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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Jan 24. 2022

생태와 젠더라는 해시태그

#젠더_소설, 시/ #생태_소설,시


해시태그 문학선

#젠더_소설, 시- 김지은, 이광호 엮음 / #생태_소설, 시- 이혜원,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공해처럼 쏟아지는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이해관계를 가진 현대 사회 속 인간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존재들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로 중시하는 가치도, 당대 사회에서 가장 위중하다 판단하는 문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세대, 국가, 이념 불문하고 환경과 젠더가 동시대 가장 뜨거운 이슈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생태와 젠더를 주제로 기존 문학 작품들을 선별한 ‘해시태그 문학선’은 해당 주제들이 섬세하게 반영된 소설 13편과 시 140여편을 묶었다. <#생태_소설> <#생태_시> <#젠더_소설> <#젠더_시> 총 4권의 책이다. 작가들이 생태 또는 젠더를 주제로 청탁받아 새로 쓴 작품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2020년까지 근래의 문학 중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추려낸 것이다. 덕분에 메시지만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독자는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어 함께 사유하고 상상하게 된다.


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새 서식지가 파괴된 후 희귀해진 도요새를 박제사에게 팔아 용돈벌이하려는 주인공들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김원일)이 현실과 밀접해 있는 소설이라면, 정세랑의 <리셋>은 지구가 멸망해 인간들이 지하 세계에 사는 23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과잉 생산, 과잉 소비로 지구를 갉아먹는 악당이었던 21세기의 인간들을 미래의 인류는 ‘구역질나는’ 존재로 기억한다. 거대한 지렁이가 땅을 갈아엎은 미래의 지구에서 인간은 공생을 실천할 때만이 존재의 의의를 갖는다. 생태를 주제로 묶인 소설들은 미래나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력을 펼치며 욕망 때문에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이 생태계의 악당으로 그려진다. 듀나, 정세랑, 천선란의 소설은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제는 이 모든 서사가 미래가 아닌 현재의 것으로 공감된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백신애, 오정희, 박완서, 한강, 김애란 등 꾸준히 여성의 삶을 그려왔던 작가들의 소설이 실린 <#젠더_소설> 역시 새삼스러운 ‘발견’이다. 이 소설들은 여성적인 것이 지금 시대의 유일한 해법이자 구원임을 설득한다. 하나의 작품이 끝난 후 ‘포스트잇’과 ‘생각의 타래’라는 이름으로 정리하고 질문하는 구성 역시 문학의 역할을 고민하는 기획이다.


너희는 귀여운 스티커나 만들지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멸종, 다음 멸종, 다다음 멸종,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생태_소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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