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건 언제나 짜릿해!
4천 원짜리 딸기 주스를 사서 선 채로 원샷하고 연이어 다른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라테와 바나나크림타르트를 주문했다. 바나나크림타르트는 아기 손바닥만 한 것이 무려 9천 원이나 했다. 값비싼 음료를 연달아 주문하고, 만 원에 육박하는 디저트를 사 먹다니. 내가 재벌가 딸내미도 아닌데 괜찮은 것인가. 두 군데의 카페에서 2만 원을 쓰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왠지 모를 죄책감으로 나의 허영심을 마구 탓했을 것이다. 어이구 이것아, 네가 지금 주스, 커피, 타르트에 2만 원이나 쓸 때냐. 정신 차려라! 월세 내는 날이 낼 모레다. 이번 달 카드값은 생각도 안 하냐. 하지만 이번엔 그런 자책감 따윈 갖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이 국가가 준 용돈의 달콤함. 맘껏 플렉스 할 테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은행에 신청하고 바로 다음날 사용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금요일에 신청하고 다음날이 주말이었음에도 24시간 만에 신속 처리된 대한민국 행정의 엄청난 집행 속도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딸기 주스와 커피를 마시고, 고향에 가져갈 빵을 몇 개 더 구매한 후 다시 한번 과감하게 KTX 열차표를 결제했다. 아뿔싸, 이번에는 국가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 KTX 재난지원금 결제는 대전 시민만 가능하다고 한다. 코레일이 대전에 소지해있기 때문이란다. 재난지원금 사용하기, 은근히 복잡하다. 예를 들어 온라인 결제는 대부분 안 되기 때문에 배달 앱 결제도 안 되는데, 대신 앱으로 주문만 하고 대면 결제하면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단다. 스타벅스나 프랜차이즈 등 직영 가맹점 본사 소재 지역에 사는 주민만 사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는 한국 본사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서울 시민은 사용 가능하고 다른 지역 시민은 사용이 안 되는 식이다. 여기는 되나? 저기는 안 되나? 찾아보기 귀찮다면 그냥 무조건 동네 소매점에서 쓰면 된다. 나 역시 재난지원금 사용가능처를 찾는 게 귀찮아서 평소 같았으면 온라인에서 샀을 잡다한 생필품도 전부 동네 작은 마트에서 샀다.
돈을 펑펑 쓰는데도 자책감은커녕 국가 경제와 소비 진작, 소상공인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다니. 재난지원금 만만세! 생각해 보니 일도 하지 않았는데 누가 돈을 거저 준 게 몇 년 만인가. 누가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공돈을 준 게 10년 만이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로 날짜를 잡았다. 신촌에서 만나 밀폐되지 않은 식당을 물색하는데, 확실히 거리에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다들 재난지원금을 받고 플렉스 하러 나온 것인가! 폴딩도어와 창을 활짝 열어젖힌 식당들에도 손님들이 제법 앉아있다.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일상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우리는 세 달 만에 겨우 만났다.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보자’며 서로의 생일도 음료 쿠폰으로 챙겨 주며 만남을 미뤄왔다. 셋이서 ‘기분이다! 항정살 가브리살까지 다 시켜!’라며 부자 된 기분을 누린 후 호기롭게 편의점에 들러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에 편의점의 고급 아이스크림의 판매율이 상승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왠지 사치 부리는 것 같아서 선뜻 사 먹지 못했던 하겐다즈, 매그넘, 끌레도르 등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고르고 한입 물고 그 달콤함에 미소 지었을 사람들을 상상하니 귀엽단 생각이 들었다. 돼지바, 누가바, 바밤바에 비해 겨우 천원 더 비싼 건데 그게 뭐라고, 겉면의 초콜릿은 이렇게 두툼하고 바닐라는 이토록 진하고 달콤한데! 이 맛난 걸 평소에는 사치란 생각에 참았단 말인가!
그 외에도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안경점, 정육점의 손님이 늘었다는 증언들도 뒤따른다. 특히 소고기의 판매율이 늘었다고 한다. 안경과 소고기…. 도수가 안 맞아 불편해도 가격이 부담이라 ‘좀 더 쓰자’며 교체를 망설이는 게 안경이고, 집안 경사라도 있지 않으면 선뜻 사지 않는 게 소고기 아니던가. ‘거, 소고기 한 근 끊어주소’라며 기분 내 고기를 사갈 사람들을 생각하니 나도 소고기를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참지 않고 그것도 샀다. 원래 과소비에는 ‘기분’만큼 훌륭한 이유가 없는 법.
왜 우리는 ‘알뜰하고 근면하게’ 돈을 아끼고 모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걸까. 조금 더 맛있는 걸 먹고, 갖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좋아하는 것들을 사는 게 왜 과소비라고 비난받는 거지? 집에 가는 길에 꽃을 샀다. 나를 위해 꽃 한 송이 사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평소에는 꽃집 앞에서 번민하다 발길을 돌린다. 봄은 허무하게 끝났지만, 뒤늦게 꽃 한 다발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두니 방안이 향긋하다. 아, 행복해. 역시 돈 쓰는 게 제일 좋아. 그것도 국가가 허락한 과소비라니. 짜릿해! 늘 새로워! 돈 쓰는 게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