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과 MBTI의 관계
2022년에는 어떤 콘텐츠가 유행할까. 사실 전문가 여럿이 예측을 해도 빗나가기 쉬운 것이 미래 전망이다. 최근 수년간의 문화 흐름과 기술 발전을 연구해도 갑자기 코로나19와 같은 역병이 덮치면 과거와 단절된 미래가 오기 마련이다. 또한, 폭염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도 기후 변화로 인해 더는 과거의 데이터에서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미래 전망이라는 것은 그저 인간이 불안을 잠재우고 안심하기 위한 방어 기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저 잡지계에 종사하고 있는 일개 칼럼니스트에 불과한 내가 2022년에도 계속될 인기 콘텐츠를 하나 짚어 보자면 그것은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 사람들은 경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만큼 압박이 심한 문화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
더구나 육아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돌봄 문화가 인식된 것이 겨우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가장 기여한 것이 오은영 박사다. 그가 10년 넘게 출연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는 2006년에 시작된 방송이다. 문제 아동에게 단호하게 대처하던 그는 최근 <금쪽같은 내 새끼>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의 인기가 높아지자 <렉쳐멘터리 오은영 리포트> <내가 알던 내가 아냐- 오은영 편>등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되었다. 오은영은 아동 심리상담 전문가이지만, 그가 나오는 방송에서는 아동보다는 어른의 변화가 중시된다.
사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시청하며 내 얘기 같다며 엉엉 우는 것은 아동이 아니라 다 큰 성인들이다. 지금의 2030은 80년-90년대에 태어났다. 성인이 되며 학대나 폭력에 대해 감수성을 키우며 변화를 촉구하고, 성장 과정에서 받았던 상처나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세대다.
90년대에는 부모가 아동 훈육을 위해 매질을 하거나, 학교에서 교사가 체벌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폭력은 학대’라는 사회적인 합의가 생기고, 그러한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진 2022년의 성인들은 ‘내가 어릴 때 받았던 상처’를 이제 서야 <금쪽이>를 보며 들여다본다. 그들은 자신이 여전히 서툴고 어리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나 직장에 다니고 있어도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툴러 실수하고, 부모의 말에 여전히 상처를 받는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내 밥벌이를 하게 되면, 혹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서툴고 미성숙한 것만 같다. 내 마음속에 상처투성이의 어린애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크고 믿음직한 진짜 어른의 위로를 받고 싶다. 그렇게 발견된 것이 오은영 박사라는 상담 전문가 어른이다. 내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질문과 위로,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걱정하는 부드러운 대화 방식에 어른이(성인들이 자신을 미성숙한 어린이로 인지하는 성향이 엿보이는 신조어)들은 환호한다.
<금쪽같은 내 새끼> 역시 스튜디오에 나온 엄마들이 오은영 박사에게 더 큰 위로를 받고 펑펑 우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내 아이에게 여과 없이 내뱉던 가시 돋힌 발언들이 알고 보면 내가 내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의 발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년간 MBTI의 유행이 꾸준한 것도 ‘심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대변한다. 이제는 회사에서 면접자에게 MBTI를 묻고 소개팅이나 새 친구를 사귈 때 ‘MBTI로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를 가늠하기도 한다. 혈액형이 인간 유형을 4개로 나눴다면 MBTI는 무려 16개로 분류했으니 정확도가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디 MBTI뿐인가. 최근 기업들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는 마치 과거의 심리 테스트와도 비슷하다. ‘원숭이, 새, 뱀을 데리고 강을 건너기’(누구의 손을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른 심리 테스트)와 같이 몇 가지의 퀴즈를 던져 ‘당신은 과자로 치면 양파링입니다’ ‘당신은 새우깡입니다’ 등을 분류하는 과자 게임도 있다. 미국 대통령 중 누구와는 친구가 될 수 있고 누구와는 상극이라고 분별해주는 퀴즈도 있다. 이러한 조사들은 주로 링크로 공유되어 개인 SNS에까지 결과가 도달되도록 개발된다.
2021년 궁중문화축전에서 사전에 진행했던 ‘모두의 풍속도’에도 많은 대중이 참여했다. 몇 개의 선택지를 거쳐 직접 자신의 민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총 334,355개의 캐릭터가 완성되어 풍속도에 담겼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포즈는 옆으로 누운 포즈였고 2위가 막춤을 추는, 3위가 학춤을 추는, 4위가 차를 마시는, 5위가 쪼그려 앉은 포즈였다고 한다. 내가 활동적으로 춤을 추는 캐릭터를 선택했는지, 옆으로 누워 빈둥대는 민화 캐릭터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성격 유형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MBTI와 캐릭터 만들기 등은 심리 테스트보다는 성격 유형 분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MBTI의 성격 유형에 대한 설명을 보고 안심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사회성이 부족할까, 나는 왜 이렇게 낯을 가릴까, 나는 왜 이렇게 누구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할까, 나는 왜 쉽게 분노할까, 나는 왜 거절을 못할까...등등 궁금했던 내 행동에 대한 변명을 MBTI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런가 했더니 나는 INFJ라 그런 거였어!‘라며 깨달음을 얻는다. 그간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내며 사회성을 탓했던 내 성격에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MBTI에서 찾으며 답답함을 해소하는 것이다. 내 성격은 왜 이럴까, 나는 왜 배우자와 자꾸 싸울까. 이상하게 그 친구와 부딪치는데 왜 그럴까 등등. 답답했던 문제의 해답을 16가지 성격 유형에서 찾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속 시원한가.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