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지 / 길But
50인 100편의 시가 들어있는
시집을 한권 사서 읽었다
시집 속에는 딱히
시라 명명할 시는 없었는데
그래서 그 시집은
각자의 욕망들이 모인
진짜 시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타인들의 욕망이나 읽자고
이 책을 돈 주고 사다니
그 시집에 시가 실린 사람들도
한탄과 감탄을 동시에 했을 것이다
내가 미쳤지
이 글을 시라고 쓰다니
그래도 멋지긴 하군
예전 이십대의 어느 겨울날이 생각난다
버스터미널을 겸한
슈퍼 안쪽에는
난로가 하나 놓여있다
사람들 몇몇이 시집 속의 시처럼
모여 들었다가
뿔뿔이 흩어지곤 하던 곳
나는 그 달아오른 난로 속에
내 머리속에 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랑을 확 태워 버리고
하얀 재나
날리는 눈발처럼 떠나고 싶었다
내가 미쳤지
이런 걸 사랑이라 믿다니
그래도 멋지긴 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