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과 '스토브리그'

하던 것을 또 한 드라마와, 새로운 것을 시도한 드라마

by 김송희
사랑의 불시착2.JPG


“그러니까 쟤가 나쁜 놈이야?” 재미있다는 입소문에 이제야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누굴 나쁜 놈이라고 하면 좋을까. 친구가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tvN <사랑의 불시착>이라면 답은 간단하다. “아, 쟤야, 쟤. 오만석이 연기하는 조철강이 나쁜 놈이야.” 하지만 이제야 따라잡기 시작한 드라마가 SBS<스토브리그>라면. 이 드라마에서 우리 편과 악당을 어떻게 가름할 수 있을까. 야구단을 해산시키려는 꿍꿍이를 가진 구단주 권경민(오정세)? 연봉을 더 올려달라며 단장에게 술을 끼얹는 포수 서영주(차엽)? 끄떡하면 편을 갈라 싸우는 코치진? 아니다. 이 드라마에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나쁜 짓을 일삼는 ‘본투비’ 악당은 없다. 다 자기의 그렇게 해야만 하는 개별적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행동한다.


12월 13일(금) 방영을 시작한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와 12월 14일(토) 시작된 토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두 번의 휴방 끝에 사이좋게 10회의 반환점을 돌았다.(1월 26일 기준) <사랑의 불시착> 10회가 14.6%(닐슨코리아), <스토브리그>의 11회는 16.5%(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시청률도 상승세다. <사랑의 불시착>은 로맨스 코미디, <스토브리그>는 오피스물과 스포츠물을 혼합한 장르라 두 개의 드라마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르와 전개 방식이 다름에도 시청률이 안정 궤도에 올라선 두 드라마는 서로 너무 다르기에 비교해볼 만한 짝패다.

스토브리그4.JPG


시청률 보증수표 인기 작가 VS 신인 작가의 데뷔작

<사랑의 불시착>은 <내조의 여왕>(2009)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별에서 온 그대>(2013) <푸른 바다의 전설>(2016) 등 내놓는 드라마마다 홈런을 치며 높은 타율을 기록해온 박지은 작가의 복귀작이다. 거기다 영화 <협상>에서 협상가와 범인 역할로 만났음에도 멜로의 기운으로 다음번 만남을 기대하게 했던 손예진과 현빈의 로맨스물이라니, 올 상반기 최대 기대작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스토브리그>는 2016년 MBC 극본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3년 만에 SBS를 통해 편성이 잡혔다. 신인 이신화 작가의 데뷔작에, 장르는 오피스 스포츠물, 믿고 보는 남궁민 주연이라고는 하지만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복잡한 드라마라 1회 방영 초에는 ‘매니아 드라마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한’ 작품으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2019년을 예로 들어 보면 한국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 트렌드에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거나 사건을 파헤치는 구도의 장르물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었다(SBS <열혈사제>를 제외하고). 이는 제작비 차원이 다른 넷플릭스 드라마로 장르 팬들이 옮겨간 이유도 있었는데 <스토브리그>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미드에 익숙한 장르 팬들을 TV 앞으로 끌고 온다는 점도 이 드라마의 특이점이다.

사랑의 불시착3.JPG

<사랑의 불시착>은 재벌 상속녀인 여자 주인공이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했다는 황당한 시놉시스로 포문을 열었지만 이후의 전개는 예측 가능한 한국 드라마의 전형을 따른다. 서로 너무 다른 남녀는 아웅다웅하며 한 집에 살다 차츰 정이 들고, 여자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 남자 주인공이 백마 대신 북한 고위 간부만 탈 수 있는 고급차를 타고 나타나 구해준다. 남한에서는 쇼비뇽 블랑에 고급 해산물 요리가 아니면 입에도 대지 않았던 세리(손예진)는 북한 군인들이 주는 조개껍질에 부은 소주를 아주 맛깔나게 마시며 그곳에 적응해가고, 패션 회사 경영의 노하우와 친화력으로 북한의 여성들과도 친분을 쌓는다. 여자 주인공의 매력이 어디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재벌 상속녀의 당당함과 물정 모르게 나오는 귀여움 사이를 갈팡질팡한다는 점에서도 작가의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를 답습하고 있는 형국인데 바로 그 익숙한 ‘사랑스러움’이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기도 하다. 거기다 지적이고 다정하며 태평양 같은 어깨와 기럭지로 북한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면서, 무술까지 출중하고 알고 보면 고위층의 외아들이기까지 하며 천재 피아니스트이기까지 한(헥헥), 완전무결한 남자 주인공 리정혁(현빈)은 또 어떠한가. 연기하는 배우가 김수현에서 현빈으로 바뀌었을 뿐 캐릭터 설정은 이전과 진배없다. 기성 작가가 자신이 가장 잘하던 것을 기능적인 설정만 바꾸어 익숙한 재미를 준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다.

스토브리그3.JPG

이야기가 복잡해도 시청자는 따라간다

반면 <스토브리그>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한국 드라마보다는 미국 드라마를 닮아있다. 팬들조차 포기한 만년 꼴찌 야구팀에 단장으로 부임한 백승수(남궁민)는 어디서든 할 말은 하는 남자다. “드림즈의 성공을 바라세요?”라는 질문에 “당연하죠”라고 답하는 이세영(박은빈) 팀장에게 그는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걸 바랄까요?”라고 묻는다. 드림즈의 성적이 처참한 것은 내부에 문제가 산적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그 시스템을 관성대로 유지하길 바라는 유착 세력 때문이라는 것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는 꼴찌여도 괜찮아, 열심히만 하자.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리더가 아니다. 꼴찌보다 부끄러운 건 없다며 결과가 안 좋은 건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착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아니라 로봇처럼 냉정해 보이는 인물이 조직의 문제점을 합리적이지만 단호하게 척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토브리그>는 전개가 극적으로 빠른 드라마는 아니다. 천천히 미션을 클리어하는 백단장의 리듬처럼 <스토브리그> 역시 비시즌의 야구단 운영이라는 ‘도대체 통쾌하거나 극적일 요소가 전혀 없는 소재’로 다음 회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상한 드라마다.


메이저리그 최하위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전략 분석가와 함께 운영하며 높은 성적을 낸 단장 빌리 빈의 실화를 다룬 영화 <머니볼>과 비교되지만 <스토브리그>는 <머니볼>보다는 미국 수사물의 구조를 닮아있다. 폐쇄적인 마을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그 인물이 자기 방식대로 매회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큰 비밀에 점차 가까워지는...남자 주인공의 옆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여자 주인공의 콤비플레이 역시 <멘탈리스트>나 <블랙리스트>, <캐슬>과 같은 드라마가 연상된다. 거기에 자신의 과오로 장애인이 된 동생과 그 때문에 쓰러진 아버지, 아내와의 이혼과 유산, 신생아를 감싸 안고 엉엉 우는 부성애 장면은 한국 드라마의 신파적 요소까지 담고 있어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바로 이 익숙한 것 안의 낯섦이 <스토브리그>의 강점이다. 실력이 부족한 외인구단을 훌륭한 리더 한명이 변화시켜 성공에 이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토브리그>는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업무의 공정함’에 대해 말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한국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쉽게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축소시키지만 <스토브리그>는 야구단이라는 배경을 십분 활용해 무수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다 사연을 부여한다는 점 역시 남다르다. 사건을 백승수나 그의 주변 인물에게 집중 시키지 않고 과감하게 회마다 사건의 주인공을 교체시켜가며 이야기를 활짝 펼쳐놓는다. 신인 작가가 실제 야구단의 자문을 받아 촘촘한 대본을 쓰고, 어디서 저런 배우들이 데려왔나 싶은 조연 배우들은 진짜 야구선수처럼 승모근까지 실증적인 연기를 한다. 회마다 새 인물이 등장하고, 야구 규칙이나 팀 운영의 설명이 복잡해도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시청자는 이탈하지 않고 따라간다는 것을 <스토브리그>는 증명해낸다. 드라마판에 자기만의 룰을 만든 것이다.


스토브리그2.JPG

한국 드라마의 문제로 지적됐던 것들

하던 것을 또 한다는 점에서 <사랑의 불시착>의 PPL 장면을 한번 보자. 이 드라마의 10회까지 주요 배경은 북한이다. 배경이 북한이니 PPL로 들어간 상품들을 간접 광고하기가 어려워진다. 여자 주인공 세리가 ‘세리스 초이스’라는 유통사의 대표이자 패션, 뷰티 업계의 셀러브리티라는 것은 간접 광고를 용이하게 하지만 그녀가 북한에 가 있다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장마당’(북한의 시장)이라는 공간이다. 세리는 북한에서도 ‘향초가 있어야 잠이 오고, 샴푸와 바디 샤워가 꼭 있어야 한다’며 리정혁에게 떼를 쓴다. 원래 그렇게 철없는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그녀가 북한에서 신세 지고 있는 군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이 드라마에 화장품 브랜드가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세리가 구해달라고 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에 간 리정혁에게 상인은 “이것이 남쪽에서 올라온 것”이라며 화장품의 각종 효능을 설명한다. 무슨 성분이 들어가 있어 피부에 빛을 나게 해주며 향이 좋으며 블라블라...리정혁이 사간 물건을 알아본 세리는 신이 나서 상품을 자랑하고, 드라마 끝에는 그 브랜드의 박스 광고가 떠오른다.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흥행하며 드라마 속 치맥이 중국에서도 유행이 된 덕인지 <사랑의 불시착>에도 치킨 브랜드가 등장한다. 안타깝게도 남녀 주인공이 모두 북한에 가 있으므로 이 치킨을 먹는 것은 주로 세리 회사의 직원과 그의 선배인 보험회사 사람이다. 이 둘은 전화로 통화해도 충분해 보이는 사안을 굳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치킨집에서 만나 담소를 나눈다. 둘이 앉아 “그래서 대표님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대화를 시작하면 먹음직 스러운 프라이드 치킨과 생맥주가 서빙된다. 한참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터라 치킨은 물지도 못하고 바삭한 튀김만 눅눅해져 간다. 이처럼 드라마 흐름에 맞지 않는 각종 브랜드의 간접 광고는 다수의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의 문제로 지적해온 것들이다. 높아지는 제작비 단가와 배우의 출연료를 감당하기 위해 제작사들은 PPL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70분 드라마 한 회를 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쉴새 없이 광고판에 노출된다. 덕분에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맞선도 서브웨이에서 보고 데이트도 서브웨이에서 하고 친구 집에도 선물로 서브웨이를 사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랑의불시착1.JPG

물론 <스토브리그>에도 간접 광고는 등장한다.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했던 1,2회보다는 시청률이 상승하기 시작한 최근 회차에 간접 광고의 등장 회차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곱창과 분식 브랜드다. 장진우(홍기준) 선수가 은퇴를 고민하며 찾아가던 선배가 곱창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그의 곱창집에 드라마의 주요 회식 배경이 되곤 한다. <사랑의 불시착>의 다 식어버린 치킨에 비해 자글자글 구워지는 곱창은 늦은 밤 식욕을 자극해 시청자들의 ‘곱창 땡긴다’는 원성을 사기도 한다. 그 외에 호주에 훈련을 다녀온 유민호(채종협)를 배웅나간 운영팀 직원들이 ‘한국에 왔으면 떡볶이죠!’라며 떡볶이 집을 찾아가고 그 집 대표 메뉴인 대왕오징어튀김을 야구 배트로 휘두르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그 다음 홍삼 선물까지 오고 갈 때 쯤이면 ‘아, <스토브리그>도 한국 드라마구나’라는 자조 섞인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시청률이 높아지고 인기가 생기니 자연히 PPL이 붙기 시작하고 방송사에서는 70분짜리 드라마를 3번으로 쪼개서 방영하기까지 한다. 미국 드라마같았던 <스토브리그>여 웰컴! 한국 드라마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랑의 불시착>은 성공이 담보된 기성 작가의 작품에 당연하게도 톱스타가 캐스팅되고, 안전한 이야기와 로맨스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방영 초반에 있었던 표절 논란까지 지극히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해오던 것을 하던 대로 잘해서 안전하게 탄탄대로를 걷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반면 <스토브리그>는 신인 작가의 탄탄한 대본을 기용하고 방송사 최대 기대작이었던 <배가본드>의 후속작으로 편성하는 과감한 수를 두었기에 성공한 드라마이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한국 시청자는 스포츠물 안 좋아해’라는 관성을 무시하고 ‘재미있으면 누구라도 본다’는 생각으로 돌직구를 날렸고 그게 성공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작년 비슷한 시기에 방영했고 성공했던 Jtbc <스카이 캐슬> 역시 비슷한 사례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을 보면, 위기의 지상파 제작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익숙한 길에서 이탈해 새로운 룰을 만드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이컷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튜버들의 번아웃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