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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Jan 24. 2022

추리는 한국 현실에서 영향을 받는다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혼이 나 덜덜 떨면서도, 그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기억 속에 저장하는 내가 있었다. 어렴풋이 이것이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고 느끼면서.”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인 <긴 하루>의 작가 노트 중 이 부분에 공감할 창작자가 많을 것이다. 나쁜 일이 생기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겪으면 몹시 괴로워하는 당사자이면서도 자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이건 나중에 글 소재가 되겠다’라고 남의 일처럼 바라볼 때가 있다. 한이 작가의 <긴 하루>는 치매에 걸려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는 주인공의 시선이 소년 시절로 이동하며 가족의 비밀을 들춘다. 치매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방에 가두는 설정은 과거 모자가 살기 위해 공모했던 어떤 사건을 은유하고, 뒤이어 전모가 밝혀지면 독자도 기이한 가담자가 된다.


이번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에는 어떠한 경향성 같은 것이 엿보인다. 사회면 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한국 사회의 현재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코난을 찾아라>의 길고양이 연쇄살인 사건, <약육강식>의 가출팸과 보이스피싱, 데이트 앱의 미성년자 유인, <어떤 자살>의 간병 살인, <고난도 살인>의 메타버스와 유전자 감별, <튤립과 꽃삽, 접힌 우산>의 아동학대에 이르기까지…. 정통 하드보일드 장르나 미스터리의 반전에 얽매이지 않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경향이 느껴진다.


수록된 8편의 소설은 소재도 개성도 각기 다르지만 하나를 다 읽고 다음 소설로 넘어갈 때마다 이전 이야기에 사로잡혀 헤어나기 어렵다. 길이는 짧고 선정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사건은 힘 있고 인물들은 실재적이다. 한편 수록작마다 아동은 배를 곯거나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추리소설에서 왜 아동이 누군가의 보호자나 사건의 해결자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를 상기해본다. 이것은 장르 문학이 독자를 서늘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까, 최약체인 아동이 보호받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사건들이 작가의 펜을 움직인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라도 따뜻한 집을 주고 싶었다”라는 작가 노트가 와닿는다.


출입구가 다른 임대 아파트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수연이는 자신의 환경이 다른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좁은 집과 지저분한 복도 그리고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출입구를 이용해야 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린 듯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환경을 몸이 불편한 부모님이나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도 깨달은 것 같았다.(<약육강식>,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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