였다. 그래도 자연 다큐를 하려는 일념으로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에 입사했고 어렵게 잡은 기회는 그놈의 IMF사태로 회사와 함께 분해되었다.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어려움과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EBS하나뿐인 지구 촬영 의뢰를 받았다. 심각한 저예산, 짧은 제작 기간 등 노동 착취에 가까운 프로그램이었으나 그래도 자연과 생물을 촬영한다는 즐거움이 훨씬 컸기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열악한 제작 환경은 오히려 나의 능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짧은 제작 기간 덕분에 다양한 곳을 다니며 우리나라 자연환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경험과 관심으로 쌓인 동물에 대해 이해, 낚시와 사육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을 총동원해 저예산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수준의 생태를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하나뿐인 지구 촬영은 결정적으로 내가 바다 생태에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었다. 제주 올레의 풍광과 생태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중 조간대 생물들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운명이란 것인가? 드디어 내 눈이 떠진 순간이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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