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혼곱 도전기

곱창은 혼자서 2인분이지!

by 최율

딸아이를 학원에 들여보내고 나서 핸드폰의 시계를 본다. 아이의 학원은 수업 공간과 학부모 대기 공간이 그저 통유리 하나로 가로막혀 있어서,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의 부재로부터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이를 수업에 들여보내고 손을 흔들고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팔로 커다란 하트를 날려주고 나니 내게 남은 시간은 오십 분.


수업 전, 수업 동안 엄마는 저녁을 먹고 오리라 이야기를 해두었지만, 약간의 분리불안이 있는 아이는 싫다며 완강히 거부했었다. 엄마도 배가 고프고, 밥을 먹고 싶고, 매번 밥을 못 먹어 너희가 자고 나서야 밥을 먹어서 뚱뚱해졌다고 한동안 하소연을 하고 나서야 아이는 스리슬쩍 못 이기는 듯 동의하였다.(아이는 평소 엄마가 뚱뚱하다며 엄청 놀렸기에, 뚱뚱한 엄마가 살을 빼야 한다는 이유는 우리의 치트키였다.) 아이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어서 빨리 몰래 이곳을 떠나야 한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고개를 푹 숙이고서는 소리하나 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바닥이나 책상에 고여있는 눈물을 확인하고서야 눈물을 흘렸음을 확인하던 시절이었다. 그게 어찌나 마음에 아리던지. 그 덕에 첫째와 나는 강제로 일심동체가 되었고, 나는 몇 년째 아이들 없이 지내본 적이 없었다. 식사시간에도 말 그대로 두 아이를 먹이고, 아이들이 흘린 걸 치우다 보면 내 밥은 그대로 남아있기 일쑤였다.



오랜만에 둘째를 놔두고 첫째의 학원 라이딩을 온 저녁. ‘아 그래! 이때다!’ 싶어서 오는 길에 보아 둔, 학원건물 일층의 곱창집으로 향한다. 어쩌면 이런 우연이! 지난주부터 곱창이 먹고 싶었는데, 마침 아이 학원 건물 일층이 곱창집이라니. 게다가 오늘은 혼자서 저녁을 먹으려는 거창한 계획까지 있는데 말이다. 마치 내게 누군가 선물을 안겨준 느낌이었다.


같이 먹을 사람은 없었지만, 혼밥 역사가 몇 년인데 곱창쯤이야. 대학생 시절부터 혼밥에 익숙했던 나지만, 곱창 앞에서는 살짝 망설여졌다. 이인분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우려가 되었지만, 그래도 얼마 만에 난 시간인데. 아낌없이 먹고 오리라 다짐했다.





나의 곱창 사랑은 대학교 졸업반 시절, 아빠가 이제는 너도 컸으니 곱창을 한번 먹어보라며 데려간 왕십리 곱창 시장에서 시작한다. 왜 이 전에는 먹지 못하고,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서야 곱창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부모님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징그러워 못 먹을 거라는 부모님의 우려와 달리 나는 남김없이 곱창을 비워냈고, 그 뒤로 나의 곱창 사랑이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곱창에 입문시킨 뒤로 부모님은 콜레스테롤이 높다. 깨끗이 씻기지 않은 곱창은 위생적이지 않다. 살이 찌는 음식이다. 등등의 이유로 한 번도 나와 곱창을 먹으러 간 적이 없다. 무언가에 빠지면 순애보적 사랑을 자랑하는 나는, 내 주변인들을 곱창에 입문시키며 그렇게 곱창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다.


한동한 마마무 화사의 곱창 먹방 덕에 곱창 대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20년이 넘게 단골로 다니던 곱창집도 오픈 시간인 저녁 5시부터 품절을 써붙여놓던 시기였다. 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하루 걸러 하루로 품절이라, 곱창 애호자끼리는 어디 가면 곱창을 먹을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었다. 곱창 대란은 풀렸는데 여전히 그 곱창을 못 먹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애 둘의 엄마 내 이야기다. 하루 종일 아이만 보는데, 그 곱창 먹으러 가는 하루를 내기가 힘들었다. 아이가 어리면 불이 있는 식당에 가기 어려웠고, 아이가 크면서 돌아다니려는 아이의 욕망을 누를 수 없으니, 나 혼자 사장님 눈치가 보여 갈 수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고부터는 첫째가 껌딱지가 되는 바람에, 저녁시간에 술안주로 먹어야 하는 곱창집을 가는 게 더욱더 어려워졌다.



다행히 아직 1차 저녁을 먹는 시간이라 곱창집은 한가했다. 손님을 많이 받아야 하는 곱창집에 2인분을 시키더라도 혼자 가서 자리를 차지하는 게 내심 미안했던 터였다. 빠르게 곱창과 목축임 음료를 시키고 음식을 비워냈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시간은 50분. 음식을 다 먹고, 계산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아이에게 인사를 하면서 안심시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음식을 먹는데 써야 하는 시간은 40분. 여유롭게 즐기며 먹기에는 아쉬웠지만 맛을 음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아주 천천히, 어차피 대화할 시간도 없으니 먹는 것에만 집중해 냄비 위의 곱창을 비워냈고, 이제는 아이 픽업을 갈 시간이다.


아이 모르게, 아니 아무도 모르게 사알짝 일탈을 한 기분이다. 그래 몇 년만의 저녁 혼밥이니 일탈이고 말고. 세상사는 거 뭐 별거 있나. 간절히 먹고 싶었던 음식을,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먹고 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오늘은 또 다른 하루의 일탈을 상상하며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