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 지음/송태욱 옮김/비채 펴냄
무척 아름답고 밀도 높았던 시간을 손에 잡히듯 그려낸 문장을 책에서 마주치면,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농밀함에 담뿍 빠져드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올여름 SNS 피드에서 자주 보였던 책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이다. 출간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여름마다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여전히 많은 것은 아마도 여름 한철 가장 눈부신 순간을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맛보게 하며 오감이 충족되는 고아한 문장이 이 소설에 넘실대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일본식 목조 별장에 비치는 한여름 햇빛과 먼지 한톨까지 세밀하게 그렸던 전작처럼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역시 홋카이도 에다루 오래된 집에 고여 있는 역사를 꺼내어 독자에게 보여준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문장은 여전히 정적이고 잔잔하다. 집, 사람, 계절에 대해 조금도 미화하지 않지만 그의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생을 대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덤덤하게 제자리에서 제 일을 하고, 서로의 공간과 생각을 침범하지 않는다. 조산사로 일했던 할머니 요네, 무뚝뚝한 아버지 신지로와 그의 누이들, 손자 하지메와 손녀 아유미, 3대에 걸쳐 소에지마 가족과 함께 살았던 홋카이도견 에스와 지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들은 가족 안팎에서 자기 생을 충실히 살아간다. 나이든 하지메가 주인공이 되어 소설의 첫장을 열지만 이내 할머니 요네와 그에게 산파 일을 가르친 스승, 아버지, 어머니, 고모 가즈에와 도모요, 아유미와 친구 이치이 등 모든 인물들에게 찬찬히 자리를 내어준다.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모두 자기 인생에서 주인공이었고, 또 골몰하며 자신의 시대를 살아낸다. 마쓰이에의 문장은 어찌 보면 단호하고 가차 없다.
독자가 마음을 주었던 인물이 죽음을 선고받고, 육체가 점차 병에 침식되는 과정조차도 덤덤하게 그린다. 에다루의 깊은 밤 아유미와 지로의 산책길, 용맹한 홋카이도견 지로는 깊은 어둠을 응시한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함께 숨을 멈추고 밤공기를 들이쉰다. 이내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에다루 집으로 돌아간다. 마쓰이에의 문장이 가진 흡인력이다.
자기 앞의 생
아유미는 에다루가 좋았다. 부모님은 앞으로도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한번 에다루를 떠나 다른 고장으로 가서 그 공기를 마시고 싶다. 낯선 지역을 상상한다. 어치가 끼야끼야 울며 날지 않는 하늘. 곰을 쫓는 방울도 달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큰 곰이 없는 숲. 연어가 없는 강에는 연어 대신 본 적도 없는 조그만 은색 물고기 무리가 소리도 없이 헤엄치고 있다.(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