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
저수리 작가의 원작소설 <시맨틱 에러>는 BL 고인물들이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풋풋한 캠퍼스물이면서, 주인공 성격이 개성있으며 초반 전개가 코믹해 입문자가 이입하기 쉽다. 특히 혐오 관계였던 공수가 싸우다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주고받는 대사가 코믹하고 사건 전개가 빨라 재미있는 웹소설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BL 웹드라마가 이전에도 만들어진 바 있지만 <시맨틱 에러>는 2018년 2월 출간 후 꾸준히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 히트작인지라 영상화 소식이 알려지자 원작 팬들의 우려 또한 컸다. 장르의 특성상 주인공 외모가 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에 만족스런 캐스팅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였다.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 바로 이 절묘한 배우 캐스팅에 있다.
<시맨틱 에러>는 이상한 드라마다. 8부작에 불과한 이 드라마의 팬덤은 열광을 넘어서서 진짜 여기에 미쳐있다. 수면 위에 드러나진 않지만 2030 여성들 사이에선 눈이 마주치면 “야 너두?(보고있어?)”가 통할 정도다. 2022년 3월 10일 전 회차가 공개된 후 한달 넘게 왓챠 조회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발매된 <시맨틱 에러> 포토에세이는 빠르게 매진되었고, 리디북스에 의하면 원작소설과 웹툰의 판매율 역시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이 드라마의 재미있는 지점은 19금 원작을 12세 시청가로 바꾸면서 주인공들의 성적인 긴장감을 캠퍼스물의 풋풋한 설렘으로 대체하고, 연출과 조명이 두 배우의 잘생김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로봇처럼 딱딱한 공대생 추상우와 디자인을 전공하는 자유로운 영혼 장재영은 N극과 S극처럼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조별과제에 무임승차한 장재영의 이름을 발표에서 다 빼버린 추상우 덕분에 졸업이 유예된 장재영이 추상우를 괴롭히며 둘은 얽히게 된다. 이후 엎치락뒤치락 싸우다 정반대의 두 사람이 연애하는 것이 드라마의 주 내용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별 것도 없네. 내용 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뻔한 내용이 특별해지는 것이 바로 요즘 BL 장르의 특성이다.
이전 퀴어 영화들과는 달리 이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주요 갈등은 두 캐릭터 성격이 너무 달라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엇갈리는 데서 주로 발생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다른 우리가 연애할 수 있겠어?'가 고민이지 '아니, 내가 남자를 좋아하다니!'가 주요 갈등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 역시 레즈비언으로 설정되어 있고, 추상우(수) 캐릭터가 너무 특이한 성격이라 오해가 점층되는 식이다. 둘 다 남자이기 때문에 겪는 사회의 시선이나 가족의 반대 등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이 대학교를 배경으로 연애하는, 말갛고 간질간질 귀여운 로맨스에 시청자들은 과몰입한다. 왜? 잘생긴 남자 두 명이 밀고 당기며 예쁘게 사랑하니까! 둘은 아픔 없이 사랑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우리(?)가 지켜줄 거니까! 이 팬덤의 특성이 바로 이것이다. 엄마 마음이 되어서 추상우와 장재영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고 더불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박서함과 박재찬의 팬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일본의 성공 예시인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이하 체리마호)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2020년 동명의 원작 만화를 영상화한 <체리마호>에도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기 때문에 나오는 갈등은 거의 없다. 동정인 채로 서른 살을 맞이한 된 아다치(수)는 잘생긴 동료 쿠로사와(공)가 자신을 짝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의 마음이 들리는 것을 쿠로사와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주요 갈등이지, 아다치 역시 “남자인 쿠로사와와 내가 어떻게 연인이 될 수 있어?”라며 고민하지 않는다.
동성 간의 사랑이 가진 갈등과 한계보다 <체리마호>는 주인공의 다정한 성격과 잘생긴 외모에 집중했고 이러한 연출이 ‘상냥하다’며 여성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는 BL이 주인공들의 퀴어성을 무시해야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다. 여타의 콘텐츠처럼 선택과 집중을 했고, 이들은 남남의 사랑이 가진 배타성이 아니라 풋풋한 설렘, 로맨스에 집중 했을 뿐이다. 특히 <시맨틱 에러>는 한 회차가 25분 내외인데 거기에서 원작에 등장하는 주인공수의 갈등을 모두 풀어낼 순 없었을 것이고, 12세 시청가를 위한 각색으로 폭넓은 시청층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이들의 사랑이 보통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전제하에서 그저 두 사람의 ‘썸’과 연애에 온전히 집중했고, 여기에 배우들의 매력과 관계성, 끝없이 주어지는 ‘떡밥’이 팬들을 이 드라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체리마호> <시맨틱 에러>에 이어 왓챠는 <겨울 지나 벚꽃>을 서비스 중이고 이 역시 인기 순위에 올라있다. BL 영상화의 대중적 구매력이 입증되자, 현재 BL 인기 소설과 만화들의 영상화를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장르는 양지화되었는가. <시맨틱 에러>의 인기 대사가 곳곳에 TV나 광고 등 여러 영상물에 밈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의외로 이 팬덤은 업계 곳곳에 침투해 있다. BL 웹툰과 소설의 영상화는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이 콘텐츠의 소비층은 좁고 깊은 매니아에 가깝다. 매니아이기 때문에 더 열광하고 콘텐츠 2차 생산물에 지갑을 아낌없이 연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셀 수도 없게 많아진 OTT와 방송 채널과 유튜브 등의 치열한 경쟁의 구조에서 BL이 ‘신선하고 새로운’ 시장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제작자는 이 장르의 주요 소비층인 여성들이 왜 BL을 보는지를 간과해선 안 된다. 이것은 현실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장르이고,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욱 까다로우며 매의 눈으로 파악한다. 제작자와 출연자가 이 장르를 만만하게 보는지, 아니면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고 이 장르에 진심을 다하는지에 대하여.
*위 글은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