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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버들치로 살기-1

흔하지만 값진 물고기

by 깅이와 바당

작은 수컷 버들치들이 큰 암컷 버들치를 쫓아다니면 귀찮다는 듯 도망 다니던 암컷이 어느 순간 땅을 파고들고 잇달아 수컷들이 바닥을 휘저어 흙탕물을 만들었다.



서식 생물 중 무태장어 외엔 모두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는 안내판


제주도에 살면서 특별히 생태와 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버들치라는 물고기에 관심이 있거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흔히 작고 하찮다는 의미로 피라미라는 물고기 이름을 사용하듯 제주에선 버들치를 그보다도 작아 거의 의미가 없는 물고기란 뜻으로 송사리라고 부른다. *참고로 제주도에는 송사리가 살지 않는다. 하긴 바다에 경제적 가치가 큰 생선이 수없이 많은데 맛도 없고 크기도 작고 양도 적은 민물고기 따위를 누가 신경 쓰겠는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난 왜 하필 민물고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제주로 오기 전까지는 평생 민물고기 마니아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제주에 온 이후에도 하천의 민물고기들을 살펴보았고 그 과정에서 제주의 민물고기들이 어떻게 섬에 살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예례천 하구


어느 날 예례천 하구의 수중 생물을 촬영하다가 눈알고둥을 주둥이로 쪼고 있는 물고기를 보았는데 바다에 선 본 적 없는 물고기라 잠시 갸우뚱했지만 모습은 너무 익숙했다. 다시 보니 버들치가 확실했다. 버들치는 담수에서도 주로 하천 상류 지역에 사는 물고기인데 바닷물과 섞이는 기수에서 그것도 바다에 사는 눈알고둥을 먹으려고 하는 모습은 정말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때 난 제주의 민물고기들은 육지와 다른 특수한 환경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적응하여 살아 가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급류를 피해 가장자리 풀 뒤에 숨은 버들치들


바닷가의 버들치는 분명 자발적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고 폭우 때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왔을 것이다. 버들치가 하류로 떠내려가는 일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일어나겠지만 제주 하천은 상류, 중류, 하류로 이어지며 조금씩 달라지는 구조를 갖는 다른 지역과 달리 하천의 최상류의 형태를 띠고 있다가 갑자기 바다로 흘러든다. 그래서 버들치의 서식지가 바다에서 가깝고 큰 물이 나면 바다까지 떠내려 가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예례천의 경우 하구에 작은 보가 있는데 떠내려가던 버들치가 이 보를 넘어서게 되면 다시 상류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폭우 뒤 강정천 하구


이곳뿐 아니라 제주도 많은 하천 하구에 보가 있다. 버들치 크기의 물고기가 보를 뛰어넘긴 힘들다. 또 어떤 곳은 하천과 바다 사이에 폭포가 있다. 강정천도 그렇지만 대표적인 것이 정방폭포이다.

정방폭포는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명승 제43호)로 유명하다. 사실 폭포가 직접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폭포 아래 큰 소가 있는데 평소엔 바다와 조금 떨어져 있으나 대조기 때나 파도에 의해 바닷물이 유입되기도 한다.


정방폭포


정방폭포 위로는 동홍천이란 짧은 하천이 흐르는데 평소엔 대부분 물이 없는 건천이고 폭포 위로 약 500m 구간에만 항상 물이 흐른다. 이곳엔 정모시쉼터라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여름엔 물놀이장도 열린다.


버들치 산란


2021년 4월 중순 경, 정모시쉼터에서 버들치를 관찰하다가 산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작은 수컷 버들치들이 큰 암컷 버들치를 쫓아다니면 귀찮다는 듯 도망 다니던 암컷이 어느 순간 땅을 파고들고 잇달아 수컷들이 바닥을 휘저어 흙탕물을 만들었다. 알을 낳고 수정시키는 과정이지만 어떤 녀석들은 그 틈을 타 알을 먹는 것처럼 보였다.


촬영 중인 윤순태감독


이런 장면은 아무 준비가 없을 땐 쉽게 보이는 듯해도 막상 촬영하려고 하면 카메라 앞에선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에 이곳이 아니면 버들치 산란을 촬영하지 못할 확률이 크기에 평소 수중촬영을 같이 하는 김건태감독님 외에 민물고기 번식 장면 촬영 경험이 많고 관련된 학위도 있는 윤순태감독님을 급히 호출했다. 셋이서 정모시의 버들치 산란을 열심히 촬영한 결과 짧은 시간에 쓸만한 장면을 몇 컷 건질 수 있었다. 아쉬운 건 우리들이 가진 수중 카메라가 모두 고속 촬영이 안 되는 것이라 좋은 품질의 슬로모션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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