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율 Nov 04. 2023

엄마의 은밀한 취미

꺾이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내가 쓴 글이 조회수 일만 삼천이 넘었단다. 23.11.3 저녁 11:57. 조회수 13480. 혹자는 별거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가문의 영광이자 집안의 자랑이다. (가족 중 아무도 모르니 이건 나에게만 해당이다.)


  며칠에 걸쳐, 나의 글 두 개가 ‘다음 사이트’와 ‘브런치’ 메인 화면에 걸린 덕분인지 조회수는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저녁 9시쯤 조회수가 10000이 넘었다는 알림이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을 올린 지 딱. 일주일만의 일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건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얼굴 없는 작가에 만족하는 나는, 이 기쁜 사실을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칭찬엔 인색하고 핀잔엔 열정 가득한 남편이 무슨 글이냐며 핀잔이라도 할라치면 종잇장처럼 가벼운 나의 의지가 한순간에 꺾여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등원 후 오전동안, 아무도 모르게 글을 쓴다. 글쓰기는 이제 나의 은밀하고 고상한 취미(?)가 되었다.







  글을 쓰겠다는 종잇장 같이 얇은 나의 의지는 큰아이가 아직 아기이던 시절, 아이를 매일 재우면서 생겨났다. 당시 나는 한 달 평균 네다섯 시간을 자며 버틸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잠이 간절했고, 심지어 회사 내 모든 비밀번호가 “자고 싶다”였을 정도로 잠이 절실했다. 시간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나의 지불의사비용은 '시간당 십만 원'에 이를 정도로 내게 한 시간은 귀하고 또 귀했다.


  아이를 낳고 회사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이는 어렸고, 잘 때마다 부모를 필요로 했다. 특히 큰애의 경우 세워 안아서 토닥여줘야만 잠이 들었고, 오직 엄마인 나만이 재울 수 있었기에 아이를 재우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너무나 피곤한데, 너무나 자고 싶은데 일어나 아이를 재워야 했던 그 시간이 내겐 고문 같았다. 한 시간, 아니 이십 분 만이라도 꿀 같은 잠이 간절했던 내게, 최소 이삼십 분을 써야 하는 “아이 재우기”는 ‘육아의 행복’은 커녕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특히 아이를 재우고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던 날은 아이를 안는 순간부터 마음이 조급했다. 아이가 울며불며 보채기라도 할라치면, 오히려 오늘은 아이가 울다 지쳐 일찍 잠들거 같아 안도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런 나날들 속, 아이를 토닥이며 재우던 그 이십 분, 삼십 분이 너무도 아까웠다. 잠을 잘 수도, 회사에서 못 다 마치고 온 일을 할 수도, 집안일을 할 수도 없어서 그 시간들이 아까워 미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혼자서 머릿속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종이도 없고 핸드폰도 없는 깜깜한 방 안이었지만, 머릿속으로 글을 쓰기로 결정한 후에는 종이와 펜 없이도 수도 없이 글을 썼다 지웠다. 그러고 나면 시간을 그냥 날려 보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애써 억울함을 달랠 수 있었다.


  이제 내게는 둘째가 생겼고, 두 명의 아이 모두 어린이집에 간다. 내 생에 처음으로 시간이 생겼다. 아이들이 등원하면 하고 싶었던 무수한 계획들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동안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지우고 썼다를 반복했던 그 이야기들. 차마 어디 내놓기 부끄러워 뱉고 다시 삼켜버렸던 그 이야기들을 쓰고 또 쓰려한다.


  결국 오늘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가져왔던 비록 종잇장처럼 얇지만 꺾이지 않았던 의지 때문이다. 어두운 방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품어왔던 의지. 종잇장처럼 얇은 의지라도 꺾이지만 않는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사진 출처 : pixabay >



매거진의 이전글 집은 난장판인데 오늘도 글을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