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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Jan 24. 2022

완전히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

사진출처-언플래쉬


나 혼자 산다. 하지만 완벽하게 혼자인 순간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인구는 자꾸 줄고 있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사는 지역은 항상 인구 과밀지역이었다. 작은 창문을 열면 맞은편 옥상이 내려다보이고 대각선의 집 창문을 통해 그 집 사람들이 러닝샤츠만 입고 tv를 보는 모습을 훤히 보였다. 전에 살던 집 건너편 옥상에는 종종 개가 묶여 있었는데, 이를 목격하고는 아이(개)가 언제까지 옥상에 있을지 신경이 쓰여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기가 일정치도 않았다. 2주 동안 보이지 않으면 안심했다가, 또 어느 날은 낮부터 오후 늦게까지 개가 묶여 있었다. 주말 오후에 그걸 보게 되는 날은 그 집에 찾아가는 상상을 했다. 남의 집 옥상으로 올라가 낡은 걸쇠를 끌러내고 개를 탈취하는 것이다. 


지금 사는 집 앞에 관공서가 자리하고 있다. 관공서 건강단련실 샤워실 창문으로 빨래가 보일 때도 있다. 시각은 커튼으로 차단하면 되지만 문제는 소음이다. 임대아파트들의 벽면이 너무 얇아 층간, 벽간 소음이 심각한 문제라고 뉴스에도 나온 적이 있는데 뉴스를 보면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난다. 방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부르면 몇 절 인지 옆집에서 맞출 수 있다. 이걸 벽이라고 불러도 좋은지 모르겠다. 집과 집 사이를 가로막는 벽 공사를 무엇으로 한 걸까. 나무? 스티로폼? 플라스틱? 어쨌든 방음이 잘 되는 재질은 아닐 것이다. 뒤늦게 뉴스를 본 나는 ‘우리 집이 그나마 낫네’라고 안심했다. 


지금 사는 집은 구조상 옆집 안방과 우리 집 안방이 붙어 있는데, 침대를 벽에 붙이면 옆집 사람과 내가 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잠을 청하는 구조가 된다. 덕분에 옆집 남자가 코를 골면 탱크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려온다. ‘아, 오늘은 많이 피곤하셨나보네. 10시부터 주무시고’라며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잠을 청할 때도 있다. 새벽에 천장을 흔드는 코골이 소리가 들리면, ‘내 소리도 저 집에 다 들리겠지’ 싶어 무섭다. 비염이 심해 밤낮으로 코를 풀어 대는 내 소음도 저 집에 들릴테지. 

농담으로 “각방 쓰는 부부가 된 것 같아. 옆 방에서 남편이 심하게 코를 고네.”라고 하소연할 때도 있는데, 그럼 에도 이 임대주택에 오래 살고 싶다. 벽간 소음은 있지만 그간 거쳐온 다른 집들에 비하면 처음으로 집이라고 할 만한 집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코골이가 심한 남자와 함께 잠을 청하고 있다. 극세사 벽을 사이에 두고.


보증금 때문에 입주를 고민하다 집을 먼저 보러온 날, 문에 작은 쇼핑백이 하나 걸려 있었다. LH에서 ‘입주를 축하한다’며 서프라이즈 이벤트를...했을 리는 물론 없고 작은 종이 가방을 열어 보니 외국 과자와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윗집에 사는 사람이에요. 제가 어젯밤에 제 집으로 착각하고 비밀번호를 눌렀어요. 놀라셨을 것 같아서 쪽지 남겨요. 밤 중에 너무 죄송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희 고양이를 그리려 했는데 이상한 곰돌이가 되어 버렸네요.^^’ 동글동글한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쪽지를 보고 나는 입주를 결정했다. 이런 이웃이 위에 살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사진출처 언플래쉬


K는 가족과 살지만 작업실을 꾸려 일주일에 반절은 거기 기거한다. 이전 작업실은 옆 방에서 타투 작업실을 운영하는 남자가 록을 크게 틀어놓고 늘상 흡연을 하는 통에 창을 열 수가 없었다. 그 다음 작업실은 윗집 층간 소음이 너무 심했다. 계약이 종료되자 K는 다음번 작업실로 이사했다. 세 번째 작업실은 꼭대기 층이라 층간 소음이 없었다. 대신 이번에는 옆집 대학생이 늦은 밤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K는 정중히 사정을 설명하며 조심해 달라는 메모를 옆집에 붙여두었다. 외출 후 돌아와 보니 K의 집 앞에 종이 가방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직접 만든 도자기와 “밤새 못 주무셔서 피곤하실텐데 비타민이라도 드리고 싶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옆집이 항상 조용해 벽이 얇은 지 몰랐어요. 배려를 소음으로 갚았네요.”며 쪽지와 함께 오쏘몰 비타민이 들어 있었다. 재빠르고 정중한 사과와 비싼 비타민 선물에 K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K가 초콜릿을 사서 쪽지와 함께 옆집에 붙여두었다. ‘자정 이후에만 조심해주시면 좋겠어요. 비타민 고맙습니다’라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M은 혼자 일한다. 코로나로 운영이 여의치 않아 평일 저녁에 혼자 일하게 되었다. 우범 지역도 아니고, 5년 넘게 일한 카페인지라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다. 구석에 위치한 오래된 카페라 손님들도 주로 낯익은 사람들이다. 주문을 하면 자리로 번호표와 함께 음료를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단골 남자 손님이 주문한 캐모마일 티를 그의 자리로 가져가는 길이었다. 칸막이가 있는 자리에 앉은 남자는 봐주란 듯 자신의 성기를 꺼내놓고 있었다. 남자는 M이 자리로 음료를 가져올 것을 알고 있었다. 고의적인 성추행이었다. 덜덜 떨며 자리로 돌아온 M은 사장에게 연락을 했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도움을 받기는 커녕 더 심한 언어 폭력을 경찰로부터 당해야 했던 경험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5년이나 일한 카페가 더는 안전한 일터가 아니었다. 


어디서 일을 하고 길을 걷든 타인은 갑자기 내 반경 1M안으로 쳐들어올 수 있고 그 순간 바로 평화와 안전은 깨져버린다. 내 몸과 집이 안전하지 않은, 불쾌한 경험은 바로 일상을 붕괴해버린다. 안전하다 여겼던 내 영역으로 누군가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 내 시각과 청각, 생각조차 내 것이 아니게 된다. 파도처럼 끝없이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더러운 기분과 생각은 별거 없던 일상을 헤집는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고, 1인 가구라고 쉽게 통칭되는 삶이지만 산에 틀어박히지 않는 이상 완전히 혼자인 사람은 없다. 옆집, 윗집, 앞집과 불쾌한 충돌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내 영역으로 누구든 침범할 수 있다. 그렇게 훅 끼쳐오는 소음과 냄새를 우리 뜻대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이웃이 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점잖고 단정한 이웃 시민이 될 것인지, 남의 마음과 안전 따위는 아랑곳 않는 악당이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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