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과 욕망과 불안과 사회를 그린 범죄소설, 유즈키 아사코 소설
<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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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범죄자와 기자가 대면하는 범죄소설에 이렇게 미각, 요리라는 소재의 비중이 클 줄은 몰랐다. 프랑스 요리의 풍미와 외면을 자세하게 묘사해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들었던 청소년고전문학을 읽는 것처럼(프랑스 문학도 아니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맛 없는 봉지 과자라도 뜯게 만든다.
버터에 매료되어 있는 여성 범죄자 가지이를 면회하며 단독 인터뷰를 따내는 리카는 가지이가 시키는대로 점차 미각의 세계에 빠져든다. 일에만 몰두해 음식은 대충 편의점의 차가운 음식으로만 때우며, 직장에서 버티는 것 외에 별 다른 욕망이 없던 전문직 여성이 점차 버터의 세계로 떨어져 버린다. 리카는 취재 과정에서 5kg이 증량되는데 그때부터 매일 ‘요즘 살 찐 거 아니야?’라는 소리를 여기 저기서 듣는다.(166센치에 54키로인데!)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육아하며,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가 원하는대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세상은 그걸 당연하게 바라본다. 아니, 오히려 규정에서 어긋나면 여성은 가혹한 비판의 나락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소설 재미있는 게 서술자인 리카의 입장에서 읽게 되지만, 범죄자인 가지이가 극에서 빠진 후 허무하리만큼 푸시시 힘이 빠져버리고 매력이 반감돼 버린다는 거다. 여성 연대, 힘을 합쳐 으쌰으쌰, 그런 결말이 나쁜 건 아니지만 가지이가 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그 음험하고 압도되는 끈끈한 질감이 이 소설의 개성인 건 확실. 여성은 여신이고 남자가 원하는 대로 그들을 돌봐주면 되는 거라고,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욕망이 시키는대로 편하게 살면 되는 거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여자 빌런이지만, 그만큼 가지이는 매혹적이다.
가사에는 온통 '열심히 뛰어야 해, 내일은 희망 차니까, 빛은 저기 있어!'라고 노래하던 여자 아이돌이 갑자기 살이 쪄버리자 "노력을 안 한다"며 팬들이 돌아서고, 자기 효능감에 빠져있는 세태는 이 극의 큰 줄기가 아님에도 가장 와닿는 문장들. 숭상해 마땅한 우상은 어떤 결점도 없이 철인으로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게 사실이니까. 뭐, 제가 약간 그런 거 보는 데 지쳐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지만요. 책 읽다가 갑자기 빵 구워서 이즈니 버터 발라 먹었고, 에쉬레 버터는 없어서 온라인 구매해버림 #버터 #유즈키아사코
(책속에서)
이렇게도 이 사건이 주목을 받는 것은 가지이의 외모 탓이리라. 예쁘고, 예쁘지 않고를 떠나서 그녀는 일단 날씬하지 않았다. 이 일로 여자들은 격하게 도 ㅇ요하고, 남자들은 녹놀적으로 혐오감과 증오를 드러냈다. 그러잖아도 성숙함보다 처녀성이 존중받는 나라다.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철이 들 때부터 누구나 사회에 세뇌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뚱뚱한 채 살아가겠다는 선택은 여성에게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이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동시에 무언가를 갖추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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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공연장에서 오타쿠처럼 멤버 티셔츠를 입은 자기 사진까지 보여주어서 웃겼다. 객관성 있는 말투에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요소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집념과 순수함을 칭찬하는 데에는 뭔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유가 없으면 좋아해선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들린다. 노력하니까 평가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평가하지 않는다. 그냥 귀여워서 팬이 됐어, 하는 편이 훠러씬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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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뭔가........그거 현대병 아냐? 최근에는 노력해서 낸 결과보다 날마다 얼마나 노력하는가가 그 사람의 가치라 된 것 같지 않아? 그러다 노력과 고통이 혼동되기 시작하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훌륭한 ㄴ세상이 돼버리고. 가자이 마나코가 그토록 규탄받는 이유는 그녀가 너무나 고통스럽지 않은 범죄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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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라,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더니 시노이씨는 멋쩍은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이를 드러냈다. 배가 부른데, 리카는 또 울고 싶어졌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먹고 각자의 장소로 돌앙간다. 줄곧 함께 있을 수는 없다. 이렇게 위 속은 따뜻하고, 입술은 젖어 있고, 혀에는 감칠맛이 남아 있는데, 마지막에는 언제나 혼자다.
누구하고 오든 관계없다. 맛있는 시간을 즐기면 즐길수록 어쩐지 자신은 혼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