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항사 승무원은 외로움을 견디는 직업이었다.
2025년이 오면 이 나라를 떠난다.
나에게 소중한 기회를 준 곳이자, 날 많이 아프게 했던 곳.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싱가포르 쪽으로는 돌아보지도 않기로 했다.
합격에 기뻐하는 글을 뒤로한 채, 퇴사하는 글부터 적어 내려가는 나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18살 처음 승무원이란 꿈을 꾸고, 27살에 합격해서 승무원이란 꿈을 이뤘다. 셀 수 없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승무원은 내 길이 아니라고 수없이 되새겼지만, 가슴 깊이 묻어둔 꿈은 내가 무시한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갈 거야…싱가포르라도,
그곳이 어디라도… “
마침내 싱가포르 항공이 내 소원을 들어줬다.
인생 처음으로 싱가포르에 와본 건 단순히 승무원에 합격해서였다.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대해 ‘마리나베이샌즈’나 ‘머라이언 상’보다 ‘싱가포르 항공’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였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온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열정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트레이닝 때문일까?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로 고대하던 첫 비행을 시작했을 때에도 그 열정의 크기는 되살아나지 못하고 작아지고 있었다. 그것이 거의 바닥을 보일 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타겠지. 승객으로.
그런데 참 신기하지.
승무원을 해보기 전에는 이 직업을 못 해봐서 생긴 미련이었는데, 승무원이 되어도 미련이 남는다는 게…
바닥이 보이는 내 열정은 완전히 마르진 않았다. 그 열정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게 남아 곧 미련이 될 것을 또 나는 안다.
내 직업을 나는 사랑했나 보다. 그만둘 생각만 하면 이토록 눈물이 나는 직업이라니.
그렇지만, 승무원이라는 꿈 하나에 참 많은 게 가려져 있었다.
정말 많이 외로웠다.
비행에 가면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데 담당 비행기가 큰 비행기라 25명 이상의 새로운 크루들과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초반에는 그들의 질문에만 답했고, 언제나 “넌 너무 샤이해”라는 피드백을 듣기 일쑤였다. 지금도 가장 싫은 영어단어가 ”Shy”다.
일차원적으로 부끄럼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건 말수가 없고,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복합적으로 “샤이”라고 표현한다.
레이오버에서는 크루들이랑 나가는 건 언제나 불편했고 혼자 돌아다니는 게 편했다. 가끔 맘이 맞는 크루들이나 아주 가끔 한국인 크루가 있으면 그들과 함께했는데, 이런 날들은 정말 즐거웠다.
나는 특히 한국인들과 비행하는 게 좋았고, 대만 크루나 태국 크루들도 좋았다. 말레이시안 크루들도 좋았고… 일본인 크루들도 좋았고.. 이렇게 되면 남는 건 별로 없는데. 일부 빼고는 다 좋았나 보다. 언제나 그 일부가 날 힘들게 할 뿐, 그 외에는 다 좋았다.
그리고 모두가 기피하는 데스티네이션도 꽤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걸 많이 받는 나. 로스터 운이 정말 없었다.
인도 델리, 뭄바이 합쳐서 10번 이상은 가봤고, 인도의 아메다바드라는 곳에서도 레이오버를 했었다.
뿐만 아니라 인도 턴은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같은 인도라면 턴을 선호하는 나였다.
그런데, 기피뱅을 가더라도, 모두가 싫어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더라도 나는 비행을 가는 게 더 좋았다.
오프에 싱가포르에 혼자 있는 것보다.
특히, 오프에 한국에 갈 수 없는 스탠바이는 더 싫었고, 그 스탠바이가 안 불리면 더욱 싫었다. 기약 없이 싱가포르에 혼자 있는 것이 나에겐 고통이었다.
그래서 새벽 4시에 갑자기 콜카타 턴을 불려도 오히려 좋았다. ‘비행을 하고 돌아오면 피곤해서 바로 잘 테니까. 그러면 또 하루가 지나가겠지’ 하고 말이다.
이렇게 지내는 날이 많아질수록 싱가포르라는 나라가 점점 더 싫어졌다. 싱가포르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날이 내겐 지옥이었고, 의미 없이 느껴졌다.
비행을 갔다가 싱가포르로 돌아갈 때, 로컬 크루들은 집에 간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또 다시 외로움을 견디러 가야했다.
이게 가장 큰 이유다.
얼마 뒤 내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이유.
그만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나는 이토록 미련 가득한 직업을 뒤로한 채 말이다. 외항사 승무원이라는 게 어쩌면 영원한 이방인이 된 것임을 몸소 깨닫고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외항사 승무원에 합격한 순간에도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챕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라고 과감히 받아들이며 한국에 돌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