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었던 과거가 촌스러움을 넘어서 밈이 된다

새로운 밈의 시대, 비의 '깡'과 권상우의 소라게...맥시무스라니...

by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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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각자의 ‘깡’이 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인터넷 밈이 되어 대유행한 비의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 ‘깡’을 처음 접한 순간이 있을 거란 소리다. 2017년 발매된 비의 미니 음반 <MY LIFE愛>의 타이틀곡 ‘깡’을 그때부터 좋아했다면 당신은 정녕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고, 아마도 대다수는 그때부터 3년이 지난 2020년 유튜브에서 처음 접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유튜버 ‘호박전시현’이 패러디한 ‘1일1깡 여고생의 깡’ 영상으로 이 곡을 처음 접했다. 얼굴에 이상한 두건을 쓰고 어깨에는 과장된 뽕을 넣은 채 우주 괴생물의 몸부림 같은 춤을 춰대는데, 노래 제목조차 ‘깡’이라니…. 그게 노래 제목일 거라고는 처음엔 상상도 못했다.


유튜브 <문명특급>의 재재가 ‘깡’을 ‘숨어서 듣는 명곡’으로 소개한 것을 보고서야 설마설마했던 ‘깡’의 존재를

깨우치게 되었다는 것이 나만의 깡 스토리. ‘깡’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실 이 무대 아래에 달리는 베스트 댓글 대부분은 비를 놀리는 내용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비에게 해당

댓글들(‘휴깡은 있어도 탈깡은 없다’ ‘님아 그 깡을 건너지 마오’ 등등)을 읽어주었을 때, 비는 “이건 약한 거”라고 응수했는데 실제로 추천 수가 가장 높은 댓글은 비의 과시적 남성성을 조롱하는 것들이 대다수다. ‘깡’의 무대 중 비가 양팔을 벌려 옆으로 뛰는 춤을 향해서는 “영덕대게인 줄 알았다”며 놀리고, 일명 꼬만춤을 출 때는 ‘우리 네 살 조카보다 많이 만진다’고 놀리는 식이다. 비는 덕분에 ‘깡’이 차트를 역주행하고,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요즘 세대가 자신의 히트곡을 접할 기회가 되어 그런 놀림조차 기분 좋다고 쿨하게 대응해 대인배라는 칭호를 얻었다. 게다가 노래 제목에 힘입어 새우깡 광고 모델까지 되었으니 나‘비’ 현상이 비에게는 이득이 된 것이 분명하다.


비 스스로 분석했듯이 ‘깡’이 2020년에 새로이 밈이 된 것은 그 곡이 겨우 2년 전의 곡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2017년 12월에 발매됐으니 겨우 2년 전의 무대인데도 춤과 가사는 과장되어 있고 2010년대의 것이라기에는 비장한 자아도취에 취해 있다. 심지어 음반명도 <MY LIFE愛>인데, ‘내 인생에’의 ‘에’를 ‘애’로 바꿔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요즘엔 잘 안 하는 시도다. ‘깡’보다 먼저 유행한 2014년 발매곡 ‘차에 타봐’의 가사를 한번 보자. “소중한 내 여자 내 여잘 니가 건드렸어/ 어떻게든 너를 때려야겠어/ 다신 내 여자 못 보게 오늘 내가

너를 손봐주겠어/ 차에 타봐 일단 맞아야 돼” 애인을 ‘내 여자’라고 소유물로 규정하는 감성, 애인이 상대 남성 편을 들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는 스토리텔링까지. 비가 박진영의 프로듀싱을 받던 1집부터 내내 추구한 영화 같은 감수성이 철철 넘친다. 물론 작사는 비가 했다. 이처럼 진지하게 ‘나의 멋짐’에 취해 있던 것이 바로 과거의 감수성인데, 무의미하고 단순한 것이 쿨하게 받아들여지는 2020년에는 이런 비장미가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과거엔 충분히 멋진 것들이 지금은 밈이나 놀림감이 되는 것은 ‘깡’만이 아니다. 예전엔 권상우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말죽거리 잔혹사>(2004)나 <천국의 계단>(2003)의 연기였다면 요즘은 다들 ‘소라게’를 떠올린다. 드라마 <슬픈연가>(2005)에서 이별 후 애써 눈물을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던 장면이 ‘소라게’라며 패러디되더니 급기야 이모티콘까지 출시됐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권상우가 ‘그땐 진짜 슬픈 장면이었다’며 모자를 뒤집어쓰고 소라게 흉내 정도는 내줘야 사람들은 기꺼워하며 웃는다.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부유한 친구에게 보내고 거짓 미소를 짓는 클라이맥스 장면이건만, 2020년 대중의 눈에는 그냥 울지 털모자는 왜 끌어내리는지 웃기기만 하다. “사랑하기에 널 보내는 거야”류의 감상적인 장면보다는 차라리 둘째 이모 김다비처럼 ‘입 닫고 지갑 한 번 열어주라/ 회식을 올 생각은 말아주라/주라주라주라 휴가 좀 주라’는 직설적인 가사에 사람들은 더 호응한다.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백마(맥시무스)를 타고 여주인공을 구하러 오는 황제도 작가와 배우는 멋있다고 기대하며 창작한 것일 게다. 그러나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멋짐을 과시할수록 놀림감이 될 뿐이다. “사탄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 재미있어지겠네?”(<상속자들> 2013), 그때 들어도 오글거렸던 루시퍼가 맥시무스로

바뀌었을 뿐. 이제 대중은 과장된 마초의 감수성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팬이 비에게 바치는 ‘시무 20조’ 중 3가지는 특히 2020년의 창작자들이 모두 팔에 문신으로 새겨야 할 ‘띵언’이다. 14. 현재 2020년 현실을 직시하기, 15.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자아도취 금지 20.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지인들 옆에 두기.


나일론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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