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을 해줘도 X랄
회사생활이라는 것을 처음 했을 때 상대적으로 좋은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많았다. 내가 모르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모든 게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의 연속이며, 인정해 주는 이들이 없고, 하는 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월급까지 불만이 아닌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줬는데도 받아먹지 못한 것도 많았다. 자율도가 높은 만큼 업무 분장도 건의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해결방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실수를 했을 때 나의 가치를 과시하거나 실수에 변호하려고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인정을 받으려면 그 사람의 언어와 핵심 욕구를 이해해야 하는데, 나는 40% 정도만 이를 이해했던 것 같다. 이직을 하고 나서야 내가 생각보다 예민하고 디테일한 성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기여도에서 제법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급여도 오르고, 정직원 계약도 제안받았다. 그런데 그만뒀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틈틈이 '네가 지금 일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들여다봐주고, 지적받고 혼나는 것이 필요했는데 알아서 잘한다는 이유로 방치당한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율도가 높은 것도 인정이었고, 급여도, 정직원 계약도 모두 인정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인간적인 부분에서의 인정이었고, 원하는 방식의 인정이 아니니 인정을 바닥에 내던진 격이다.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의도를 검열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칭찬도 디테일해야 칭찬이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는 칭찬에 약해서 내 에너지보다 많은 것을 쏟아내 버리기 때문에 칭찬에 어떤 의도가 담긴 게 아닐지, 좋은 말로 나의 무엇을 착취하려고 하는지 불안했다. 나는 브레이크도 없어서 계속 날다가 이카루스처럼 뚝뚝 떨어졌다.
또 칭찬이든 피드백이든 디테일하려면 관찰력이 좋아야 하는데, 내가 겪은 상사들은 추진력에 스탯을 몰빵 했기 때문에 만족할 만큼의 디테일을 잡아주진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는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 나는 그것을 무능하다고 느꼈다. 무슨 오만인가 싶긴 하다. 지금은 무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와 상성이 잘 맞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회사생활이 2년 차에 접어드니 '남의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지었다. '에너지를 쏟는 것에 비해 많은 결과물을 내는 것'이 탁월하게 일하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일과 나를 어느 정도 분리 할 줄 알게 됐다.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되, 친절하지 않다면 나도 딱히 친절할 이유가 없다. 혼신을 다하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러겠지만, 그렇게까지 매번 진심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권한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고, 건의해 봐야 상황도 바뀐다. 사람이 점점 무감해지는 느낌이긴 해도 에너지가 남는 것은 제법 좋은 일이었다. 지금도 글을 쓸 여력을 낸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불만이 많으면서도 회사 일에만 매달린 건 다 낮은 내 자존감 때문이었다. 적당히 역량이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헌신하면 인정받기가 쉬우니까. 칭찬일기든 안정된 관계든 나를 인정하고 다독이면서부터는 딱히 회사에서 칭찬을 받던 욕을 먹던 타격감이 크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2/3을 회사에서 일하는데 일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며 이따금 현타가 온다. 그래도 괜찮다. 일에서도 성취감과 고양감을 얻기 위한 준비를 하면 그만이다. 하기 싫은 일은 돈을 받으면서 배워야 한다는 게 내 철칙이다. 아직은 배울게 많으니 견뎌야겠지.