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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Jan 24. 2022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김현 시인이 이전에 출간했던 에세이집은 영화감독 켄 로치의 영화들과 노동자 친구들을 연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근면히 노동하는 친구의 거친 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을 믿지 않는 두 친구와 늦은 밤 소주를 기울이며 하염없이 슬퍼지던 기분, 아무도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세월호에 대해 쓸 때, 김현의 성실하고 맑은 문장들이 신기하게도 켄 로치 영화들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김현의 신작 에세이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에도 선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 충실한 하루에 대한 낙관은 여전한데 그에 덧붙여 시인은 더 진솔하게 현실을 토로한다. 김현은 참으로 여전하면서도, 더 성숙한 어른이자 동료가 된 것 같다.


출판 편집자로 일하는 직장인,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는 생활인, 시인이며 누군가의 애인이고 친구이기도 한 그의 이번 에세이는 유머러스하게 인간 김현을 내보인다. 책에 인스타 아이디를 쓰면서(여기 쓰면 얼마나 느는지 보겠다고 쓰고), 심심할 때마다 전국 팔도의 집값을 자세히 살펴본다고도 밝힌다. 시인도 직업인이고 먹고살아야 하고 미래가 불안한 현대인이라 그는 서울이 아니지만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 파주와 가평군의 신축 아파트 분양가를 비교 분석(중도금 대출 무이자까지)하며 동거인과 함께 넓은 데로 이사 가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늙은 아버지와 대학 병원을 오가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는 아들의 마음을 시인은 “아버지와 한방에 누워 있노라면 가슴 한쪽이 뻐근해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 통증을 어쩌면 시라 부르는 것이기도 하리라”라고 쓴다.

푹 자고 일어나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맡는 것은 손에 잡히는 기쁨이지만, 뉴스에 혐오와 죽음이 보도되는 날도 있다. 이 책에는 많은 상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시인의 모색으로 읽혔다. 다수가 원하는 부와 성공을 거머쥔 인생에 대한 모색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답게 살아도 아무도 상처입지 않는 세상에 대한 모색. 상냥한 뜻을 가진 단어들이 서로 유의어 혹은 반의어로서 작용하고 영향받는 세계에 대한 모색.



아주 작은 것

맑은 봄날 햇빛이 강하게 쬘 때, 지면 부근에서 공기가 마치 투명한 불꽃과 같이 아른거리며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일러 아지랑이라 하고, 그 아지랑이를 양염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또한, 그 양염을 연애라고 부르기도 하고, 연애라는 말은 물방울과 티끌이라는 뜻으로, 아주 작은 것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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