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 마주 앉았을 때 대화 소재가 떨어져서, 더 이상 MBTI의 E나 I 가지고도 늘려갈 스몰토크가 없을 때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질문이 여행이다. 삼면이 바다여서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대륙으로 갈 수 없는 민족이라 그런가, 팬데믹이 조금 풀리자마자 사람으로 가득 찬 공항 사진만 보아도 한국인이 여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여행 좋아하느냐’는 취향을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향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고, 돌발 사건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대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잠시의 틈만 나도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던 쪽이다. 무리해서 비행기 표와 숙박비를 카드로 결제하고 그 빚을 갚느라 6개월을 허덕이기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삶에서 ‘여행’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니 당연히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좁디좁은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깨달았다. 비좁은 공간에 어깨를 웅크리고 궁둥이를 뗄 수도 없도록 고문당하며 14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자리를 150만 원이나 주고 사다니! 그리고 왜 공항에는 출국 세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안심할 수 있는 것이며, ‘어텐션 플리즈 쏘오리~’라며 시도 때도 없이 출발 시간을 어기며 남의 시간을 함부로 여기는 건 또 어떻고. 몇 번의 가방 검사와 신체검사까지 받고 기나긴 대기 시간을 거쳐 딱딱한 공항 의자에 앉아 복잡한 탑승 시간표를 알아서 챙겨 보는 것도 고객의 몫이다. 교통비 중에서도 가장 비싼 돈을 결제해놓고 시간에 끌려다녀야 하는 이 과정을 나는 왜 그토록 좋아했던 것인가.
자랑하기 위한 여행
여기서부터는 시간과 돈을 방탕하게 낭비하고, ‘난 여행을 좋아하니까.’라며 정신 승리했던 저 자신에 대한 분노이지, 여행 좋아하는 분들을 폄훼하는 글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나는 왜 여행을 많은 돈을 갖다 바칠 만한, 황홀한 경험이라 여겼을까. ‘나 거기 가봤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지.’ 혹은 ‘가봤더니 별거 없더라.’ 그 한마디 하고 싶어서? 낯선 곳에 나를 데려다놓아야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어서? 여행이야말로 바쁜 일상에 찌든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휴식이라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으쓱대고 싶어서? 여행 다니느라 목돈을 탕진하고, 내세울 거라곤 ‘잦은 해외여행 경험’밖에 없는 나이 든 사람이 되고 나면 ‘경험’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취향과 경험이 인생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게 과연 현명한 가치관인가. 모은 돈이 없어 늘 불안한 대신 그까짓 경험이 많다는 게. 더구나 그 알량한 경험이란 겨우 이런 거다. 방송이나 책 표지에 나오는 유명 관광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평생 다시 마주칠 일도 없는 외국인과 더듬더듬 말을 섞어 인스타그램 주소를 주고받고는 ‘외국 와서 친구 사귄 나’에 도취되는 것.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이국적인 경치에서 느낀 찰나의 경이로움은 지금 나에게 어떤 효용 가치가 있는가. ‘여행해봤다는 경험의 가치’를 왜 세상은 그토록 대단한 것인 양 치켜세웠던 것일까.
더구나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전까지의 전 과정은, 사람을 탈수기에 탈탈 돌려 짠 것처럼 진빠지게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공항을 빠져나가 낯선 언어를 들으며 구글지도에 코를 박고, 미로 위 화살표를 따라 숙소에 도착해 ‘꺄아, 너무 좋다. 바로 이게 여행이지! 오길 잘했다.’라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은 그 침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배가 너무 고파야 밥이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 서른다섯 이전의 나는 여행을 좋아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코로나19 봉쇄가 풀리기 전 유나이티드 항공의 비행기 표(인천 출발–샌프란시스코 경유–LA 도착)를 예약해두었던 나는 출발 직전까지도 ‘꺾이지 않는 마음’처럼 쑥쑥 오르던 환율을 바라보다 비행기에 올랐다.
장거리 해외여행을 한 지 오래됐던지라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육신을 간신히 구기고 90도로 앉아 있는 고통을 선사하되 항공사에 항의는 못 할 정도의, 인간이 딱 죽지 않을 만큼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몇 센티인가를 고학력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 고안한 듯한 이코노미석에 열 시간 이상 앉아 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코로나19 기간 동안 내 몸은 급속 노화 구간에 들어섰다. 더는 책 속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유나이티드 항공의 스크린 서비스에 한국인을 위한 볼 거리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