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망낚시
조간대에서 촬영하다 보면 가끔 고망낚시 하는 분을 만난다. 대부분 동네 어르신이다. 허름한 평상복에 조그만 대바구니를 허리에 차고 짧은 낚싯대를 바위틈에 드리우고 있는 모습은 멋스러운 복장에 세련된 장비로 무장한 신식 꾼들보다 정겹고 낭만적이다.
처음엔 냇가에서 피라미 잡듯 노인들이 조그만 물고기 잡아 밑반찬이나 하려나 싶었는데 고망낚시꾼의 고기 바구니(제줏말로 궤기구덕)를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꽤 큼직한 물고기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난 그분들께 출연을 요청드리고 낚시 과정을 자세히 촬영했다.
내가 본 제주도 고망낚시는 크게 3가지 형태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대나무 낚시에 낚싯대보다 약간 짧은 줄을 매고 추와 바늘을 달아 바위틈에 미끼를 넣어 잡는 것으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형태의 낚시이다. 또 다른 방법은 짧은 낚싯대 끝에 겨우 바늘을 묶을 정도의 극단적으로 짧은 줄에 추 없이 바늘만 달아 미끼를 돌 밑에 넣고 낚싯대를 꽂아두는 방법이다. 이런 형태는 개울에서 메기나 꺽지를 잡는 육지의 구멍낚시와 같다. 난 마지막 방법이 가장 독특한 제주의 고망낚시라고 생각하는데 위의 두 방법이 적절히 섞여있다.
줄이 길고 추가 크면 멀고 깊은 곳까지 미끼를 보낼 수 있지만 바위틈에 추나 바늘이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 결국 줄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또 바위틈에 낚시를 꽂아두는 방식은 입질을 느끼고 낚아채는 낚시의 묘미가 없고 물고기가 미끼만 먹고 가버리는 경우도 많다.
내가 전수받은 방법은 사람 키보다 조금 더 긴 대나무에 1미터 정도의 줄을 묶고 그 아래에는 2mm 전후 굵기의 구리선이나 철사를 3, 40cm 연결하고 다시 5호 이상의 굵고 짧은 목줄(바늘과 연결하는 줄)에 큰 바늘을 다는 것이다. 미끼는 바늘이 안 보일 정도로 여러 마리의 크릴을 꿰어 쓴다. 구리선이나 철사의 역할은 추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작은 구멍에 미끼를 밀어 넣기에 아주 유용하다. 구멍이 옆으로 뚫려있으면 미리 구부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물고기가 있을만한 곳을 잘 찾는가가 고수와 하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무조건 깊은 곳에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얕은 곳에 큰 물고기가 숨어 있다. 표층을 떠다니는 물고기가 아니라 바위틈에 매복했다가 먹이를 잡아먹는 일명 락피시(Rock Fish) 들은 썰물에 물이 빠져도 먼바다로 나가지 않고 얕은 곳 바위 아래 머물러 있다가 물이 들어오면 돌 틈에서 작은 갑각류나 어린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은신하고 있는 물고기 코 앞에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들이밀면 제 아무리 똑똑한 물고기라도 생각할 겨를 없이 입질을 하게 된다. 단 대부분의 물고기는 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먹이 활동을 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파도나 조수로 물이 살랑살랑 돌 사이로 들고 날 때 자연스럽게 물살을 타고 미끼가 흘러들게 해야 덥석 문다.
고망낚시에 낚이는 물고기는 제주에서 우럭, 어렝이, 보들락이라고 부르는 물고기가 주종인데 각각 한 종이 아닌 비슷한 무리를 부르는 통칭이다. 일반적으로 우럭이라고 하면 조피볼락을 이야기하지만 제주에선 조피볼락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며 잘 잡히는 것은 쏨뱅이와 개볼락이다. 어렝이는 놀래기과 물고기를 말하며 낚시에는 주로 놀래기, 용치놀래기, 어렝놀래기, 황놀래기가 잡히는데 이들은 주 대상어가 아니라 환영받지 못하는 잡어에 가깝다. 보들락 또는 보들레기 등으로 부르는 물고기는 그물베도라치와 황점베도라치이며 아주 얕은 곳에서 물기만 있어도 버티기 때문에 고망 낚시에 특화된 물고기라고 할 수 있는데 몸은 미꾸라지처럼 길고 미끄럽다. 썩 먹고 싶게 생기진 않았지만 맛은 좋다고 한다.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날이 좀 풀리면 고망낚시로 탕거리를 조달해야겠다.
*제줏말 해설
고망 : 구멍
호끌락헌 : 조그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