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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Nov 15. 2022

비건지향, 덜 소비하고 더 함께하기



“너 채식해?” 비건 만두와 병아리콩으로 빚은 팔라펠, 토마토 샐러드로 꾸려진 저녁밥상 사진을 본 친구가 물었다. 특별히 채식을 한다는 의식 없이 '비건 인증 식품'을 구매하곤 했던 나는 "아니, 나 채식 안 하는데."라고 답했다. 특별히 채식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외식을 할 때에는 고기가 들어간 식단을 선택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특별히 '고기'를 구워먹는 메뉴가 아니더라도 육류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식품은 노력하지 않으면 식단을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별히 한식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건 식당을 검색해서 찾지 않는 이상 즐겨 하는 외식 대부분은 육식을 주메뉴로 하거나 육,어류가 첨가되어 있다. 즐겨 먹는 태국식 쌀국수는 소고기로 진한 육수를 내고, 중국 음식인 훠궈와 마라샹궈에도 양고기나 소고기가 들어간다. 치킨은 물론이고, 피자나 스파게티조차 육류가 포함된다. 비건이 트렌드라고 수년째 기사가 나오고, 매년 비건 식품류가 마트에 늘어나고 있으며 육류 뿐 아니라 계란, 우유를 대체하는 식품류가 출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완벽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어부터 '실천'이 아닌가. 비건 식당과 메뉴를 선택하고, 육식을 피하는 적극적 행동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채식을 지향하지 않지만, 냉동실에 비건 냉동 식품이 많은 이유는 내가 '소극적' 채식을 시도하고 있어서이다. 1명이 완벽한 채식을 하는 것보다 10명이 일주일에 3번 먹던 육식을 1번으로 줄이는 것이 환경에는 더 이로울 것이다. 3번 먹던 육식을 1번으로 줄인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꼭 먹고 싶거나, 먹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고기를 먹는다. 최근에는 만두나 완자, 떡갈비나 스테이크, 심지어 제'육'볶음과 같은 요리 조차도 비건으로 대체 식품이 출시된다.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냉동 식품류를 배송시켜 보는 것 역시 소소한 재미다. 의외로 가장 줄이기 힘든 것은 우유였는데, 맛있는 라떼를 먹는 낙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귀리우유, 아몬드우유 등 젖소를 착취하지 않는 대체유들을 시도해봤지만 진짜 우유로 만든 라떼와는 확실히 그 맛이 달랐다. 그래서 나의 냉장고에는 현재 오트밀우유와 진짜 우유가 나란히 자리한다. 될 수 있으면 오트밀우유로 라떼를 만들고, 찌~인한 라떼가 먹고 싶을 때에만 우유로 라떼를 제조한다. 소젖으로 만든 우유 대신 귀리우유를 먹기 시작한 것은 젖소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년 내내 강제로 임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다. 


채식을 지향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그럼에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건이 되었느냐'고 물으면 각각 다른 답이 돌아온다. 잔혹한 동물 도축의 비윤리적 환경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후 고기를 피하게 된 사람, 어린 시절 개나 돼지, 소, 닭을 먹기 위해 죽이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환경에 대해 공부 하다가 고기를 피하게 된 사람 등등. 여기서 더 나아가면, 동물 복지 운동을 하면서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돼지를 일부러 만나러 가는 활동인 비질(Vigil)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적극적' 앎을 선택한다. 고기를 맘편히 먹기 위해서는 몰라야 편한 것도 있다. 생물이 마트에 깔끔하게 올려진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비윤리적인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빠르게 키워져 오로지 고기가 되기 위해서 좁은 공간에서 잠시 생을 부여 받고, 항생제 등의 약품으로 키워지다가 도살장에 실려간다. 


대량화 된 공장식 축산, 도축 환경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져 있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맘편히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어서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많이 먹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TV와 유튜브에서는 끝없이 '먹방'이 방송되고 그 주에 인기 먹방에 등장했던 음식은 날개돋힌 듯 팔려 나간다. 많이 사고, 많이 먹고, 많이 버리는 환경은 기후 위기의 주범이다. 인간은 지구에 피로하고 불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서 괴멸을 선택한 듯 보이기도 한다. 



농담 같지만 소가 뀌는 방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후위기를 급속시킨다는 얘기가 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닌 진실이다. IPCC(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의 공식 자료에 의하면 미국산 소 한 마리의 1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600kg이다. 이는 중형차 한대가 뿜어내는 대기 오염과 비슷하다. 먹기 위해 기르는 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만이 문제가 아니다. 소를 먹이기 위한 곡물을 키우고 공장에서 생산하고, 가축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는 배출된다. 한국은 생각보다 육류 소비량이 높은 국가인데, 해당 소비량은 매해 늘어나는 추세다. 비건이 트렌드라고 해도 그만큼 '먹방'과 대기업, 온라인 마켓 등은 식품의 대량 소비를 부추긴다. 무엇이든 적게 먹고, 채식을 자주 하는 것만으로도 축산업의 규모는 줄어들 것이고, 이는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비건을 선택한 사람들은 논비건인 사람들에게 가끔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느냐'며 불현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왜냐하면, 비건인 사람 때문에 비건이 아닌 내가 고기먹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 채식해?'라는 친구의 질문에 빛의 속도로 '아니지'라고 답한 나 역시 불편하고 까다로운 사람처첨 내심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소극적으로 채식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채식이 재미있고 쉽고, 맛있다는 것이다. 고기맛을 내는 대체식품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채소만으로도 할 수 있는 요리들이 무궁무진하고 요즘은 이러한 레시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맛을 알아가는 것이 또 다른 활력이 되고 건강해지는 느낌을 준다. 비건이 트렌드이고, 비건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비건 식품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라고 쓰면 손쉽지만 그보다 비건은 더 복잡한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조금 귀찮은 대신 내 경우에는 절망감이 줄어든다. 빙하가 녹고 있다는데, 폭염이 지속된다는데, 멸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피부로 느껴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절망감이 조금은 상쇄된다. 작은 실천이지만,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는 감각. 아니, 무엇을 덜 한다는 감각.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기. 지금 채식 지향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마음일 것이다. 


**<문화 다양성 웹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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