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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Jan 27. 2024

반지의 주문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약 세 달. 반지는 사용한 기간보다 훨씬 더 많이 기스가 나고 상처가 나 있었다.

어차피 매일매일 데일리로 쓰는 반지를 원한 거니 상관없었다.

반지는 내게 액세서리라기보다, 행운의 주문을 외는 도구에 가까웠다.




<반지의 의미가 궁금하시다면>





마음을 그렇게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러해서 그런가.

정말로 반지를 사고 나서,

아니 어쩌면 반지가 아니었어도 일어날 일이었으지도 모르지만,

내게도 행운이 오기 시작했다.









복직을 이주일 앞둔 어느 날,

당연히 아이를 봐주실 거라 믿었던 엄마에게 아이의 스케줄을 읊어주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엄마의 대답은 내게는 아주 황당했던,


넌 내가 당연히 봐줄 거라 생각했니?


였다.




분명, 너는 엄마 같은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고. 애들도 봐주고 그러니 부담 없이 복직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이냐며 스스로를 추켜세웠던 엄마가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허리도 아프고 애들 보는 게 무섭단다.


엄마의 그 말은 너무도 이해한다. 힘든 우리의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엄마 덕에 몇 년은 사람답게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바닥 뒤집듯 이제 와서 무섭다는 엄마의 반응에 나는 머리가 얼얼했다.


이렇게 쉽게 뒤집힐 거라면,

엄마가 하지 않는 게 맞다.

이제 와서 이모님을 어떻게 구하나 무섭고 두려웠지만,

어느 순간 쉽게 바뀔 마음이라면 시작하지 않는 게 맞다고 이성이 말해왔다.

이럴 때마다 이성적인 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그냥 모른척하고 능글맞게

"엄마가 봐줘~

라며 부탁하는 사람이어야 이 세상을 더 쉽게 살아가는 걸까.

나는 결코 그런 딸은 아니었다.



큰소리치고 집에 왔지만, 이모님이 그렇게 쉽게 구해지지는 못할 터..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숨이 막혀왔다.

어느 날은 정말 이런 게 공황장애가 아닌가 싶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문자 그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아, 가만히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들숨과 날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말을 알아듣는 첫째에게 화와 짜증들이 날아갔고, 그런 나를 자책하며 나는 더욱더 움츠러들었다.





정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다시 요일을 정해 우리가 나눠봐야 한다고 통보했으나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래 네가 지킬 일이 없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해야 하는 내 처지가 또다시 서글퍼졌다.

이렇게 아이 키우는 게 힘든 세상에서 왜 모두들 아이를 낳으라고 난리인지,

참 세상이 못됐다 싶었다.

키워줄 수 없다면, 아무리 아이가 예쁘고 설사 그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해도 함부로 낳으라고 해선 안된다.

그 소중하고 귀한 생명체가 이렇게까지 대우받아서는 안된다.


저녁시간까지 포함될 경우 이모님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걸 너무 잘 아니, 급한 대로 퇴근 전까지 아이를 봐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정 안되면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일을 싸들고 와서 애들에게 티브이를 틀어주거나, 새로운 장난감을 몇 시간에 한 번씩 풀어주며 일을 할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운명의 선생님을 만난 건.

참 이상하게 선생님 프로필을 보는 순간


아! 이분이다!!


싶었다.

"됐다" 싶었다.





이모님에게 처음으로 연락을 받은 날 전화통화를 했고,

다음날 면접을 잡았으며,

면접 다음날부터 이모님은 우리 집에 오시기 시작했다.

바로 복직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이상하고 신기하게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졌다.

너무도 순조롭게 풀린 전개에, 이게 이렇게 쉽게 풀릴 일이 아니라며 오히려 불안했다.







그 며칠 사이, 배정받은 팀의 팀장이었던 워스트 팀장은 베스트 팀장으로 바뀌었고

동료들로부터 축하 인사가 날아왔다.



아. 살라는 건가 싶었다.

이렇게 살아가라는 건가 싶었다.

회사의 워스트란 워스트는 거의 만나봤는데,

그래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이제 내게도 숨통이 틔이는구나 싶었다.


복직서를 내는 날, 내 몸은 온통 붉은 반점으로 뒤덮였다.

온몸이 징그럽게 빠알갛게 부풀어 올랐고,

긁어도 긁어도 간지러워서 딸아이의 알레르기 약을 바르고 또 발랐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뭐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복직서를 냈다는 것만으로 온몸은 붉게 물들어갔다.


그렇게 두려웠던 복직이었는데,

이번엔 그래도 살만할지 모른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이건 어쩌면 마법의 반지 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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