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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 Nov 21. 2023

프롤로그

옆 길로 샜다가 돌아가는 중입니다

첫 글을 쓰고 하루가 지나 다시 읽어보니 영… 별로다. 모든 글쓰기 책에서 처음 쓴 글은 부끄러울 정도로 별로라고 하던데 나라고 예외일 리 있나. 다행히 계속 쓰다 보면 나아진다고 하니 그 말을 믿고 일단 꾸준히 쓰는 것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글을 쓰려면 좀 더 객관적인 이야기를 다루어야 하는데, 워낙 일기만 썼다 보니 첫 글 역시 일기에 가깝다. 글투도 너무 딱딱해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 다른 작가들의 글도 많이 읽어보고 배울 점들을 찾아 내 글에도 적용해 보아야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자 한다면 공감을 먼저 얻어야 한다. 진솔하게 내 이야기를 할 때에 누군가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진솔한 이야기를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디테일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디테일은 지루하게 느껴지고, 디테일이 없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테니까. 디테일한 정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키 포인트다. 어떻게 글을 쓰면 잘 소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써 보자고 생각했다. 첫 글을 쓰고 보니 내가 어떤 배경에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혀 사전 정보가 없어 불친절한 글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프롤로그’를 쓰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교 및 석사과정 졸업 후 박사과정을 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로 왔다. 대학교에서는 화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 재료공학, 화학공학의 경계쯤 되는 분야에서 연구를 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학계와 인더스트리 사이에서 고민하다 공학 백그라운드로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에 취직했고, 5년 간 일을 하다가 다시 환경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어 자발적 취준생이 되었다. 미취학아동 두 명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고 아내의 커리어를 응원해 주는 남편과도 함께 살고 있다.


커리어라고 내세울 만한 뭔가는 사실 없다. 한 가지를 꾸준히 했으면 15년은 했을 것이고 어쩌면 전문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래도 커리어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살면서 가장 오래 고민해 왔고 아직도 고민 중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의 커리어는 ‘고민의 연속’이었고 삼십 대 중반을 지나 후반을 향해 가는 지금도 여전히 고민이 많다. 20대 때에는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는 단순한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고 나니 ‘좋아한다’는 의미를 새로 정의하게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하는 일을 항상 좋아할 수 있겠는가. 무슨 일을 하든 즐거움과 어려움은 항상 같이 따라온다. 다만 돌이켜 봤을 때 힘들었던 시간을 ‘성장하는 시간’으로 재정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힘듦보다는 즐거움이 컸기 때문에 그랬다. 나는 성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성장하며 성취를 해 나가는 기쁨을 '이 일을 좋아한다'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삼십 대에 커리어를 바꾸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일관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는 단연 중요한 분야이고 기술 발전의 속도도 어마무시해서 일 자체는 굉장히 신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적어도 20년은 일을 더 한다고 했을 때, 좀 더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떤 업무와 조직에서 일을 할 때에 나의 쓰임이 가장 클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곤 하는데, 개인의 가치관이 조직의 미션과 맞아떨어질 때에 그렇다고 믿는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가치가 “아름다운 대자연을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도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꼭 경험했으면 좋겠고, 그렇기에 ‘엄마는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하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런 믿음이 있어서 오래,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면 중간관리자 급의 직책을 맡아 점점 높이높이 올라가고 있는 동년배들이 많이 있고, 창업자의 길을 가는 사람, 엔지니어, 의사, 변호사, 교수 등의 전문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자리매김을 해 나가는 친구들도 눈에 띈다. 그들과 비교하며 내 커리어가 초라하다고 느낄 때도 물론 있지만, 나의 길을 꾸준히 걸어서 내 속도로 커리어를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어찌 보면 내 상황은 잘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으면 되는데, ‘가지 않은 길’을 궁금해하며 옆 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돌아가는 여정을 통해서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더 생겼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래서 한 분야에서 꾸준히 경험과 지식을 쌓고 나누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커리어를 전환한다는 의미는 모두에게 다를 것이고 일에 대한 마인드 역시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내 경우는 한 가지 예시일 뿐이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작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번아웃과 퇴사하며 생각했던 점들, 그리고 구직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히 나눠보려고 한다.



image credit: https://images.unsplash.com/photo-1429743305873-d4065c15f93e?ixlib=rb-4.0.3&q=85&fm=jpg&crop=entropy&cs=sr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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