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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리뷰

by 김송희
캡처.PNG 사진_씨네21 오계옥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유희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유희경의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에는 시집 이름과 동명의 시가 3편 수록되어 있다. 세개의 챕터는 매번 동명의 시로 시작한다. 세 번째 챕터의 시는 <우리에게 잠시 신들이었던>이니 완전히 동명이라곤 할 수 없겠다. 처음에는 시 속에 ‘신’이 하늘에 계신 그 신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시편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시인이 호명한 신 앞에 ‘당’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시집의 온전한 제목은 ‘우리에게 잠시 당신이었던’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쩐지 당신이라는 글자를 쓸 때에는 그 말이 곰살맞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유희경의 시에서 화자는 호명되지 않는 대신 이인칭들이 등장한다. 당신이다. 이 시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봄, 그리고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당신은 슬펐다가도 다정하고 시간을 나눈다. 그 시간 속으로 봄은 여러 번 온다. 수록시 <합정동>에는 목련이 피고 아무렇지도 않은 가지 위에 핀 목련으로 고양이가 마침내 뛰어내리고, <사월>에는 새순, 하고 발음했다가 꽃잎이 떨어진다.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는 또 어떠한가. 누군가는 즐거웠고 누군가는 잊혀져갈 그런 밤, 여름이 시작을 떠올렸고 화자는 조금 떠 따뜻한 쪽으로 가고 싶다. 심지어 마지막 수록된 시의 제목은 <봄봄>이다. 마지막 시, 봄에서 손가락으로 열을 세는 동안 더운 바람이 불고 봄이 온다. ‘겨울이었다 언 것들 흰 제 몸 그만두지 못해 보채듯 뒤척이던 바다 앞이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 얼어가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 熱(열)을 세니 봄이었다 (중략) 꽃 지고 더운 바람이 불 것 같아, 수를 세는 것도 잠시 잊고 나는 그저 좋았다.’ 봄에 유희경의 새 시집이 도착했고, 우리는 잠시 좋을 것이다.



그는 어깨가 넓고 튼튼한 사람

함께 걷는 사람들과 부딪히곤 하지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과도

사람들은 그의 어깨를 좋아해

넓고 튼튼하니까 언제든 도와줄 거야

정말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는

넘어가자 이야기는 그런 거니까

-(34쪽 <어깨가 넓은 사람 - O로부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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