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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Aug 18. 2023

[여행 못하는 사람의 여행] 이 미국여행 꼭 가야 하나

여행 못하는 사람의 여행


“What was your favorite place to travel in the US?” 누가 물었다. 아, 내가 영어를 잘해서는 아니고, 어쩌다 외국인과 동석을 하게 되었는데 워낙 할 말이 없어서 띄엄띄엄 “I go to the trip America last year.”이라고 했더니 돌아온 질문이다. 물론 작년에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라고 콩글리쉬로 말한 나의 ‘영어’는 문법부터 단어까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무엇보다 작년에 갔으니 go가 아니라 went를 써야 한다. 하지만 내가 영어 무식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방은 나의 뭉개진 시루떡 같은 말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저렇게 되물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야? 라고. 맙소사, 내 머릿속은 암전이라도 된듯 새까매졌다.


누군가 여행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좋아한다”라고 말해왔지만, 지난해 10월에 미국 여행을 다녀오고는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게 맞나?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외지에서의 기억이 하얗게 사라져버리는 사람에게, 비싼 돈 주고 가는 해외여행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지금 시대에 해외여행은 시간 대비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여가 생활이다. 제아무리 물과 공기만 마시며 가난한 여행을 한다 해도 비행기와 숙소 값을 지불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집에 있었으면 안 들 돈’이 되어버린다. 물론 진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계산 따위도 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떠나는 순간부터 얻는 그 경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얻는 행복으로 여행 외의 삶을 버티는 사람이라면 ‘여행은 돈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할 것이다.



큰맘 먹고 어딜 모시고 가도 행복해하지 않고, “어머, 여긴 뭐가 이렇게 비싸냐. 집에서 밥 먹으면 이 돈 안 쓰잖냐.”라고, 우리 엄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여행을 안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5일 이상의 휴가를 낼 수만 있다면 다급하게 비행기 표부터 알아보는 그런 인간이었단 말이다. 3년여간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을 못 하다 보니 여행이라는 행위가 주는 피로감이 커진 것일까.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까지도 ‘아, 이 여행을 꼭 가야 하나. 너무 귀찮다.’라고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가장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물가가 너무 비쌌다!


내가 미국 여행을 떠났던 지난해 9월 말을 떠올려보자. 기억이 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때는 달러 환율이 사상 최고로 치솟고 있을 때였다. 1달러가 1350원일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너 미국 간다며, 얼른 환전해. 지금 환율 장난 아니야.”라고 독촉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니야, 왠지 앞으로 떨어질 것 같아.”라며 환전을 미루고 있었다. 지금부터 이 여행기의 대부분이 이런 속 터지는 행동의 연속일 텐데 ‘이 인간 뭐야? 그 돈 주고 미국 왜 간 거야?’라며 같이 속 터지고 싶지 않은 분이라면 이쯤에서 이 글에서 중도 하차하셔도 괜찮다. 



그렇게 환전을 미루다 보니 매일 아침 환율은 10원씩 올라갔다. 사실, 환전을 할 만큼 현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미국 여행을 ‘돈도 없는데 무리해서’ 가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안 가면 되지 않나? “조금 싼 비행기 표가 나왔는데 미국 갈까?”라고 나의 여행 메이트가 물어본 몇 달 전에 그 결정을 했어야 했다. “어머, 좋아 신나.”라며 엉덩이 들썩거리는 이모티콘을 잔뜩 보낸 주제에 나는 여행이 닥쳐오자 ‘돈도 없는데 미국이라니.’ 하면서 몇 달 전 비행기 표를 결제한 나 자신을 후려치고 싶은 상태가 되었다. 그리하여 출국 당일까지 환전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환율이 오르고 있었고, ‘어제 했으면 이거보단 쌌을 텐데…’라는 생각을 매일 하다 보니 이도 저도 못하게 된 것이다. 기대하시라. 그리하여 출국 당일 인천공항에서 부랴부랴 환전을 하고야 말았는데!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늦가을의 어느 날, 1달러 환율은 1470원이었다. 100만 원을 환전했더니 69달러가 되는 매직! 뭐지, 내 30만 원 누가 가져갔어. 비행기를 타기도 전부터 도둑맞은 심경으로 나는 ‘이 여행 괜찮을까’를 되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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