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브런치 작가의 1일 1글 도전기
휴.. 오늘도 거실 바닥과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며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을 발로 쓱쓱 밀면서 지나간다. 치우면 뭐 하나. 애들이 오는 순간, 아니 애들이 자고 일어나서 눈뜨는 순간 오분이면 게임 끝인데. 치워도 치워도 끝나지 않은 집안청소에 얼마 있지도 않은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최근 들어 일상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눈뜨기 -> 아이들 등원시키기 -> 간단히 눈에 보이는 큰 물건들 치우기 -> 세탁기에 빨래 넣고 설거지 -> 다 돌아간 빨래 널기 -> 아이들 장난감이며 그림 그리기 재료 등 잡동사니 치우기 -> 창문 열고 이불 정리 -> 청소기 돌리기"의 무한반복이다. 휴.. 이미 이것만으로 숨찬 기분인데, 이건 파트 1이고 아직 끝이 아니다. 냉장고를 열어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먹다 남은 음식들을 처리하고 오늘 애들 먹일 음식들을 확인한다.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레토르트 곰국이나 계란 프라이, 어묵과 수프만 넣으면 완성되는 어묵국 정도지만, 그래도 재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특히 '요리를 못하는 자'일수록 재료가 중요하고, 재료 활용도가 떨어져 냉장고에는 유통기한 넘은 재료들이 천지이다. 아. 나는 언제부터 요리 못하는 엄마가 된 것일까.
싱글 시절, 나는 스스로 요리를 꽤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었다. 미식가 아빠 덕에 많은 음식을 먹으러 다녔으며, 소위 꾸미지는 않아도 '먹는데 열심인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주변 친구들의 농담 섞인 평가에 의하면 우리 집은 '엥겔지수 500'. 즉 다른 데는 돈을 쓰지 않아도 먹고 마시는데 모든 소득을 지출하는 집이었으니까. 친구들은 생일이며 데이트 등 특별한 날이면, 어느 식당을 가서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내게 물어보곤 했었다. A 집은 " 치킨 샐러드"가 맛있으니 그건 꼭 시키라는 둥, B집은 "갓 구운 화덕피자"가 최고이니 그건 빠지면 안 된다는 둥 나의 추천 리스트는 나날이 업그레이드되어갔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자주 요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만든 크림파스타에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남동생은 엄지 척을 날려줬었다. 심지어 아픈 날에는 누나의 크림 파스타가 먹고 싶다며 요리주문까지 이르러 꽤나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애 둘을 낳고 나니, 요리는커녕 내 밥 먹을 시간조차 빠듯했다. 아이들 관련 용품 정리에 집청소, 계절별로 옷정리에 하원하고 오면 뭐 하고 놀까까지 고민하다 보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그 시간도 꽤나 종종거리며 보내야 했다.
지난 나의 육아휴직을 돌아보면 이렇게 바쁜, 그러나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러한 일상이 주는 평안함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 억울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육아휴직 후 한 번도 자신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최근 매우 예민해졌다. 뒤 돌아 생각해 보니, 이제 곧 복직인데 나를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억울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집은 난장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기로. 육아휴직이 이제 몇 달 남지 않았지만, 그래서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못하겠지만 '오늘의 나'는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는 꼭 하기로. 집이 난장판이면 뭐 어떠랴. '오늘의 나'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걸.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