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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버들치로 살기-2

흔하지만 값진 물고기

by 깅이와 바당 Mar 21. 2025

제주의 버들치는 육지 지역의 버들치와는 약 23만 년 전에 분화되었을 것이라는 연구가 있는데 그때부터 수많은 역경을 겪으면서 지금껏 살아남았으니 작지만 정말 대단하고 대견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정방폭포 위 정모시 쉼터


정방폭포 위에 약 500m까지 이어지는 하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버들치도 꽤 많이 산다. 이곳에서 뱀장어를 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는 버들치외 물고기는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뱀장어가 이곳에 산다는 것은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물론 어린 뱀장어는 물기만 있어도 벽을 기어오르기 때문에 절대 일어나지 못할 일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약 23m를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정방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


평소에도 수량이 풍부한 정방폭포는 비가 오면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내린다. 이럴 때 버들치들은 가장자리 풀숲에 몸을 숨기는데 미처 피하지 못했거나 힘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물살에 휩쓸려 떨어지는 버들치들도 있다. 덩치가 큰 물고기라면 떨어질 때 충격이 크겠지만 손가락 만한 버들치에겐 큰 대미지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버들치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동안 바위만 피하길 기도했을까? 아니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 서운해했을까? 어쩌면 영화에서 다른 세계로 통하는 포털을 지나듯 부서지며 무지개 빛을 내는 물의 파편 속에서 미지의 세상으로 가는 기대감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폭우가 온 후 정방폭포


적어도 버들치는 한 번 폭포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갈 방법이 없다. 큰 물이 지나고 난 뒤에 정모시의 버들치 개체 수가 많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여 떨어진 버들치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폭포 아래 소에 들어가 보니 정말 많은 수의 버들치가 있었다. 소에서 번식한 것일 수도 있지만 폭포 위에서 떨어진 버들치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폭포 아래 소에 사는 버들치


정모시의 버들치는  상류로는 물이 없어 못 가고 폭포 아래로 떨어지면 영원히 고향과 결별하는 이런 고립된 환경에서 상당 기간 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되었을까?


버들치가 스스로 폭포 아래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올 수 없다면 누군가 옮겨 주었거나 상류에서 내려왔어야 한다. *외국의 연구에 의하면 물새의 깃털에 알이 묻어 이동하거나 오리류가 물고기 알이 붙은 수초를 먹고 다른 장소에 가서 배설을 하면 미처 소화되지 않은 수정란이 새로운 장소에서 부화할 수도 있다고 한다.

정모시에서 버들치를 사냥한 중대백로


하지만 버들치는 모래나 자갈에 알을 낳기 때문에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옮겼을까? 특별히 이용가치가 없는 버들치를 다른 장소에서 이곳까지 수고스럽게 옮겼다는 것도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제주의 다른 하천들과 마찬가지로 제주가 섬이 될 때 상류 어딘가에 갇혀있던 버들치 무리가 큰 비로 인해 생긴 물줄기를 따라 이곳에 흘러 들어왔다가 고립되었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정방폭포만큼 극적이진 않아도 제주의 버들치는 대체로 비슷한 환경에 산다. 급류에 떠내려가거나 건천 웅덩이에 고립되기 일쑤고 그 과정에서 많은 수가 희생된다. 그러면 남은 소수의 버들치가 다시 열심히 번식해서 개체 수를 유지하는 것이다.


제주의 버들치는 육지 지역의 버들치와는 약 23만 년 전에 분화되었을 것이라는 *연구가 있는데 그때부터 수많은 역경을 겪으면서 지금껏 살아남았으니 작지만 정말 대단하고 대견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흔하디 흔한 이 작은 물고기들이 다시 보이지 않나?

https://youtu.be/u2FtuM_aJW0?si=4xwJmS0mJL8pqlm3

섬으로 간 물고기 중 정방폭포 버들치 에피소드


<참고문헌> 

심재한, & 박병상(1998). 제주도의 척추동물상과 종분화 및 지사학적 역사. 환경생태학회지 12(1), 42~57.

Lovas-Kiss, Á., Vincze, O., Löki, V., Pallér-Kapusi, F., Halasi-Kovács, B., Kovács, G., ... & Lukács, B. A. (2020). Experimental evidence of dispersal of invasive cyprinid eggs inside migratory waterfowl.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117(27), 15397-15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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