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엄마라는 낯선 이름으로 지내온지 29주 차,
딱히 정기검진 외에는 이벤트가 없어서 병원을 찾을 일이 없다.
저출산 위기 이슈는 한결같은데 여성전문병원은 왜 때문에 예약을 해도 2-30분씩 대기 해야 하는지, 시간을 분단위로 쪼갠 산모들의 예약들로 신속한 진료를 위해 준비된 것 같은 멘트가 쏟아지는 주치의와의 만남은 늘 5분 남짓이다. 그저 초음파 보는 시간은 유일하게 내 양수 우주를 헤엄치는 너의 신체 일부들을 관찰할 수 있어 매일을 기다릴뿐.
(초음파 보는 게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하고 기다려질 일인지 엄마 되고 볼일!)
“어디 불편한 건 없으세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에이 그건 다 그래~”
재채기 같은 거 할 때 배를 붙잡고 하긴 하는데 소변 같은 게 왈칵 쏟아지고..
“당연하지~ 근데 그게 양수면 안돼요 이상하면 바로 병원 오셔야 되요!”
(아니 양수와 오줌 사이를 어떻게 분간을 하나? 이상하다와 그렇지 않다는 건 어떤 기준이지?)
입덧도 없고 그런데 평소보다 반밖에 못 먹고 소화도 안돼요..
“아니 봐봐 자기 지금 자궁이 커져서 장기가 위쪽에 눌려 있잖아. 소화가 잘 되는 게 이상하죠~”
(그래 웬만한 증상들은 그냥 다 그러려니 하자)
그리고 요즘 조금만 걸어도 배가 단단해져요
“얼마나? 자주?”
(자주라는 빈도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음.. 아무튼 가만있어도 배가 단단? 딱딱? 해져서 이상하다 싶을 때가 있는데 또 금방 풀어지더라고요..
“그게 진통이야! 그게 수축이야. 단단해질 때마다 애기가 내려와서 경부 길이가 짧아져 조산하게 되는 거예요. 증상이 규칙적으로 오면 병원 바로 오세요 알았죠?”
(규칙적? 어떤 규칙적? 얼마나 규칙적?)
어디 가서 말로 안 지는데...
대체로 임신 징후에 대한 내 궁금증은 늘 완벽하게 해소되지 못한 채로 진료가 끝난다.
이쯤 되면 전원(병원을 바꾸는)을 한다거나 주치의를 바꾸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이 봤는데, 그냥 우리 주치의는 약간 아줌마이자 억척스러운 엄마 같은 구석이 있어서 표현만 그러려니 하는 걸로 치자.
고통이라는 것에 무딘 편이다.
임신 이후로 나에게 생기는 심리적, 육체적인 변화들은 어찌 됐건 ‘당연하게 감당해야 하는’ 범주로 분류 해 두었기에 유난스럽지 않게 29주 까지 왔다
(남편, 고맙지?)
근데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던 배의 단단해짐이 수축이며 진통 및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자꾸 무섭게 맴돈다.
(그렇게 주치의의 마지막 멘트는 기가 막힌 6주 입원의 복선이 되고 말았다)
다음날,
메모장을 열어 단단해지는 간격을 체크해 보기 시작했다. ‘조산’ ‘수축’에 압도당한 나는 임신이래 극도로 예민해져 온 신경이 배에 집중이 되어있었다.
주치의가 해소시켜 주지 못한 ‘자주 뭉치면’에 대한 궁금증은 맘 카페와 너튜브를 통해 감을 잡았고,
(물론 다시 한번 정확하게 여쭸더라면 대답을 듣고 나왔겠지만)
한 시간에 5-6번 이상, 규칙적인 배의 단단해짐은 수축 또는 배뭉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아가를 밀어내는 막달 증상이므로 조산의 위험이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모성애가 들끓어 아기가 아플까 봐서의 디테일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준비 중인 엄마라는 낯선 이름에 수반되는 새로운 경험들에 대한 불안감에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나는 병원을 가보기로 한다.
그리고,
기계가 말해주는 8분 간격의 규칙적인 수축으로 갑자기 “입원하셔야 합니다”
어떤 원인으로 이러한 상황이 생기는 건지에 대한 정황 설명은 없다. 자궁수축 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나 명확한 원인을 꼬집기 어려우며, 나처럼 임신 중기에 이 정도의 수축이 오는 것은 조산(이른 출산) 위험이 있으므로 수축 억제제를 맞아야 한단다.
이 와중에 진료는 끝난 시간이라 응급실(분만실)로 내려가 수액을 달고
•수축 재검사
•수액만으로 수축이 안 잡혀 수축 억제제를 달고 재검사
•수축 억제제 12cc로는 어림도 없어서 2배로 올리고 재검사
만 4시간 만에 병실로 올라왔다.
너란 자궁, 쉽지 않구나..!!
갑자기 입원이라니,
37년 살면서 병원이라고는 장염으로 응급실 두어 번이 전부인데... 당혹스럽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순탄한 임신생활이 고마웠었다. 입덧 없지, 먹덧 없지, 염증이나 기타 이상소견이 없어서 전생에 나라 여럿 구한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입원까지 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낡고 딱딱한 병실 침대, 얼핏 얼핏 핏자국도 보이는 가림막 커튼, 두꺼운 주삿바늘과 주렁주렁 수액 줄, 어디다 둬도 불편한 주삿바늘이 꽂힌 팔, 익숙한 게 1도 없는 불편한 공용공간에서의 동거 생활..
나는 오늘 재택근무 중이었다.
유달리 배가 단단해져서 업무를 중단하고 소파에까지 누워서 오감으로 뱃가죽을 탐색하는데 낌새가 좋지 않아서 그래 한번 검사해보자 했던 게 화근(?) 이 되어 꼼짝없이 갇혔다.
냉장실 싱싱 칸에는 너무 잘 익은 시커먼 아보카도 수류탄, 점심에 먹다 남긴 카레, 싸여 잇는 설거지, 싱크대 배수구에 걸려있을 음식물쓰레기 쓰나미가 몰려와 잠도 안 온다.
입원 3일째.
‘괜찮냐-괜찮다’ 주치의와 대화가 5번쯤 오고 갔고 투약을 끊어보자고 했다. 주치의 결정이라기보다 집에 가서 누워만 있겠다는 나의 절박함이었다.
약을 끊고 검사해본 수축 그래프는 어딜 가냐고 비웃는 듯 격하게 요동을 쳤지만, 내게는 마치 지옥 같았던 병실생활이 3일째 포텐 터져서 온몸이 뒤틀렸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이 정도 수축이면 못 가요”
선생님 전 정말 괜찮았거든요. 근데 검사대에만 오르면 긴장이 돼서 더 자주 단단해지는 거 같은데..
“긴장된다고 엄마들 배가 다 수축되는 게 아니야. 현재 주차에서 이게 비정상인 거라니까?? 다들 만삭에고 걷고 뛰고 일하고 대중교통 타고 다 해. 자 만져봐! 봐! 지금 또 딱딱해졌잖아!”
통증은 하나도 없는데....
“통증은 없을 수도 있어요. 무통으로도 수축으로 아기 내려와서 나온다니까? 아휴.. 이상하면 바로 와야 돼! 몰라~ 자기 애니까 자기가 알아서 해!”
네.....(니 새끼니까 네가 알아서 해? 그 와중에 그 말을 곱씹으며 서운했지만 집에 가자..!!)
내 집 냄새.
3일 만인데 일주일 만에 보던 연애시절 남편 보다도 더 좋은 냄새.
샤워기를 틀었다.
벌거벗은 몸으로 이미 병원-집 이동하는 동안의 작은 움직임과 금약(투약 중지)으로 생긴 반동 수축에 단단해진 배를 두 손으로 감싸 안은채 울기 시작한다.
“엄마가 워낙 건강하니까~무탈한가 보다. 복이야!”
로 지내온 29주가 한순간 촛불처럼 꺼져버렸다
지금의 3일이 문제가 아니라 34주까지 6주간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매 순간을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할 생각에 서러워졌다.
(우리 병원은 35주 차부터 정상분만 가능)
3일 만에 똥내 나는 온몸을 눈물로 씻고,
익숙한 매트리스의 쿠션감과 남편의 옆에 바짝 붙어 찬찬히 눕는다, 그리고 괜찮다는 듯이 요동치는 태동을 즐기면서 내일 당장 다시 입원하게 되거든 이번엔 장기전이라고 생각하고 짐 싸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네,
아무런 통증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게 억울하지만, 수축하려 열 일하는 자궁을 막을 방법이 없다.
퇴원하고 이틀만이 더해진 이 불편한 느낌은 결국 또 나를 응급실로 인도한다.
처방 : 라보파(수축 억제제)와 최선을 다해 누워있기
“본 병원에서는 35주 차가 시작되는 산모에게 수축 억제제를 권하지 않으며 34주가 넘은 태아의 경우 자기 호흡이 가능하여 35주부터는 진통이 걸릴 경우 정상분만을 하도록 합니다”
29주 차에서 시작한 6주간 입원의 끝이 보인다.
억제제 없이 마인드 컨트롤로 집에서도 버티기가 가능했을 것만 같고, 이 황금 같은 계절을 아기랑 만끽하지 못한 채 송장처럼 병원에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부정하며 많이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내 갑자기 평온이 찾아온다.
이 고요함 속에서 할 일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재택근무 급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하루하루를 지워갔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병상에서 처리했고 마음껏 읽고 썼다.
퇴원을 앞두고 한 달 남짓 남은 출산을 실감하며 또 많은 생각들이 나를 기웃거린다.
설레면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