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텐션 플리즈! 집중력을 되찾아라
'수업 시간에 해찰이 심함'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쓴 생활기록부를 보고 내가 처음 한 생각은 ‘해찰이 무슨 뜻이지?’였다. 엄마의 표정을 봐서는 절대 좋은 말은 아닌 듯 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해찰은 ‘쓸데 없이 다른 짓을 한다’는 단어였다. 한 마디로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웬만하면 좋은 말을 써주는 게 생활기록부의 불문율인줄 알았건만 나의 초1 담임 선생님은 40명의 아이들의 생활을 평가하다가 쓸 말이 동났는지 유독 ‘김송희’ 학생에게만 솔직한 평가를 내려주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인간임을 길게 고백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디지털 사회에서 하나의 일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한 명의 사람은 하나의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팀원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고 분 단위로 줌이나 대면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퇴근 후에는 가사나 육아를 병행해야 하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커리어 관련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인간이 기계라면 버튼을 눌러 '집중' '휴식' '환기' 등의 모드로 전환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하나의 뇌를 가지고 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해 SNS에 접속하고 유튜브와 OTT등 트렌드까지 읽어야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의 뇌가 하나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일까.
어느 날 한 친구가 성인 ADHD 자가진단표를 보고는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송희야, 너 이거 꼭 해봐. 완전 너야.” 문항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책을 읽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조심성이 없어 실수를 많이 한다. 휴대폰을 잠시 보지 않으면 불안하다. 돈을 충동적으로 쓴다. 등등.’
으잉? 안 그런 사람도 있다는 말이야? 20개 문항 중 2개 빼고 다 ‘있다’에 체크를 했다. 그런데 솔직히 현대인 중에서 이 문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집중력을 분산시켜 자신의 서비스에 오래 머물도록 고도로 개발된 가상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2월 10일 발행된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보자. “Why Can't We Pay Attention Anymore?”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오늘날 기술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아 가기 위해 고도로 지능화 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서비스들은 알고리즘을 수집한 데이터로 인간을 예측하고 자신의 서비스에 오래 머물며 광고에 노출되어 돈을 쓰도록 내몬다.
안데르스 한센은 디지털 시대의 뇌 사용에 대해 여러 저서에서 지적한다. “디지털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뇌가 함께 발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인간의 뇌는 새로운 도구가 나타날 때마다 함께 발달해 왔지만 스마트폰만큼은 예외라는 것이다. 정보의 범람이 집중력 훈련을 시켜주고 뇌가 적응할 거라 기대하지만 사실 뇌는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더더욱 주의가 산만해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며 문서를 작성하는 멀티태스커들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두엽을 더 많이 쓰는 대신 기억을 오래 하지 못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휴대전화를 그저 옆에 두기만 했는데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실험을 통해 밝힌 디지털과 집중력의 관계 중 흥미로운 것은 교실에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서 보지 않은 집단과 아예 사물함에 휴대폰을 두고 수업에 들어간 집단 중 후자가 더 높은 집중력과 이해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집중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뇌가 아닌 다리를 움직여 야외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전문가가 실험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다.(인스타 브레인> <뇌는 달리고 싶다>)
스마트폰으로 접속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들의 우리의 시간을 두고 경쟁한다. NC소프트는 게임회사임에도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넷플릭스라고 공표하고 넷플릭스는 자신의 경쟁상대는 사용자들의 수면시간이라고 말한다. 소비자의 집중력, 동일한 시간을 두고 게임, SNS, OTT가 경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을 들여 집중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스마트폰으로 업무도 처리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사실 우리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진짜 삶이다. 집중을 해서 책을 읽고, 커리어나 학업에 도움이 되는 진짜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 이것은 시간 경쟁이고 집중력 싸움이다. 제니 오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는 그 방법에 대한 작은 도움이 적혀 있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맥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매우 직관적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나와 새들 사이에 맥락이 생긴 과정이 공간이나 시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제니 오웰은 페이스북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경험을 한 후 실제 존재하는 것들과 직접 관계를 맺기를 시도했다. 그는 새를 좋아했고, 공원에서 새를 관찰했다. 모르는 사이 훌쩍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는 하염없이 새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할때에도 새를 관찰할 때처럼 자신을 그것과 일대일의 관계에 두고 맥락을 만들려 시도했고 차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깨달아 갔다. 나 역시 스마트폰으로 전자책도 읽고 메일 체크도 하고 카카오 워크와 네이버 밴드를 통해 업무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하고 독서도 하니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싶다가도 여기서 벗어나 진짜 집중력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침대에서 멀리 스마트폰을 떨어트려 질 높은 수면을 취하고 싶고, 종이책에 1시간 이상 집중 하고 친구의 말에 귀기울이고 내 고양이의 눈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 공부도 하고 글쓰기도 하고 새해에 이루고 싶었던 것들에 집중하고 싶다. 일단 오늘 밤에는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고 잠을 청해볼 계획이다. 하루 평균 8시간 내 시선을 빼앗았던 것에서 눈을 떼고 SNS도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잠시 멈춰 보려 한다. 할...수 있겠지?
*이 글은 '채널예스'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