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맛' '연애의 참견' '썸바이벌'...연애가 방송이 되는 이유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남의 연애 얘기랑 남의 애 키우는 얘기라고 하던데, 그게 ‘자랑질’일 때 재미가 없는 거지 실은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게 없다. 네이트판에 “결혼을 약속한, 키 180에 다정하고 잘생긴 남자친구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는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만개 이상 달리고, “그런 남자가 결혼하면 좋은 남편된다”는 조언에 “상담글에 굳이 남친 외모까지 적는거 보니 자랑하는 거냐”까지...댓글창에선 연애 카운슬러들의 100분토론이 가열 차게 진행된다. 연인 사이에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이란, 사실 특별할 거 없는 보편의 일이다. 둘 중 누구의 애정이 더 무거운지에 따라 무게추가 기우는 시소게임은 언뜻 보면 뻔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해안에 밀려온 불가사리처럼 각기 다른 에피소드가 쏟아진다. 심지어 가공된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애정 삼파전을 오징어 다리 뜯으며 TV로 볼 수 있다면? 상처받는 게 나도 아닌데 아니 볼 이유가 없다.
KBS Joy <연애의 참견 시즌2>(이하 연참시)는 2015년 종영된 JTBC <마녀사냥>의 확장 버전과 같다. <마녀사냥>에도 출연했던 한혜진과 곽정은이 MC로 출연하고 거기에 김숙, 서장훈, 주우재도 출연해 남녀 '참견인'의 성별 발란스를 맞췄다. <연참시>는 그야말로 남의 연애에 훈수를 놓는 컨셉의 연애 상담 프로그램인데 그만큼 사연들이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다정하고 세심해서 연인에게 선물하기를 즐겼던 남자친구가 알고 보니 죽은 전 여친을 잊지 못해 그녀와 비슷한 이미지로 나를 만들려 했었다는 충격적인 사연부터 여자 친구가 군대 교관처럼 취업 준비에 채찍질을 가해 코피가 나고 탈모까지 왔다는 남자의 사연. 남녀를 불문하고 때론 보편적이어서 공감 가고, 때론 기상천외해서 혈압 오르게 하는 사연까지 참 타인의 연애담이란 들을수록 참 색색깔 다채롭기도 하다. 주작이 아닌가 의심되는 사연에는 사연인의 카톡 캡처와 증거용 사진까지 제시된다. 연애 상담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함께 공감해주고 분노해주는 것이기에 출연자들은 과도할 정도로 리액션에 집중한다. <연애의 참견>이 같은 포맷의 <마녀사냥>과 달라진 점이라면 '남녀'라는 성별에 집중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도리와 상대에 대한 배려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이 음흉한 눈빛의 19금 토크로 웃음을 주고 여자는 여우, 남자는 늑대라는 비유를 일삼았던 것과 달리 <연참시>는 남-녀의 연애도 결국은 타인과 타인이 주고받는 감정의 연장선이고 한쪽이 구속이나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짚어준다. 연애 상담 프로그램이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성별에 대한 폄훼나 관성적인 편견으로 이야기를 몰고 간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제동을 거는 것이 MC 김숙이다. 무심한 남자친구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고민에 한 출연자가 “남자들은 그걸 모를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면 김숙은 “남자들이 아니라 저 사람이 문제”라며 “모르면 알아야지 그게 자랑이냐”고 짚어주며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2000년대 초에 방영됐던 MBC<사랑의 스튜디오>와 비슷한 컨셉의 연애 프로그램은 KBS <썸바이벌1+1>이다. 공대 남학생과 여대 여학생들의 만남을 추진해 <사랑의 스튜디오>처럼 서로 스튜디오에서 마주본 채 첫 만남을 갖고 각자 장기자랑(첼로, 발레, 기타, 코로 슈퍼마리오 소리내기 등등)을 가지며 소개팅을 이어간다. 다만 공간을 바꿔 마트에서 음식을 골라 짝을 지어 식사하거나 함께 쇼핑을 하며 취향을 맞춰 보는 식으로 매칭의 방식을 달리했다. <썸바이벌>은 매회 출연자들이 달라서 어느 회에는 일반인이, 그 다음회에는 강균성, 라이언 등 ‘연예계 대표 솔로남’이라는 이름표를 달로 출연해 일반인 여성들과 소개팅을 한다. 출연자에 따라 매회 소개팅의 구성과 방식이 달라지는데, <하트시그널>이나 <연애의 맛>처럼 시간을 두고 장기간 서로 알아가는 게 아니고 짧은 스튜디오 녹화 만으로 상대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첫인상의 선택이 이후에 크게 달라지지 않는 편이다.
SBS <짝>에서 비롯된 컨셉이 <하트시그널>과 <러브캐처>처럼 일반인 남녀 출연자들이 합숙을 하며 장시간 서로를 알아가는 방송인데 2018년 <하트시그널 시즌2>가 유례없는 인기를 끌었던 이후 동류의 프로그램들이 여럿 제작됐다. 사실 <연참시>나 <썸바이벌>이 ‘남의 연애’를 불구경 하듯 보는 것과 달리 <하트시그널>은 남의 ‘썸타는 과정’을 세세하게 들여다 보며 함께 두근거리고 감정의 전이까지 느낄 수 있는 방송이었는데 ‘연애 대행’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 과정이 치밀했다. 누구는 직진으로 내달리기도 하고, 누구는 거절이 두려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또 누구는 조심스러운 성격에 상대를 슬쩍 떠보기만 하는 ‘썸’의 과정이 제각기 달라 시청자는 걔 중 누군가에 나의 연애를 대입하기도 했다. 물론 일반인 출연 방송의 위험이 종영 후에 노출되며 감정을 이입했던 시청자들의 환상을 깨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요즘은 나이 많은 연예인 남성과 어린 일반인 여성의 커플 매칭을 하는 연애 프로그램이 다수인데 <산장미팅>과 <연애편지>에서 명맥이 이어진 이 구성은 지금도 TV조선 <연애의 맛>과 MBN<연애 못하는 남자들>로 만들어진다. 특히 <연애의 맛>은 시즌1에서 이필모-서수연 커플이 실제 결혼에까지 골인하면서 시즌2 역시 3개월 만에 방영이 결정되었다. 고주원, 오창석, 이형철 등 출연자 남성은 30대 후반이나 40대이지만 출연자 여성들은 20대 중후반이라 커플의 나이 차이는 열 살 이상이 난다. 과연 카메라 앞의 만남이 실제 연애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시청자뿐 아니라 출연자들조차 의구심을 가졌다고 고백하며 첫 만남을 시작하는데 그게 어찌나 어색하고 두근거리는지 보는 내내 숨이 막힐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어색함을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바꿔가며 노력하며 연애감정을 만들어 가는 고주원-김보미 커플을 보면 이 방송의 인기 요인을 알게 된다.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내성적인 남성의 연애는 그 서투름 때문에 응원하게 되고 상대의 무뚝뚝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솔직하게 감정을 고백하는 여자의 연애담은 보는 사람의 죽은 연애 세포에도 심폐소생의 숨을 불어 넣는다.
사실 <연참시>를 본다고 나의 연애 스킬이 일취월장하지 않고, <연애의 맛>을 본다고 내가 그 연애의 꿀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러브 캐처>를 보며 ‘나도 한번 출연해봐?’ 싶은 맘에 신청서를 넣게 되는 것도 아니다. 연애 고민을 상담하든, 가상의 연애를 주선하든 그것은 가공된 유토피아 안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감정들이다. 연애 세포를 살리고 싶다면 차라리 연애공략게임 <러브앤프로듀서>를 하는 게 낫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애의 맛>을 보면서 일하느라 메시지에 바로 답을 못해서 상대가 오해하고, 그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제주도에서 부산까지 날아가서 겨우 저녁 한끼 먹고 헤어지는 커플의 ‘가짜 연애’를 즐거이 보게 되는 것은 그것이 연애가 아닌 방송의 예능적 재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안전하기까지 하고 상처도 안 받잖아. 아, 재미있다. 재미있어, 연애보다 재미있다. 진짜다.
이 글은 2019년 나일론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