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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imi Oct 07. 2021

내리사랑


두어 달 전쯤인가 딸아이가 무슨 말 끝에 그랬다. 내가 어른이 돼서 뭐가 되면 엄마한테 뭐를 해주고, 내가 엄마한테 갚아주고, 엄마를 위해서 어쩌구.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자기가 크면 엄마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웃으며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딸아이의 말이 다 끝나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마워. 그런데 ㅇㅇ아. 네 마음은 진짜 고맙지만 그건 엄마를 위한 게 아니야. 너는 너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하고 너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만 최선을 다해야 해. 엄마아빠는 너를 지켜주는 사람이고, 네가 기댈 수 있는 나무이자, 그늘이고, 언덕이야. 그뿐이야. 엄마아빠가 너한테 해준 건 네가 엄마아빠에게 되돌려주는 게 아니야. 만약 네가 네 자식을 낳게 된다면 그때 네 자식에게 해주면 되는 거야.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서 모든 걸 해주는 거고 그 자식은 또 그 자식을 사랑하는 거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흘러내려가는 거야.'


알아듣는 건지 어떤 건지 딸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여덟 살 아이에겐 과하고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말은 딸아이에게 해준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한 말이면서 동시에 그 옆에 앉아 있던 남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는,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엄마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산 것 다 봐놓고! 고모들이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봐놓고!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알면서 네가!' 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착한 아들이다. 때때로 아들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자신을 섭섭하게 할 때 마치 비장의 카드처럼 불쑥 꺼내 드는 그런 말씀들.


'어머님, 그런 말씀은 당신 아드님이 아니라 당신의 남편에게 하실 말씀이옵니다. 당신 삶의 동반자는 아들이 아니라 당신의 배우자이니까요.' 라고 내가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남편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뿐이다.


심리상담센터에 다녔을 때 상담사는 부모를 나무에 비유했다.


자식에게 부모는 나무와도 같아요. 자식이 멀리 갔다 와도 늘 제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나무가 건강하면 자식에게 열매도 주고 시원한 그늘도 되어줘요. 그런데 나무가 병들어 있으면 어떻게 해요? 병이 들어서 아픈 나무. 습하고 거미줄이 쳐지고 곰팡이가 피는 나무. 그런 나무의 그늘 밑에 있으면 안 돼요. 멀어지는 수밖에 없어요. 그 나무 밑에 있다가는 금방 같이 병들고 말 거예요.


첫아기를 낳고 어린 딸이 귀엽고 예뻐 어쩔 줄 모르던 내게 친정엄마가 말씀하셨다.


'원래 자식은 태어나서 10살까지 평생의 효도를 전부 다 한단다. 귀여워서 부모를 웃게 만드는 걸로 효도를 다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부모 말을 안 들어서 고생을 시키지. 그러니까 예쁠 때 많이 예뻐해 줘라. 엄마는 사는 게 힘들어서 자식 예쁜 줄을 모르고 너희한테 잘못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도 어쩌겠냐, 그땐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너희는 그렇지 않잖아. 그러니까 애들 이쁘게 잘 키워야 한다.'


친정엄마는 혼자 우리 남매를 키우면서, 요즘 말로 하자면 정말 아동학대를 하셨다. 회초리로 체벌도 많이 하셨고, 막말로 정서적 학대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자기가 잘못한 걸 아셨기 때문에 본인도 많이 아파하셨다. 상담센터를 다니던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며 눈물로 사과를 하셨고, 요즘도 틈틈이 너희는 너희의 자식들과 무조건 행복만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시곤 한다.


반면, 시부모님은 친정아버지와 친가가 없는 나 들으라는 듯이 수시로 내게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 아들은 정말 사랑 많이 받고 자랐다고. 진짜 진짜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컸다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싶다.)


'글쎄요, 그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진 않은데요.' 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속으로 생각만 한다. 시부모님  분은 당신들의 아들을  모르시는구나, 하고 말이다.


시부모님은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주 중요한 분들이다. 체면이 중요한 분들이기도 하고, 갈등이 생기는 걸 견디기 힘들어해서 그러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자식과 며느리를 앞세우려 하신다. 항상 남들에게는 허허허 그럴 수도 있지, 하시면서 내 자식에게 남들을 이해하라고 하시는 분들. 그래서 오히려 내 자식에게 상처를 주시는 분들.


 번은 내가 시어머님께 슬쩍 말을 꺼내본 적이 있었다. 옛날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듯 웃으며 가볍게 꺼낸 이야기였다. 그건 남편이 내게 말해주었던, 본인이 어릴  아버지께 몹시도 서운했었다는 어떤 일화. 시어머님은 진심으로 어이없어 하시면서 황당하다는  웃으셨다. '참나, 걔는  그런 일을 서운해하고 그랬다니? 그걸  너한테 말하고 있어? 아이고 참나.' 오히려 아들을 책망하는 말투였다.  후로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론 부모로서 자신이 자식에게 잘못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일 뿐이라는  어른이 조금만  헤아려주면 좋으련만. 그때  어린아이가 상처를 받았다는  알아주기만 해도 좋으련만. '그랬구나, 네가 서운했었구나.' 하는  마디로도 충분한 것을.


어떤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 아니라 역류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한다. 힘들게 자식을 키워낸 것을, 열심히 삶을 살아낸 것을 자식을 통해 인정받고, 이해받고, 보답받고 싶어 한다. 자식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받고 싶어 한다. 자식에게서 부모의 역할을 기대하는 부모. 그게   자식의 마음을 여전히 병들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남편이 안쓰러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남편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뿐이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짐을 내가 무한히 나누어질 수는 없다. 역류하는 물은 깨끗할 수 없으니까. 나까지 같이 병들어서 우리 아이들에게 맑은 사랑을 흘러내려 보내줄 수 없을까봐 두렵다.


상담사의 말을 기억한다.


계속된 아픔의 역사였잖아요. 한국전쟁과 가난을 겪어온 시대의 아픔들.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기가 어려웠던  시절의 아픔들. 모든 부모들의 아픔과 모든 자식들의 상처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거예요.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으니까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자식을 아프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안돼요. 이제는 끊어내야죠. ㅇㅇ씨도 ㅇㅇ씨의 딸을 본인처럼 만들지 않으려면 바뀌고 변해야 해요.


그래, 이제는 바뀌어야지. 그러기 위해서 노력해야지. 내 아이들에게는 오롯이 맑은 내리사랑만 흘러내려 보내주기 위해서 나는 더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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