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드라마 작가들이 말한다. 2030의 공정함에 대한 감각
시즌 마지막 경기, 이기나 지나 어차피 꼴찌는 결정돼 있지만 4년 연속 꼴찌팀 ‘드림즈’는 이 경기에서조차 “왜 이 팀이 최하위인지 알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악담 해설이나 듣고 있다. 비록 패배로 끝나더라도 홈경기에서 끝까지 분투했다면 팬들의 응원이라도 받았을 텐데, 코치진이 벤치에서 패싸움하는 모습이 카메라로 생중계되기까지 한다. 프로야구라기에도 민망한 꼴찌팀 드림즈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첫 회 내용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우리의 백승수(남궁민 분)는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이 처참한 경기를 지켜본다. 햄버거의 이름은 드림즈의 인기 선수 이름을 딴 ‘임동규 버거’.
드림즈의 새 단장 자리에 면접을 보러 온 백승수는 이세영(박은빈 분) 팀장에게 묻는다. “드림즈가 강해지길 바라십니까?” “당연하죠”라는 이세영에게 백승수는 예의 고저 없는 말투로 되묻는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까요?” 지금 이 조직이 이렇게 망가진 건, 관성처럼 이 상태를 유지하길 바라는 적폐 세력이 있기 때문임을 백승수는 꿰뚫어본다. 첫 방송 시청률 3%에서 시작해 13회 시청률 16%(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상승세를 타는 <스토브리그>는 스포츠 드라마의 외피를 쓴 오피스 드라마다. 야구팀이 배경이지만 종영을 3회 앞둔 13회까지 야구 경기하는 장면은 딱 한 번 나온다. 이 드라마는 스포츠 경기 자체의 박진감으로 재미를 견인할 생각이 없다. 그 대신 썩은 조직에 갑자기 투입된 리더가 합리적 원칙 안에서 어떻게 팀을 개선하는지, 여러 번의 결단이 성공적 결과로 수렴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본격 오피스 드라마다.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뒤, 구단이 팀 전력을 보강하는 시기인 스토브리그 기간이 시간적 배경인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전력을 분석하고 선수를 트레이드하며, 야구팀과 마케팅팀, 운영팀을 아울러야 하는 단장인 데다 야구단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다.
그래서 <스토브리그>를 분석·칭송하는 리뷰에는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현실에서는 부정하고 부조리한 리더에 지친 시청자가 백승수의 리더십에 열광하기 때문에 드라마가 인기 있다는 결과론이다. 그 또한 틀린 분석은 아니다. 하지만 2019년 12월 중순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스토브리그>와 tvN <블랙독>, jtbc <검사내전>을 동일 선상에 둔다면, 이 드라마들은 바른 힘을 가진 영웅 한 사람이 세계를 정의롭게 바꿔주길 기대하는 ‘영웅 리더십’이 주제가 아니다. 30대 신인 작가들이 집필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 드라마들은 모두 공정함을 말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 사회의 거시적 공정함이 아니라 미시적 시각의 ‘직장 내 공정함’을 들여다본다. 결과가 점수로 환산되고, 그 점수에 따라 선수의 몸값이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되는 자본주의 끝판왕 프로야구지만, 사실 야구는 잘 뛰는 스타플레이어 한 명이 승리를 가져오는 스포츠가 아니다. 전력분석팀이 필요하고 선수들의 모든 경기 내역이 할푼리 수치로 계산되는 수학적 스포츠가 야구란 종목이다. “투수는 귀족, 외야수는 상인, 내야수는 노비, 포수는 거지”라는 비유가 드라마에 등장할 만큼 각 포지션의 역할 분배에 대해서도 언급되지만, <스토브리그>는 뛰어난 능력치를 지닌 한두 명이 우승을 성취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하는 모두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백승수의 원칙은 단순하다.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만 제대로 하면 팀은 잘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는 훈훈한 휴머니즘이나 변명 따위는 필요 없고, 악역을 자청할지라도 과감하게 썩은 부분은 도려내는 결단만 요구될 뿐이다.
지역사회 협회장에게 시구를 시켜주는 것이 “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이라는 사장에게도 백승수는 “원칙대로 절차대로 하면 도움 받을 일이 뭐가 있습니까”라고 대꾸한다. 말을 더럽게도 안 듣는 백승수 때문에 사장이 열불을 낼 때마다 백승수는 로봇처럼 말한다. “저는 제 일을 할 테니 사장님은 사장님 일을 하십시오.”
시험 점수가 전부인 입시의 한복판 대치동 고등학교가 배경인 <블랙독>에서 상위권 특별반에 포함되지 못한 아이들이 “우리는 버리는 거냐. 이건 차별”이라고 따지자 선생님들은 “너희가 졸업하면 바깥은 더 심한 지옥”이라고 응수한다. 기간제 교사와 정규직 교사의 차별이 당연시되고, 성적에 따른 차별을 시스템화한 학내에서 교사나 학생들이나 더 이상 공정함에 대해 묻지 않는다. 차별을 지적하는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분류하는 한국 사회를 <블랙독>은 교실에 차갑게 투영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하는 책은 문화 소비 주체인 2030세대가 ‘정직과 공정함’에 민감하다고 분석했다. 임홍택이 펴낸 <90년생이 온다>는 지금의 20대가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비리에 민감하고, 기업에 충성하는 대신 신뢰하고 싶어 한다고 말하고, 웹 예능 프로 <와썹맨>과 <워크맨>을 만든 jtbc의 김학준 피디는 콘텐츠 성공담을 쓴 책 <그거 봤어?>에서 반백 살 쭈니형이 1020세대에게 환영받는 것이 박준형에게 권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비단 1020세대에게만 국한되는 감각이 아니다. 2020년의 대한민국 대중은 부조리하고 부정직한 시스템,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되는 레이스에 지쳤다. 상사의 과는 뒤집어쓰고 내 공은 빼앗기는 직장 내 억울함, 날 때부터 다른 색의 수저를 들고 태어난 사람의 편의에 기반한 법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재건되지 않는 삶의 균형 등….
우리는 노력 없이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노력한 만큼 응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정직한 시스템을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일하며 성취감도 느끼고 싶어 한다. <스토브리그>와 <블랙독> 등 최근 젊은 작가들이 쓴 드라마는 ‘공정한 시스템 안에서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의 성취’에 대해, 그럼에도 닥칠 수밖에 없는 내 능력 바깥의 슬픔에 대해 정확히 써내려간다.
* 나일론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