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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Mar 28. 2024

진부한 일상

마트에 갈 때마다 채소의 가격표를 보고 놀라서 사진으로 남기곤 한다. 애호박이 3590원,(심지어 원래 4490원인데 해당 마트 회원가 할인이라고 으쓱대는 가격표) 대파가 4800원, 상추가 2900원… 무서워서 과일 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대충 눈으로 훑으니 사과가 네 개에 2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다. 물가가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 다들 여기에 익숙해져가는 게 무섭다. 친구는 “요샌 그걸 고물가라이팅이라고 한다.”고 달갑지 않은 신조어를 전해왔다. 요새 그래서 뭐가 마이붐이냐고, 하면 고물가에 대응해 저렴한 식재료 가게를 발견했다거나 하는 일이면 좋겠지만 그냥 ‘비싼 식재료’가 눈에 띄면 사진을 찍어두는 게 일이다. 오, 이렇게 비싸다니! 놀라서 찍어둔 후 나중에 마트나 시장에 갔을 때 ‘내가 비싸다’고 여겼던 때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대로이거나 가격이 그때보다 올랐다. 역시 무엇이든 오늘 사는 게 내일보다 싸고, 올해 먹는 게 내년에 먹는 것보다 싸다.


유튜브에서 ‘브이로그’를 검색해서 아무나의 브이로그를 본다. 좋아해서 구독해둔 몇몇 여성 유튜버들의 영상이 뜸할 때 종종 하는 짓. 주로 어디로 여행을 가서,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돌고 이번 시즌 디자이너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를 방문해 2024 S/S 신상을 입어보는 브이로그들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보다 보면 그들이 해 먹은 통밀 파스타도 사고 싶고, 아보카도 샌드위치도 해 먹고 싶고, 봄옷도 한 벌 사고 싶고, 새로 생긴 성수동 카페에도 가고 싶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대부분 소비 지향적이다. 좋은 데 가서 행복하게 먹고 마시고 돈 쓰는 영상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이젠 노동 집약적인 영상을 좀 볼까 싶어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험 삶의 현장> 같은 것을 찾아 봤지만 1분도 더 보기 싫었다. 내 일도 하기 싫은데 남이 힘들게 일하는 건 더 보기 싫어! 그리고 결국 봄 웜톤으로 화장을 하며 ‘겟레디윗미’(외출 전 맨 얼굴부터 메이크업 후까지 시청자들에게 과정을 보여주는 유튜버들의 영상)를 찍은 후 해방촌의 내추럴 와인바에 놀러 가는 영상으로 돌아온다. 방구석에서 그런 것을 연달아 보는 나? 전혀 초라하지 않다. 나는 시청자니까. 물론 유튜버를 따라서 신상 카페나 술집에 가보진 않는다. 대리 체험을 한 것으로 충분하다. 



1월에 김연철 선생의 글을 우연히 봤다. 한국에서는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banality를 악의 평범성으로 해석했지만, 이는 평범한 사람도 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그보다는 ‘악의 진부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한나 아렌트 발언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김연철 선생의 글을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banality라는 단어는 상투적이고 진부적이라는 뜻에 가깝다. <예루살렘의 이이히만> 책에서 이 단어는 책의 끝부분, 즉 아이히만의 처형 직전의 말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아렌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장례연설에서 사용하는 상투어’에 의존하는 아이히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렌트는 재판과정에서 아이히만의 말이 상투어와 관청 용어(‘최종해결’이나 ‘안락사’ 등) 선전 문구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말하기의 무능이 어떻게 사유의 무능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악행으로 이어졌는지를 주목했다. banality의 뜻에 가장 가까운 한나 아렌트의 발언은 ‘사람이 피상적이면 피상적일수록 악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한 피상성(Superficiality)의 지표는 상투어의 사용이며… 아이히만은 가장 완벽한 표본입니다.’”


생각과 사유를 하지 않고 타인이 만든 언어를 그대로 답습할수록 악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유 능력은 곧 자신을 악으로부터 지키고 악에 물들지 않기 위한 것이다. 상투어를 쉽게 사용할수록 글쓰기는 쉬워지지만, 이는 타인이 만든 악한 언어에 포섭되기 쉽다. 예전에는 2천 원만 넘어도 비싸다고 여겨졌던 애호박을 3천 원에 쉽게 사고, 남들이 만든 행복한 영상만 보며 주말을 보냈다. 그렇다고 내가 악해졌나? 마음속에 분노가 들끓고 길에 나가서 낯선 사람에게 이유 없이 돌을 던졌나? 그건 아니다. 그렇지만 상투적인 영상과 피상적인 언어에 물들어가고 있다. 요즘 마이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오늘 얼마나 악해졌나를 돌아보는 것.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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