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이었다.
바르셀로나 지역 특성상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그중 내 담당 존에 혼자 탑승해
잔뜩 화가 나 있는 얼굴을 한 남자 승객이 있었다.
오케이. 오늘 내 존의 빌런은 저 사람이다.
저 사람 심기만 건들지 말자.
그날 비행은 우리 팀 비행이었고
유난히 팀 분위기가 좋았던지라
다들 방실 방실 웃으며 비행했고
나 역시 들뜬 마음으로 손님들과 교감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첫 번째 식사가 끝나고 회수하는 시점이 와
카트를 끌고 나가 트레이들을 치우고 있었다.
15열쯤 회수하고 있는데
뭔가 등이 따끔거렸다.
뒤돌아보니 화가 많이 나 있던 남자 승객이
내 뒤에 서 있었다.
화장실이 뒤쪽에 있어 나는 손님에게
“화장실 가시게요??”
했더니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네??”그러자
인상을 잔뜩 쓰고”갔다 왔다고 “ 라며
무섭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심장이 쿵쾅댔고 (반대편에서 서비스하던 선배님도 놀라 나를 쳐다볼 정도였다.)
그 손님을 먼저 착석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뒤에 손님들이 기다리시는데도 카트를 빼
그 손님을 자리에 앉혔다.
저 사람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나는 잘못한 게 없고 심지어 매우 잘하고 있었으니
신경 쓰지 말자 생각했다.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고 손님들의 휴식을 위해
소등했고 드디어 우리도 엉덩이 붙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왔다.
“아이고오.... “
곡소리를 내며 내려진 컨테이너 위에 앉았고
크루밀의 포일을 벗기는 순간
“띵!” 팩스콜이 울렸다.
잽싸게 나가보니 그 남자였다.
“종이 좀 주세요.” 라며 싸늘하게 말하는 그.
나는 바로 메모지를 가져다줬다.
그러자
-아니 나한테 주지 말고 내 자리 서빙한 승무원
이름 쓰세요.
네? 전데요? 손님 혹시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신다면..
-아니 이름만 써서 주고 가세요
네?.... 제가 혹시 불편하게 해 드렸을까요?
-아니, 이름 쓰고 가서 일 보시라고.
심장이 쿵쾅댔다.
바로 팀장님에게 가 보고했다.
식사 중인 팀장님을 방해하는 것도 죄송했고
이런 일로 보고 드리는 것도 죄송했다.
팀장님은 신경 쓰지 말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결국 나는 그 이후 밥을 한술도 뜨지 못한 채
긴 비행시간을 버텼다. 체할 것 같았다.
두 번째 서비스할 때는 그 사람이 신경 쓰여
제대로 된 서비스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아 화도 났다.
팀장님은 모든 서비스가 끝나고 내리기 전
그 남자에게로 가 혹시 무슨 일인지 알려주시면
사과하겠다 했더니
그 사람은 다짜고짜
고객만족팀에 불만을 접수할 것이다.
자꾸 자기한테 와서 더 불편하게 하면
너까지 접수한다며 협박했다.
팀장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유도 없이 우리 모두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았다.
억울했다.
내가 한 서비스는 전 승무원이 지켜보고 있었고
그날 칭송도 받았으며
한 할머니는 내리시며 이쁜 아가씨 너무 고맙다고
하시기도 했다.
나는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를 반협박한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손님께 제대로 된 서비스를 못 해 드려
너무 화가 났다.
결국 그 사람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객의 말씀을 쓰지 않았다.
비행을 하다 보면 명찰부터 뚫어져라 보거나
다짜고짜 이름이 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우리에게 협박이나 다름없다.
본인도 알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한테 잘못하면 너 죽어. 알지?‘
하아....
수백의 선하신 손님들 사이에 끼어있는
빌런.
어떤 내면을 지닌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